아파트와 비교할 수 없는 주택의 마력
평생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 있던 아내에게 집을 짓겠다고 통보했던 그 날이 생각난다.
2015년,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의 일이었다.
그때 딸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8살이던 딸도 아파트에 점점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익숙함이랄까?
아파트 이외에 뾰족한 대안이 없으니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져야 하는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아파트에서의 부모 자식 간의 대화는 대부분 부정적이다.
"걸을 때는 발 뒤꿈치 들고 다녀", "이 시간에 피아노를 치면 어떡해", "뛰지마", "문 살살 닫아"...,
건축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아빠로서 더 이상은 미뤄둘 수가 없었다.
딸아이가 한 살이라도 어릴때에 주택에서 살게 해줘야겠다고 결심했었던 때가 바로 2015년이었다.
처음에는 반대하던 아내도 딸 핑계를 대는 나의 끈질긴 설득에 정들었던 아파트를 떠나기로 결정해주었다.
아파트를 처분하고 용인에 있는 단독주택 단지에 생애 첫 번째 집을 지어 그해 8월에 이사를 했다.
이사하자마자 딸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아파트에서는 혼자서는 현관 밖을 절대로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않았던 딸은 동네 친구를 쉽게 사귀었고, 동네를 혼자서도 자유롭게 활보하게 되었다. 물론 피아노도 밤낮 상관없이 치고 싶을 때 맘껏 칠 수도 있었다.
첫 번째 집을 통해 우리 가족은 주택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장점들을 하나 둘씩 알게 되었다.
딸은 말할 것도 없고, 주택에 사는 것이 여러 모로 불편하고 불안하다는 생각이 팽배했던 아내도 시간이 지나면서 주택에서의 생활이 점점 익숙해져 갔다.
그 후로 종종 아내와 딸에게 농담섞인 질문을 하곤 했다. "아파트로 다시 이사갈까?"
그 때마다 돌아온 대답은 "왜!"였다. 아파트는 생각하지도 말라는 의미의 '왜'였던 것이다.
이처럼 주택은 우리 가족에게 소중한 추억들을 쌓을 수 있도록 많은 것을 주었다.
지금 나는 생애 두 번째로 지은 집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혹자는 얘기한다. "집 지으면 10년은 늙는다"고.
이 얘기대로라면 나는 20년이나 늙었어야 했다.
하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왜 얼굴이 그대로냐고 묻는다.
하나도 안 늙었단다.
두 번째 집을 지어 이사들어온지 이제 두 달이 지났다.
5개월 남짓 집을 지으면서 매일 매일이 행복하지는 않았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하지만 첫 번째 집에 비해 더 좋아하고 만족해 하는 아내와 딸의 모습을 보면 집짓기는 그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본다.
첫 번째 집에서 8년 간 살면서 건축가로서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그때마다 "만약, 만약에 내게 다시 집을 지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부분들은 꼭 보완해서 지을 거야."라며 마음속으로 다짐하곤 했다.
'간절히 원하고 바라면 이루어진다'라고 했던가!
2022년 3월 서울시 도봉구에 위치한 못생기고 작은 땅을 우연 찮게 발견했고 덥썩 계약을 하고 말았다.
10년 동안 방치되어있던 땅이었다.
주변에서 무단으로 버린 쓰레기와 잡풀들로 가득했던 땅!
그 속에서 나는 진주를 보았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들만 봐서는 절대로 계약을 해서는 안되는 땅이었다.
오죽하면 10년 동안이나 주인을 못만나고 방치되고 있었을까?
하지만 건축가로서 이 땅만이 갖고 있는 장점을 보았고 그것을 극대화 할 수 있을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작은 땅이지만 그 안에서 큰 꿈을 꾸며 시작했던 '생애 두 번째 집짓기'.
이번 글을 필두로 시작되는 시리즈에서는 땅 선정부터 건축설계, 시공, 인테리어를 포함한 일련의 집짓기 과정을 알기 쉽고 실용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작은 땅에서의 집짓기에 흥미를 갖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집짓기 가이드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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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반인은 쓰레기 덮인 쓸모 없는 땅으로 보았다. 그런데 건축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