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한산한 버거킹 실내.
매장 창가 테이블에 20대 후반의 여자1과 여자2가 마주 앉아 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여자1의 휴대폰 진동이 길게 세 번 울린다.
여자1은 휴대폰 화면을 본 다음 테이블에 뒤집어 놓는다. 진동음이 꺼진다.
여자2 (웃으며) 살아 있네.
여자1 (고갤 저으며) 미친 놈이야.
여자2 누군데.
여자1 신입.
곧 이어 다시 여자1의 휴대폰이 길게 두 번 진동한다.
여자1은 눈길도 주지 않고 얼른 휴대폰을 들었다 뒤집는다. 진동음이 꺼진다.
그 모습을 보고 여자2가 웃는다.
여자2 어쩜 좋아.
여자1 외국 살다 온 애라 그런가? 개념이 우리랑 약간 다른 거 같애.
카운터의 점원이 “613번 고객님~ 613번 고객님~ 주문하신 메뉴 나왔습니다” 라고 외친다.
여자2 (번호표를 보더니) 갔다 올게.
여자2가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간다.
여자1은 테이블 위에 뒤집어진 자기 휴대폰을 본다.
잠시 후 여자2가 감자튀김 하나와 콜라 두 잔이 담긴 쟁반을 들고 돌아와 자리에 앉는다.
여자1 땡큐.
여자2 남자친구는 뭐라 안 그래?
여자1 뭘.
여자2가 턱짓으로 여자1의 휴대전화를 가리킨다.
여자1 이런 걸 뭐하러 얘기해.
여자2 너 맨날 남친이랑 세시간씩 통화한다며.
여자1 요즘은 잘 안해. 그냥... 매일 잠깐 얼굴만 보고 말지.
테이블 위 여자1의 휴대폰 진동이 짧게 한 번 울리고 그친다.
여자1은 휴대폰을 들어 액정화면을 본 다음 조용히 뒤집어 놓는다.
여자2 (케첩을 뜯어 쟁반 종이 위에 짜며) 매일 볼라면 그것도 일이겠다.
여자1 난 괜찮은데 걔가 힘들지. (사이) 너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알아?
여자2 제목만 들어 봤어.
여자1 내가 얼마 전에 걔한테 사람들 대하는 게 너무 지친다고 그런 적이 있어. 그랬더니 걔가 이 책을 오다 줏었다 그러면서 주는거야.
여자2 내용은 어때? 재밋어?
여자1 나는 좋았어. 전부터 읽고 싶었거든. 그래서 한 절반쯤 읽고 있는데 있지, 책에 분홍색 형광펜 밑줄이 쭉 그어져 있는 거야. 여백엔 작은 글씨로 뭐라고 적혀 있고.
여자2 (웃으며) 남친이가 엄청 감명 깊게 읽었나 보네.
여자1 근데 그게 여자 글씨인거지.
여자2 대-박.
여자1 아닐 수도 있어. 내가 걔 글씨를 직접 본 적이 없어서.
여자2 물어 봐. 진짜로 오다 줏은 거냐고.
여자1 성의가 어디야.
여자1은 테이블 위의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여자2 그래서 책은 다 봤어?
여자1 거기까지만 읽었어.
여자2 내일 니 방 들를게, 나 좀 빌려 주라.
여자1 나 오후엔 어디 가봐야 될지도 몰라.
여자2 아침 10시는 너무 이른가?
여자1 더 일찍 와도 좋고.
여자2 알았어. 빨리 갈께.
여자1과 여자2가 감자 튀김을 번갈아 집어 먹는다.
잠시 후 여자1의 휴대폰 진동이 짧게 두 번 울린다.
여자1은 휴대폰을 들고 화면 잠금패턴을 푼다.
여자2 미친 놈?
여자1은 대답없이 한 손 엄지로 열심히 액정화면을 두드린다.
여자2는 감자튀김을 집던 엄지와 검지를 휴지에 톡톡 두드려 닦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