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감기에게 아주 된통 당했다
'비 온 뒤에 땅 굳는다.'
어른들은 그런 말을 한다. 한 번씩 아프고 일어나면 쑥 큰다고. 실컷 앓은 다음 음식으로 보양하고 충분한 수면과 휴식을 취하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우리 몸에 침입한 병균을 퇴치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면역력이 생겨 몸은 더 강하게 된다. 그러면서 커가는 것이다.
노인들은 다르다. 한 번 아플 때마다 기력이 조금씩 쇠한다. 점점 떨어지는 면역력은 우리 몸에 침투한 병균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들이 온몸을 헤집어 놓아도 속수무책 당하고 있다. 그나마 약기운으로 겨우 겨우 그들을 물리치지만 몸은 만신창이가 된다. 그렇게 조금씩 쇠해간다.
엄마가 감기에게 아주 된통 당했다. 며칠 전 가볍게 기침을 했는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뜨거운 유자차만 한 잔 터드렸다. 자고 일어나면 괜찮겠지 하면서. 그런데 그날 밤공기가 쌀쌀했다. 보일러만 한번 돌렸어도 되었을 텐데 그날따라 나는 긴팔 옷을 입고 자서 추운 줄을 몰랐다. 늘 갑갑해하시는 엄마는 집에만 오면 목이 시원한 반팔티를 입으신다. 그 날밤을 지나고 기침이 심해졌다. 감기약을 사다 먹었지만 몸에 침투한 병균은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다음날은 열도 조금 올라갔다. 토요일인데 몸에 약간 기운이 없는 엄마를 센터에 보내며 뭔가 기분이 찜찜했다. 청소와 빨래를 하고 두어 시간 책이나 보자고 펴 들었는데 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간식으로 짜장면이 나와서 너무 맛있게 드셨는데 다 토하셨다고. 바로 차를 끌고 달려갔다. 엄마는 힘없이 눈을 꼭 감고 계셨다.
집에 모시고 와서 눕히니 온몸에 열이 올라있다. 서둘러 쌀을 물에 불려놓고 냉찜질을 해드렸다. 잠깐 잠이 든 사이 흰 죽을 끓였다. 깊이 잠들지 못하고 깨어 일으켜라 앉혀라 하시다가 토하고 설사하고 온통 난장판이 되었다. 식구들은 모두 나가고 없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엄마를 일으키려 씨름을 하다가 둘 다 거의 탈진상태가 되었다. 의식이 오락가락하는데도 자기 보호본능은 어찌나 강한지 한번 무언가를 움켜쥐면 내 힘으로도 손을 풀 수가 없고 다리를 뻗대면 절대 일으킬 수 없다. 불가항력의 힘이 나온다. 삼손 같은 아기를 돌보는 느낌이다. 결국 포기하고 방바닥에 눕힌 채 이불을 걸쳐드렸다. 이제 누가 오기 전에는 일으킬 수가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결국 외출한 가족에게 전화를 했다. 모두 득달같이 달려왔다.
흰 죽을 드렸으나 두 숟갈도 못 드시고 열은 내리지 않는다. 의식은 아직도 오락가락한다. 저녁이 되어 가는데 더 있다가는 안될 듯하여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갔다. 한 명의 늘어진 환자를 차에 태우는데 네 명이 달라붙었다. 빨리 근력을 강화하여 60kg 바벨을 들듯이 엄마를 번쩍 들어 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근력 강화하기 전에 엄마 몸무게가 줄어서 번쩍 들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병원은 가면 일단 피를 한바탕 뽑아 제친다. 혈관도 못 잡아 이곳저곳을 주삿바늘로 헤집으면서. 이래서 웬만하면 병원 안 모시고 올라했는데. 그나마 웬일로 응급실이 덜 붐빈다. 응급환자 많을 때 오면 의사 얼굴도 몇 시간 동안 못 보는데 이번에는 검사 끝나고 조금 있으니 의사가 왔다. 이 정도 환자는 우리 병원에서는 환자 축에도 못 낀다는 표정이다. 증세를 말하고 처분을 기다린다. 결과는? 염증이 좀 있고 별일 없다. 항생제 맞고 집에 가라. 6시간 동안 병원에서 기다린 후 나온 처방이다.
집에 오니 이미 새벽. 엄마도 힘들었는지 아니면 약 기운인지 잠이 드셨고 온 식구도 곯아떨어졌다. 일요일 하루는 공쳤다. 덕분에 아이들과 이야기도 하고 음식도 해 먹고 오랜만에 북적북적 사람 사는 집 같다. 어린 시절에도 아프기만 하면 학교 안 가고 집에서 누워서 뒹구는 게 행복해서 조금만 아팠으면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지 않은가? 엄마 덕분에 실컷 먹고 실컷 자고 폭풍 수다도 떨었다. 다행히 오후가 되자 엄마도 기운을 차리고 죽도 잘 드셨다.
아픈 뒤에 기력 회복되라고 이것저것 먹을 걸 해드리나 아직 입맛은 제대로 안 돌아왔는지 잘 드시지는 못하고 좋지도 않은 핫도그를 찾는다. 기름기가 마음에 걸렸지만 소원 들어주는 셈 치고 데워드렸다. 맛나게 잘 드신다. 말씀도 좀 나아지셔서 '축구 틀어라!'라고 알아듣게 말씀하신다. 웬 축구? 하고 채널을 돌리니 올림픽 대표 팀 축구 경기가 나온다. 중계 소식은 어찌 아셨는지? 총기는 나보다 낫다. 침대에 한참을 버티고 앉아 축구 중계를 열심히 보신다. 막내가 들어오니 뭐라 뭐라 얘기하시는데 못 알아듣겠다. 막내가 귀를 기울이며 애써 해독한 문장은 "일대 영으로 이긴다!"였다. 김학범 감독님께 여기 열렬 응원자 한 분 있으니 힘내라고 알려드려야겠다.
결국 역전패를 당해 아쉬운 맘일 거 같아 한마디 해드렸다.
"친선경기라 져도 괜찮아!"
엄마 하는 말 "이대 일"
우리 엄마 아직 치매 걱정은 안 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