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집 한 채

엄마는 노후를 위해 늘 월세 받는 집을 사고 싶어 했다

by 안경숙

노후준비의 4대 영역이라 하면 재무, 건강, 여가, 대인관계로 분류한다. 엄마와 살며 노후준비에 대한 생각이 매우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엄마는 당신 노후를 위해 그 시대 주부들과 달리 제대로 재무적 준비를 하셨다. 지금 비록 몸이 아프지만 돌아가실 때까지 쓰실 병원비와 간병 비는 스스로 마련하셨다고 할 수 있다.


엄마는 노후를 위해 늘 월세 받는 집을 사고 싶어 했다. 옛날 시골에서 보따리 장사하며 모은 돈으로 논을 조금 샀었는데 서울 올라오며 그 논을 팔아 집을 샀다. 중랑구 면목동의 집장사가 지은 빨간 기와집이었다. 당시 용마산 아래 면목동은 우리 집과 같은 단독이 줄을 지어 수백 채 지어져 있었다.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구조는 다 똑같았다. 안채 큰 방 하나 부엌 아랫방, 문간방, 그리고 손바닥만 한 마당과 마당 끝에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다. 논 판돈으로는 그 집을 다 소유하지 못해 안채는 전세를 주고 엄마와 나는 문간방에 살았다. 엄마는 가죽 공장에 다니고 나는 월급 적은 공공기관에 다니며 저축을 해서 전세비를 마련하는데 거의 3년 가까이 걸렸다. 드디어 안채에 들어가던 날 나는 내 방이 생긴다는 생각에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엄마는 내가 쓸 아랫방도 세를 놓았다. 부엌을 함께 쓰는 세입자가 들어오고 나는 또 엄마와 한 방을 쓰게 되었다. 그 절망감이란 말할 수 없이 컸다. 엄마는 "둘이 사는 집에 방이 뭐 하러 두 개나 필요해. 안방이 커서 운동회를 해도 되겠구먼!" 하며 내 기분 따위는 아랑곳도 안 했다.


면목동 집값은 전 국민의 집값이 고공행진을 할 때도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그 동네를 떠나지 않았고 옆집이 매물로 나왔을 때 10여 년 직장 다니며 저축한 돈을 투자하여 그 집을 샀다. 합쳐서 슬래브집을 짓기 위해서다. 두 집을 헐고 2층짜리 새 집을 지으며 엄마는 1층과 반지하를 세놓으셨다. 드디어 월세 받는 집주인이 된 것이다. 옥상에도 작은 옥탑 방을 만들어 술집 다니는 아가씨에게 월세를 받았다. 반지하에는 방글라데시 국적의 부부가 살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집에서 남들이 두세 번씩 뒤집어엎어 뻥튀기를 한다는 투기 광풍의 시대 15년을 꼼짝 않고 그 집을 지키고 살았다.


10년 전에 지금 집으로 이사를 왔다. 월세 받는 가게가 딸린 집을 구했다. 전세와 달리 월세는 공짜가 아니었다. 신경을 써야 하고 관리가 필요했다. 우리는 매일 그 월세 주는 식당집이 영업이 잘되어 월세를 꼬박꼬박 낼 수 있길 기원했다. 그러나 그 식당은 거의 1년 단위로 주인이 바뀌었고 품목도 삼계탕, 순댓국, 돈가스, 백반으로 변했다. 급기야는 마지막 주인은 월세를 안 내고 배짱을 부려 엄마가 뒷목을 잡고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결국 내가 명도소송 서류를 들고 팔자에도 없는 지방법원 재판정까지 나가게 만들었다.


월세 때문에 마음고생하는 엄마에게 그 집을 팔자고 했지만 엄마는 한 술 더 떠 건설업자를 만나 집을 부수고 새로 짓는 계약을 덜컥하고 말았다. 찬바람 부는 가을 겨울을 지나 봄까지 엄마는 공사장을 수시로 드나들었고 결국에는 가게 딸린 새 집을 갖게 되었다.


원래 하나가 좋으면 나쁜 것 하나는 꼭 덤으로 끼여 오는 법. 엄마는 집 관리 몇 년 못하고 병이 나서 지금은 집주인 행세도 못하게 되었다. 통장으로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세는 병원으로 약국으로, 간병인에게로 고르게 나누어지고 있으니 이런 게 노블레스 오블리쥬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엄마의 꿈은 가게 딸린 집 한 채 가지는 것이었는데 그 꿈 하나는 확실히 이루었으니 되었다. 그 월세 받아 아픈 몸 치료하고 몸에 양분 주는 맛난 거 사 먹는다. 이만하면 제대로 된 노후준비 재무 설계한 것 아닌가?

엄마가 마련한 집은 당신 돌아가실 때까지 다 쓰고 가시면 된다. 엄마 돌아가신 후 유산 상속 금액이 0원이 되도록 하는 것이 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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