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라 쓰기보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엄마와 함께 가을 나들이 평창여행을 다녀오다

by 안경숙

오랫동안 벼르기만 하던 온 가족 나들이를 드디어 떠났다. 태풍이 지나간 하늘은 푸르고 구름은 포근했다. 직장 다니는 딸들과 나는 일찌감치 샌드위치 데이에 휴가를 냈다. 데이케어센터에서 휠체어를 가져오고 트렁크를 펴고 여러 벌의 옷과 기저귀를 챙겼다. 물통과 간식, 앞치마까지 챙기니 아이들 어린 시절 분유통과 기저귀보따리 싸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기가 기저귀 뗄 때 느꼈던 해방감을 누린지 20여년 지나 다시 양육의 시간이 돌아온 듯 하다.


3박4일 콘도를 예약하고 짐을 싸며 나는 책을 세권이나 집어넣었다. '황금 같은 시간을 그냥 보낼 수 없다. 엄마 돌봐줄 가족들 있을 때 책도 읽고 글도 써야지!'야무지게 결심하면서.


둘째가 키우는 고양이를 호텔에 맡겼다. 하루 투숙료 3만원에 각종 주거시설을 갖춘 독방을 준다. 고양이 짐을 바리바리 차에 싣고 떠나기 한시간전에 둘째와 고양이를 호텔에 데려다줬다. 이별을 위한 적응시간이 필요하단다. 호텔이라해서 거창한 건 아니다. 건물 이층 작은 샵에 방크기가 한 평은 될까? 각자 공간을 두고 변기, 밥그릇, 놀이기구가 설치되어 있다. 둘째는 고양이 이동을 위해 아침 일찍부터 닦고 씻고 챙겨왔다. 대단한 정성이다. 애기 하나 키우는 느낌이다.


7인승 RV에 사람 여섯 명과 짐이 구겨지듯 타고 휠체어를 실은 채 출발했다. 한 시간단위로 휴게소에 들르면 우르르 내려 휠체어를 편다, 할머니를 내린다, 물을 챙긴다 하며 부산을 떤다. 그래도 휴게소는 장애인 주차공간이 넉넉하고 화장실도 쾌적하여 엄마를 모시고 이동함에 불편이 없었다. 놀며 쉬며 이동하여 오후도 한 참된 때에 콘도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모두들 여기저기 누워서 휴식을 취했다. 엄마는 세 시간 가까운 이동에도 불구하고 상태가 좋다.


큰 딸이 사온 고기를 숙소에서 구워먹으며 저녁을 맞이했다. 엄마는 고기가 입에 맞는지 상추를 싸서 한 입가득 맛나게 드신다. 아이들이 보조하고 남편이 무거운 건 옮겨주니 갑자기 이리저리 지시나 하고 있는 나는 우아한 집사가 된 기분이다. 저녁을 먹고 막내와 둘째를 데리고 산책이나 하고 온다고 하니 엄마가 당신도 가시겠다는 의사를 표시한다. 피곤하지 않으신가보다. 단단히 옷을 여미고 무릎 담요를 덮은 다음 콘도 경내를 한 바퀴 돌았다.


낯선 침대에 잠이 잘 안 드시는지 거의 한 시간 단위로 일으키라고 하신다. 휠체어를 탄 채로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그래도 체크인 시에 휠체어 탄 엄마를 보시고 장애인친화 숙소로 배정을 해줘서 화장실에 설치된 보조봉의 덕을 톡톡히 봤다. 현관도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어 휠체어를 그냥 끌고 드나드니 한결 편하다. 모든 사람들이 장애체험을 해봐야 장애인 편의시설이 좀 더 많아지겠다는 생각을 했다. 휠체어로 산책하는데 작은 턱이나 경사로도 얼마나 진땀을 빼는지 이번에 알았다.


둘째 날은 이효석문학관을 갔다. 쌀을 뿌린 듯 흰 메밀꽃은 이미 다 스러졌고 막국수에 묵사발, 메밀전병으로 만족했다. 문학관과 정원과 하늘이 참 예쁘게 어우러진 곳에 이효석 동상이 있고 곳곳에 놓인 벤치에는 방문객들이 평화로이 담소를 나눈다. 아이들은 잔디밭에 뛰고 어른들은 사진을 찍는다. 우리는 삼천 원짜리 메밀 꽂반지를 사서 끼고 마냥 즐거웠다.


엄마는 햇살에 눈이 부셔 얼굴을 찡그렸지만 기분은 좋은 듯 했다. 아이들과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들은 느릿한 할머니의 말과 손짓, 슬로우 모션의 걸음을 기쁘게 기다려주며 아기 돌보듯 한다. 모든 가족의 중심이 엄마가 되었다. 둘째가 한 말이 떠오른다. "엄마! 갑자기 집에 아기 둘이 생긴 거 같아! 집에 아기가 있으면 온 가족이 그 애를 중심으로 모여 쳐다보잖아!" 말인즉슨 할머니와 고양이가 그 중심이란 말이다.


엄마는 3일 동안 음식 타박 없이 잘 드셨다. 휠체어가 쉽게 드나들 수 있는지를 음식맛보다 먼저 고려하니 다소 맛이 떨어져도 우리는 다 잘 먹었다. 강원도 토속음식도 콘도에서 구워먹는 고기도 신나게 먹어치웠다. 애초에 집에서 나설 때 음식을 안 해먹기로 작정을 한 터이지만 1층 편의점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이것저것 사다 나르고, 기본으로 가지고 간 쌀과 고구마 양파만 가지고도 각종 요리를 만들어 먹었다. 아침엔 조식뷔페도 먹어봤지만 가격대비 가성비를 따지며 다시 집에서 매운탕을 해먹고 스프를 끓여 먹는다. 고기도 대관령 한우 집을 가자고 했지만 딸이 회사에서 할인 판매하는 미국산 소고기를 사왔다. 우리는 근사한 음식점 가서 1등급 한우를 사먹기보다 콘도에 모여 앉아 프라이팬에 구워 상추쌈 싸 먹으며 뒹굴뒹굴 수다 떠는 시간을 더 좋아했다.


저녁에 앉아서 다음날 뭘 먹을까를 한참 행복하게 떠드는데 갑자기 엄마가 뭐라 뭐라 하신다. 속초……. 강릉...문어...라고 하시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속초나 강릉 가서 문어 먹고 싶다는 뜻이다. 엄마는 문어를 아주 좋아하신다. 어쩌겠는가? 온 가족이 강릉으로 달렸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뚫고 강릉 안목해변으로 달렸다. 마침 커피축제기간이라 차들은 모두 카페로 달리고 있는데 우리는 옆도 안돌아보고 회센터로 들어갔다. 그 다음부터는 수난의 연속, 입구부터 경사로가 없어 비는 쏟아지는데 온 식구가 매달려 휠체어를 들고 안으로 들어가니 식당은 2층, 심지어 엘리베이터도 없다. 그래도 우리는 어쨌든 올라가서 문어와 광어를 맛나게 먹었고 엄마는 표정은 없지만 만족했음이 틀림없다. 중앙시장에서 육 쪽 마늘빵을 사먹으려했으나 이미 2시에 대기표가 끝났다는 알림에 실망하고 아이스크림호떡이나 사먹고 돌아왔다.


삼일 째 되는 밤이라도 엄마는 아직 적응을 못한다. 엄마가 늘 신호로 탕탕 두드리는 침대 옆 기둥이 없어 불안해했다. 모두 잠든 밤에 누군가에게 신호를 못 보낸다는 것은 누워서 실례를 한다는 뜻이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니 소리 칠 방법이 없다. 첫날밤에 엄마가 두려워하기에 침대 머리맡에 주방에서 부침개 뒤집개를 가져다 놓았다. 그랬더니 벽에 대고 뒤집개를 탁탁하고 친다. 내가 침대 밑에서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가니 그제야 안심하신다.


호텔에 맡긴 고양이는 둘째가 CCTV를 통해 수시로 근황을 체크하지만 이틀째 미동도 않는다. 엄마도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30분마다 깨서 일어나신다. 일어나면 백발백중 화장실행이다. 새벽 두시까지 여섯 번을 드나드시고 나서야 잠이 드셨다. 그래봤자 2시간이 지나면 일어날 테지만 그 짬을 이용해 나는 습관처럼 바로 잠에 곯아 떨어진다. '탁탁' 영락없이 4시다. '탁탁' 아니나 다를까 6시다. 아이들은 아랑곳없이 잘도 잔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나 옷을 입고 엄마를 모시고 산책을 나간다. 콘도를 한 바퀴 돌고 파란 잔디가 깔린 스키 슬로프 앞에서 멀리 대롱거리는 곤돌라를 보다가 아침식사를 하러 들어온다.


3일이 금세 지나 어느덧 마지막 날이다. 늘 그렇듯 우리 가족은 콘도 체크아웃 시간을 마지막까지 채우고 막판에 후다닥 준비해 나온다. 할머니의 몸 상태를 고려해 서울로 직행하자는 파와 근처에 있는 허브농원을 들렀다 가자는 파로 나누어졌다. 엄마에게 물었다. 들릴 듯 말듯 들러 가자는 쪽에 동의한다. 엄마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허브농원으로 차를 몰았다. 날씨는 더할 나위없이 좋고 농원은 마침 축제 시작일이었다. 아직 손님은 많지 않고 농원은 가을축제를 위해 한껏 새단장을 했다. 우리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농원 구석구석을 돌았다.


초반에 엄마는 거의 눈을 감고 계셨다. 얼굴이 일그러져 있는 것을 보니 피곤한 것이 틀림없다. 아침에 매운탕에 밥 한 공기를 드셨는데 웬일이지? 중간에 찻집이 예쁘게 자리 잡고 있어 우리는 무작정 들어갔다. 허브차를 시키고 엄마를 위해 빵과 코코아를 주문했다. 엄마는 빵을 보더니 눈이 번쩍 떠졌다. 양손에 빵을 들고 맛있게 드시더니 기운을 회복하셨다. 파킨슨 환자는 에너지가 급속히 떨어지거나 약효가 떨어지면 못 움직인다. 그래서 중간 중간 간식을 챙겨드려야 하는데 풍경에 정신이 팔려 먹을 걸 공급하지 못해서 기운이 빠졌던 모양이다. 어쨌든 빵 한 조각이 엄마의 원기를 단번에 회복시켜줬다.


기다면 긴 휴가를 무사히 다녀왔다. 엄마가 아픈 이후로 엄두를 못 냈었는데 결국은 내 게으름 탓이었다. 장애가 있어 평생 불편하게 사는 사람들이 히말라야를 오른다, 설악산을 손발로 엎드려 오른다 하는 뉴스를 들을 때 '뭘 저렇게까지!' 라는 생각을 했었다. 정말 미안한 마음이다. 본인의 능력이 닿을 수 있는 곳이 어디까지인지 내 몸의 에너지를 끝까지 끌어올려 뭔가를 달성하는 것의 기쁨을 너무 가볍게 봤다. 몸이 성할 때는 '안 해서 그렇지 하면 다 할 수 있어.'라고 말한다. 몸이 아프거나 말을 안 들으면 열심히 노력해도 조금밖에 못한다. 그러나 할 수 있지만 안하는 것보다는 결국 많은 것을 한 것이다.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며 산다. 인생은 '한 것'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니 지금 당장 시작하는 게 좋다. 무엇이든 내가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을.

무겁게 싸간 책은 결국 한 페이지도 읽지 못했다. 글도 한 줄 안 썼다. 그냥 가족과 행복하게 지냈다. '행복'이라고 쓰기보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언제나 삶은 글보다 먼저다. 살아낸 삶만이 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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