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걷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한 발짝도 내 디디기 어렵다.'는 말의 뜻을 이제야 알겠다. 내 안의 에너지가 100% 소진되어 배터리 제로에서 전원이 꺼진 상태를 말한다. 보통 사람은 아무리 기운이 빠져도 배터리가 나갈 정도로 제로상태로 떨어지진 않는다. 운동을 할 때도 정말 기진맥진해서 쓰러져도 또 일어나 걸을 수 있는 게 인간이다. 그리고 어떤 동기부여나 자극이 있으면 정신력으로 버티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어떤 경우에 에너지 제로상태에 빠지기도 한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휴일이라 엄마를 모시고 아파트 앞에 있는 미장원을 갔다. 친목회에 가려는데 머리를 좀 다듬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한 달에 한번 모이는 고향 어르신 친목회인데 그때마다 몸이 안 좋거나 내가 일이 있어 두 달을 못 갔다. 이번엔 엄마도 가고 싶은 기색이다. 가까운 거리라 보행기를 놓고 막내랑 양쪽을 부축해서 미장원으로 갔다. 커트를 하는 동안 머리를 좀 움직여서 자르기 힘들었지만 무사히 마쳤다. 나도 염색이 필요한 것 같아 막내에게 보행기를 가져오도록 해서 할머니를 모셔가게 했다.
머리를 거의 다했는데 막내에게 전화가 오다 받으니 끊어졌다. 불길한 생각이 들어 서둘러 미용실을 나섰다.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저만치 미용실과 아파트 사이 길가에 막내가 할머니를 안다시피 하고 서 있다. 떠난 지 20분은 된 것 같은데 뭔 일인가 놀라 달려갔다. 엄마는 보행기를 의지하고도 몸이 축 늘어져 거의 주저 않기 직전이고 막내는 할머니 어깻죽지를 껴안고 땀을 줄줄 흘리며 뙤약볕 아래서 어쩔 줄 몰라하며 서있다. 막내에게 전화를 받은 둘째도 달려왔다. 셋이서 엄마를 부축하는데 엄마 몸은 물에 빠진 솜처럼 무겁게 쳐지고 양다리는 힘이 완전히 풀려 문어다리 형태가 되었다. 도저히 움직일 수 없어 아파트로 달려가 차를 끌고 왔다. 현관 앞까지 싣고 와서 입구에서 세 사람이 전력을 다해 사지를 거의 끌다시피 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며칠 전에 남편에게 맡겼을 때 이웃의 도움을 받아 들어왔다기에 수발하는 요령이 부족해서 그랬을 거라 일축했는데 내가 직접 겪어보니 충격이었다.
이제 드디어 휠체어를 써야 하는 때가 오고 말았나 하는 걱정이 된다. 다행히 집에서 좀 쉬시니 또 움직이기는 하신다. 친목회는 이번 달도 못 가고 말았다. 휠체어에 한번 앉으면 영원히 못 일어난다는 말을 들어 어렵더라도 지팡이와 보행기에 의지하고 어렵게 걷도록 하고 있다. 언젠가는 그날이 올 거라 예상은 하고 있지만 막상 겪어보니 정말 배터리 제로 상태에서 핸드폰이 꺼진 것처럼 속수무책이다. 전에 파킨슨병을 앓고 있던 의사인 김혜남 씨 책을 읽었는데 약을 드시다가 약기운이 떨어지면 정말 손도 까딱하지 못하고 단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는 정지상태가 된다고 했다. 이제야 실감이 난다. 무섭기도 하다.
엄마는 한숨 자고 일어나 간식을 드시고 회복하셨다. 밤에 일어나는 시간이 한 시간 단위로 거의 규칙화되어 깨우지 않아도 나도 모르게 잠이 깬다. 12시에 잠들면 1시 반, 3시, 4시 반, 6시, 딱 네 번 일어나 소변을 보신다. 기저귀를 채워 놓지만 늘 깔끔한 상태로 하루 24시간 동안 기저귀 하나로 버틴다. 가끔 귀찮을 때 기저귀에 소변을 보시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오늘 일을 겪어보니 볼일 보러 일어나시는 것도 감사했다. 물리치료나 운동을 제대로 못하는데 이 정도라도 움직여야지 하는 마음이 절실해진다. 화장실 가고, 식탁에 나와 밥 먹고, 세면대 들어가 양치, 세수하는 활동이 운동의 전부이다. 자주 일어나시는걸 절대 귀찮아하면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