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어른, 행동은 어린아이처럼 되어가는 엄마
세 차례의 식구들 아침을 차려주고 돌아서니 점심때다. 점심도 각기 먹는 시간이 달라 뒤늦게 설거지를 모아 하다 보니 한 참 걸린다. 아이들이 떠들썩하게 모여 있다 각자 외출을 했다. 그래도 남편이 있으니 맘 놓고 설거지를 한다. 오랜만에 냉장고를 열어놓고 정리를 한다. 구석에 앉아 뽀얀 곰팡이가 위에 덮인 열무김치와 상해버린 오리고기, 시들어 비틀어진 토마토를 버렸다. 작은 통마다 먹다가 조금씩 남은 반찬들이 들어 있다. 맘먹은 김에 싹 쓰레기통에 쏟아부었다. 그러고 나니 설거지 그릇이 개수통으로 하나다.
신나게 그릇을 씻고 있는데 남편이 부른다. "장모님 혼자 화장실 가신 것 같은데……. 볼일 보셨는지 뒤처리해줘요." 얼른 손을 닦고 화장실로 들어가니 대형 사고를 쳤다. 화장실에서 실수를 하시고 스스로 처리를 하시려다가 온통 난장판을 만들어 놨다. 생각보다 큰일을 당하면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오는 것처럼 오히려 차분해진다. 괜찮다고 등 두드려주며 뒤처리를 했다. 아주 욕실 대청소가 되었다. 내친김에 머리 감고 샤워까지 시켰다. 모시고 나와 닦고 옷을 입혀놓고 나니 이번엔 내가 샤워를 해야 될 판이다.
거실에 있던 남편은 엇뜨거라! 하고 이미 사라져 버렸다. 이런 인간을 봤나! 하는 수없이 문을 조금 열어놓고 샤워를 한다. 그런데 그 와중에 털커덕하는 보행기 소리가 난다. 욕실에서 빼꼼히 내다보니 혼자 또 어디로 나갈 태세다. 부랴부랴 옷을 입고 나와 거실로 모시고 나왔다. 별 볼일도 없는데 그리 급하게 잠시를 못 기다려준다. 거실 소파에 둘이 우두커니 앉아 있다. 뭐 할 일은 많이 있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엄마는 참을성이 조금 더 없어졌다. 본인이 생각하면 즉시 해야 한다. 그리고 야단맞기 싫어서 잘못을 감춘다. 또 다른 사람이 어찌 생각할까 보다 내가 생각하는 데로 무조건 한다. 오늘도 나한테 야단맞기 싫어서 혼자 처리하려다 사단이 벌어졌다. 얼마 전에 고집부리다 옷에 음식을 쏟아 실수하신 것을 크게 야단친 적이 있다. 그 후로 내 눈치를 보신다. 그러면서도 본인이 맘먹으면 혼자라도 기어코 하려 해서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해드릴 수밖에 없다. 엄마는 독점하려는 아이 같다. 나의 핸드폰. 책, 설거지, 샤워, 밥 먹기보다 당신이 우선이고 싶어 한다. 이 모든 걸 질투한다.
신체기능으로는 왼쪽 발목에 힘이 조금 더 없어졌다. 혼자 들어 올릴 수 있는 높이가 3센티도 안 된다. 발목을 회전할 수도 없다. 그래서 똑바로 서있을 때도 뭔가에 의지하지 않으면 왼쪽으로 쓰러진다. 지팡이 짚고 걸을 때도 좌회전, 우회전이 안 된다. 보조인이 한 손을 잡아줘야 된다. 잘 걷다가도 장애물이 나타나면 한참 전부터 발이 안 떨어진다. 아무리 설득해도 안 된다. 손부터 내밀어 뭔가를 잡기 전에는 한 발짝도 안 움직인다. 그런데 그걸 잡으려다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식이다. 너무 멀리서 팔을 뻗어 잡으려 해서 좀 더 가까이 와서 몸의 균형을 잡으라고 늘 "더 가까이" "더 가까이"를 외치지만 막무가내다. 잘 관찰하니 거리감을 느끼는 감각이 떨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고집이 아니라 보호본능일 것이다.
말을 점점 못 하게 돼서 의사소통이 어렵다. 매일 일어나는 일상은 서로 알아차리지만 어쩌다 생기는 일은 못 알아듣겠다. 뜬금없이 맥락도 없이 거두절미하고 말을 하기 때문에 더 알 수가 없다. 오늘도 밥 먹다가 갑자기 주어도 없이 "풀 값하고 차비"라고 하시는데 무슨 말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30분을 이 말 저 말 추궁하고 연습장에 글씨로도 쓰고 해서 얼마 전에 사촌들 다녀간 이야기를 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사촌이 벌초를 대신해줬는데 수고비와 내려가는 차비를 주셨다는 말씀이셨다. 2차 대전 독일군 암호보다 해독이 어렵다.
엄마의 기억력과 판단력은 나보다 좋다. 우리가 못 알아듣고 깊은 뜻을 이해 못해 어린아이처럼 대하니 엄마도 답답한 노릇일 테다. 그러나 이 간격은 엄마의 언어장애 때문에 끝까지 좁히지 못할 듯하다.
엄마는 그 옛날 어린 나를 큰 아이처럼 취급해서 "다 큰 게 철딱서니 없이……."라며 야단을 쳤다. 난 그때 어리광도 부리고 싶었고 보살핌도 받고 싶었는데 엄마는 늘 나를 혼자 서도록 요구했었다. 난 그게 싫었다. 의젓하고 어른스러운 아이, 내게 요구된 역할이었다. 떼를 쓰고 어리광을 부려도 받아줄 사람이 없고 싸움에 지고 와서 울면 위로해줄 사람도 없는 그런 아이인 것이 정말 억울했다.
자신을 어린아이처럼 대하는 것이 엄마는 자존심 상하고 싫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자기 자리에서 자기 마음의 나이만큼 대우받고 싶어 한다. 엄마의 행동과 마음의 거리가 멀어지는 만큼 퇴행이 진행된다.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행동은 어린아이가 되어가는 엄마에게 어른 대접을 해드리자면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