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죽 한 그릇도 제대로 못 끓여주면서 뭐가 힘들다고
아침에 또 엄마에게 모진 소리를 하고 말았다. 잘하건 못하건 엄마를 모시고 살며 잘 지켜지지 않는 꼭 한 가지를 늘 다짐해왔다. '화내며 소리 지르지 말자', '해서 후회될 말, 모진 소리를 하지 말자' 하는 것이다. 한동안 잘 지켜왔는데 오늘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토요일, 일요일 이틀을 다른 식구 없이 둘이만 지내는 건 쉽지 않다. 거의 하루 종일 엄마를 들여다보며 있어야 되기 때문이다. 어제는 다행히 이웃에 사는 친구 할머니가 오랜만에 놀러 오셔서 한 시간이라도 잘 보냈다. 휴일에는 독서를 하고 싶은 열망이 일어서 식탁에 독서대를 펴고 앉지만 10분을 지속할 수 없다. 연신 불러대니 아예 개인 시간을 포기하면 속 편하지만 책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해 늘 사단이 벌어진다. 쏟고 흘리는 것은 잔소리로 끝나지만 혼자 예고 없이 움직이다가 넘어지거나 미끄러지면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오고 울화가 치민다.
엄마의 행동에 대한 질책이기도 하지만 부족하고 이기적인 자신에 대한 자괴감도 들어 있다. 일주일에 단 이틀 온전히 정신 쏟아 돌볼 수는 없는가? 자녀를 돌볼 때는 온 정신을 다하고 '나'라는 존재는 없는데 자식이 부모를 볼 때는 안된다. 엄마도 나 키울 때나 우리 아이들 키울 때 그랬을 텐데, 그 알량한 책이나 글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엄마가 우리 아이들 삼 남매를 혼자 손에 키울 때 나는 아침에 나가면 마음 편히 일하고 저녁에나 돌아왔다. 아이들이 하루 종일 사고를 좀 쳤겠는가마는 엄마는 나에게 아이들에 대해 나쁜 소리는 한마디도 안 하셨다. 말 안 듣고 사고 치면 등줄기 한 대 철썩 내리치기는 했어도 아이들에게 해될 말을 하지 않았다. 2년 터울로 셋이 같이 크다 보면 저지레도 전염이 된다. 막내가 똥을 싸서 기저귀를 갈라치면 둘째가 옆에서 카펫에 우유를 쏟고 큰애는 의자에 올라서서 장난치다 거꾸로 내리 꽂히는 식이다. 그러면 엄마는 울화가 치밀어 둘째 등줄기를 한 대 때린다. 한 명이 울면 나머지는 자동 제압되기 때문이다. 매일이 이런 식이다. 다쳐서 업고 안고 병원에 달려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재래시장이라도 갈라치면 유모차에 둘을 태우고 옆에 하나 손잡고 좁은 시장 바닥을 뚫고 나가면 얼굴에선 땀이 뚝뚝 떨어진다. 그렇게 엄마는 혼자 십 년 넘게 아이들과 씨름을 했다.
지금 내가 엄마를 보는 건 그야말로 엄마 식으로 하면 '껌값'이다. 비록 보행기를 의지하지만 엄마 힘으로 걸을 수 있고, 어눌하긴 하지만 아주 말을 못 하는 것도 아니고, 판단이 흐려도 어린이 인지상태보다는 나으니 돌보는 게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니다. 내가 하라고 하는 것보다 당신 생각이 먼저고, 거리 감각이 없어져 헛짚어 넘어질 위험이 있지만 오랜 삶의 경험으로 돌다리를 두드리듯 나아간다. 다만 돌보는 사람이 큰 아이처럼 생각하지 않고 기대 수준을 정상적 성인으로 잡으니 행동이 이해가 안 가는 것뿐이다. 가끔 쇼핑센터에서 떼쓰며 우는 아이와 엄마를 보면 그 아이가 엄마 같은 생각이 든다. 엄마의 주머니 사정은 아랑곳없이 자기 장난감만 생각하는 초등생처럼 엄마가 자신의 욕구를 즉시즉시 해결해주기를 원하는 것은 똑같다. 일을 몰아서 하면 좋은데 생각날 때마다 부른다.
그래도 소리치고 화내는 것은 그때뿐 잠시 앉아 생각하면 또 짠하다. 옥수수를 쪄서 뜨거울 때 드시라고 드렸다. 옛날 엄마가 아이들에게 해줬듯이 젓가락에 끼워서. 앉은자리에서 한 자루 금세 드셨다. 다음날은 복날이라 삼계탕을 해드리고 싶었지만 엄두가 안나 인스턴트 삼계탕을 사서 데워드렸다. 한 마리 다 못 드시고 반마리는 남겼다. 엄마는 계절마다 절기에 맞게 복에는 삼계탕과 수박, 동지에는 팥죽, 보름에는 나물과 오곡찰밥, 아이들 생일 때마다 수수 팥 단지를 꼭 해주셨는데, 닭죽 한 그릇도 제대로 못 끓여주면서 뭐가 힘들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