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잠에서 깨어

엄마가 옆에 있으니 좋다. 이렇게라도 오래 같이 살 수 있으면 좋겠다

by 안경숙

아침에 샤워하고 옷 갈아입다가 넘어져 뒤통수에 혹이 났다. 피까지 비치는 걸 보니 아플 것 같다. 아픈 건 둘째치고 엄마도 나도 놀라서 한참 동안 진정이 안됐다. 먼저 일으켜 침대에 앉힌 후 물을 두 모금 마시게 했다. 그리고 팔과 다리 손목에 골절이 없는지 살폈다. 다행히 부러진 곳은 없는 모양이다. 나도 콩죽 같은 땀이 흘러 눈앞이 잘 안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한 번씩 넘어질 때마다 조심스러워서 점점 더 못 걷게 된다. 실패의 경험은 우리를 움츠리게 한다. 넘어지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엄마는 발걸음을 멀리 디디지 못한다. 까치걸음을 하며 종종종 걷는다. 다리에 힘이 현저히 빠졌다. 무언가 고정된 지지대를 잡으면 놓지 않으려 한다. 지팡이나 보행기를 안고 넘어진 기억이 있어서 보행기를 밀고 가다가도 기둥이나 손잡이 등 고정된 물건을 보면 보행기를 놓고 그 장치를 잡으려 한다. 그러다 오히려 헛짚어서 넘어지는 사고가 난다.


넘어진 후로 며칠 동안 엄마는 온몸이 아픈 모양이다. 뒤통수 혹 난 것 때문에 머리도 모로 하고 누워야 되고 허리와 엉덩이도 아프단다. 내가 마구 눕히면 정말 아픈지 나를 손으로 찰싹찰싹 때린다. 약국에 갔더니 근육이 놀란 것 같다고 진통제와 근육이완제를 준다. 큰 알약이 네 알이나 되어 삼키기 어려워하면서도 목젖에 힘을 꾹꾹 눌러주며 삼킨다. 요 며칠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져 있다.


살아오며 엄마는 이 보다 더 심한 고통을 겪은 날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러나 정신으로 이겨냈다. 무거운 짐을 이고 다닐 때 고개가 어깨까지 파고들어 자라목이 될 정도로 힘들었지만 엄마는 자고 나면 언제나 씩씩하게 회복되었다. 몸 아프다고 누워서 하루 쉰 적도 없었다. 아플 땐 일을 해야 낫는다는 철학을 가지고 산 분이다.


그런데 지금의 고통은 정신력으로 버틸 수 없는 괴로움이다.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움직이지만 나아질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고통스럽다. 엄마의 몸은 점점 허물어질 것이다. 다리, 팔, 손, 목을 둘러싼 근육들이 움직이지 않고 마지막에는 음식을 삼킬 수 없게 된다. 나는 엄마의 병이 더디게 진행되어 자연스러운 늙음의 속도에 맞춰주기만을 간절히 기원할 뿐이다. 죽는 순간까지 밥숟갈을 들고 음식을 삼킬 수 있기를 기도한다.


밤마다 잠이 깨는 엄마를 따라 나도 막내도 잠이 깬다. 밤사이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가 창을 두드린다. 엄마가 부르는 소리로 착각하고 놀라 깼다. 엄마 방으로 갔더니 엄마는 입을 벌리고 깊이 잠들어있다. 깊이 잠들기 힘들기 때문에 혹여 깰까 봐 입을 다물어 드리지 못했다. 까치발로 나온다.


창문에 어른거리는 나무 그림자를 보고 있노라니 여름날 시골집 마당에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있던 때가 생각난다. 우리 어릴 때만 해도 밤하늘엔 은하수 하얗게 빛났고 별자리도 뚜렷이 구별되었다. 달큼하게 감칠맛 나는 옥수수와 분이 하얗게 나는 찐 감자를 먹을 때 살갗에 달라붙는 모기를 쫓아주는 엄마의 부채바람이 좋았다.


밤중에 홀로 누워 옛날을 생각하니 엄마와 나의 보부상 같던 삶이 떠오른다. 언제든 이사 갈 수 있게 간단한 세간, 윗목에 놓인 엄마의 비단 보따리와 옷값으로 받은 곡식 자루들이 방의 절반을 차지해 엄마와 나는 크기도 작은 방 아랫목에 꼭 붙어 잤다. 이제는 식구수대로 방 한 칸씩 차지하고 누우니 잘 살게 된 삶이 도리어 쓸쓸하다. 어린 시절 내 소원은 내 방을 가져보는 것이었는데 이제 덩그런 침대에 원 없이 뒹굴게 되었지만 행복은 그만큼 늘어난 것 같진 않다. 그래도 엄마가 옆에 있으니 좋다. 이렇게라도 살 수 있는 날이 조금이라도 길었으면 좋겠다. 할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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