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버티는 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의 태도로 엄마는 버텨 나간다

by 안경숙

토요일 아침마다 TV에서는 시골 고향마을 같은 곳에서 나이 든 어르신들이 사는 일상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나온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엄마를 보면 그런 곳에 가고 싶으신지 아니신지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언제부터인가 엄마의 감정표현이 많이 사라졌다. 아니 단순해졌다. 화를 내거나 울거나 웃고 나다. 일어나고 싶은데 불러도 아무도 안 올 때 엄마는 화를 낸다. 화가 난 표시는 막대기로 침대 기둥을 세게 두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손을 뿌리치는 정도가 화가 났다는 것을 나타내는 행동이다. 그러다가 맘대로 안 될 때 서러움의 표시로 '왕~' 소리를 내며 운다. 눈물이 나지 않고 금방 그치는 울음이지만 그 순간의 폭발력은 크다. 친척이나 아는 분들은 그 순간에 옆에 있으며 깜짝 놀라 엄청 당황한다. 식구들은 종종 있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다는 듯 살짝 안아주고 등을 토닥거려준다. 그러면 금방 멈추고 언제 그랬냐는 일상의 무표정으로 돌아온다.


그런 엄마가 눈을 빛내는 순간이 있다. 뭔가 우편물이 날아오거나 고지서를 발견했을 때이다. 돈과 관련하여 은행통장을 살필 때 엄마는 정신을 집중한다. 몸이 아프기 전까지는 엄마는 뭐라도 일을 했다. 옛날부터 혼자 벌어서 살아온 삶의 흔적이 늙어서도 몸에 배 있다. 한 푼이라도 절약하려면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걸어갔다. 하다못해 슈퍼에서 개업기념 바가지 하나를 준다고 해도 땡볕에 걸어서 그 먼 슈퍼에서 물건을 사 오곤 했다. 금요일 저녁마다 농협 장터에서 열리는 지역특산물 시장을 빠지지 않고 갔으며,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전단지도 물휴지라도 하나 끼어있으면 꼭 두 장씩 받아 오곤 했다. 나이 들어 계산이 잘 안되어도 은행계좌는 엄마가 직접 관리한다. 지금도 통장이 든 주머니는 엄마만 아는 장소에 보관 중이다. 물론 나는 훤히 아는 곳이지만 모르는 척한다.


"돋보기 가져와봐라" 관리비 명세서를 꼼꼼히 들여다보시는 폼이 예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밥도 꼭꼭 씹어 열심히 드신다. 혼자 잘하시다가도 손자가 양치와 세수를 도와주면 좋아하신다. 사랑에는 그저 허물어지는 모성이다. 아니 조모성인가?


기운이 좋으시다면 결코 나에게 살림을 맡기지 않을 분이다. 이렇게 허투루 돈을 쓰고 살림도 알차게 못하는 나를 믿고 맡길 리 없다. 설혹 맡기더라도 사사건건 간섭하고 통제하려 하실 분이다. 그러다 결국 성에 차지 않아 다시 뺏어가셨을 거다. 그런데 이제 엄마는 혼자서 일처리를 못한다. 2년 전만 해도 지팡이를 짚고 은행을 가셨는데. 이제는 은행 앞에 주차한 차에 엄마가 앉아계시면 내가 들어가 작성한 신청서를 은행 직원이 주차장으로 들고 나와 엄마에게 도장을 받아간다. 단골 은행이니 망정이지 이제 그런 곳은 없을 거다. 조금 있는 예금은 아마도 엄마가 이 세상 마지막 돌아가실 때까지 엄마 명의로 해놓아야 맘이 놓이실 것이다. 그래도 돈 쓸 일 있으면 꼭 엄마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주며 시킨다. 아이들은 할머니께 돈 만원을 받아 편의점 물건을 사 오고 영수증과 잔돈을 꼭 할머니 손에 쥐어 준다. 십 원 한 푼 떨구는 일 없이. 엄마는 아이들이 말을 잘 들으면 다 큰 성인이 되었지만 만원씩 심부름 값을 준다. 돈에 아쉬움이 없는 아이들도 꾸벅 인사하며 고맙게 받는다. 요즘은 상태가 많이 안 좋아져 할머니가 직접 심부름시킬 일이 없으니 아이들 용돈 아르바이트도 없어졌다.


엄마는 평생을 경우 바르게 살아오셨고 열심히 일해 돈을 모았다. 남에게 조금이라도 폐 끼치는 것을 싫어하셨고 당신도 절대 남으로부터 속임을 당하거나 손해를 보지 않으셨다. 돈 벌려는 욕심은 있어도 헛된 욕심을 부리지는 않으셔서 남에게 사기당한 일도 없었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 '내 몸 써서 버는 돈이 진짜 돈이다.' '놀면 뭐하나 땅이라도 파라.' ' 땅을 파 봐라 10원짜리 동전 한 푼 나오나?' '돈 무서운 줄 알아라.' ' 손가락으로 돈 새 나가기 시작하면 금세 쪽박 찬다.' ' 밥 한 톨이라도 멀쩡한 걸 버리면 죄받는다.' 엄마가 입이 닳도록 한 말로 나는 귀가 닳도록 들었다. 그래서 나는 살면서 주식 한 주 못 사봤고, 복권 한 장 내 돈 주고 안 샀다. 과감하게 도전하고 투자하지 못하는 삶에 대해 아쉬움도 있다. 자식들은 그렇게 가르치고 싶지 않았지만 엄마가 육아를 전담하다 보니 아이들도 나와 똑같은 말 들으며 자랐다. 돈에 있어서는 소심하고 그릇이 작다.


그래도 엄마는 명예와 지위를 중히 여기는 옛날 분이다. 내가 직장에서 성공하기를 바랐고 세상에 이름을 날리기를 원했다. 어린 시절에는 판검사나 외교관을 시키고 싶었지만 너무나 가난해서 배곯고 살던 시골 아이에게는 막연한 소망이었다. 그래도 엄마는 꿈을 이루고 싶어 나를 집도 절도 없는 서울로 전학을 시켰다. 덕분에 중학교 때부터 혼자 자취를 하며 자란 나는 마음만은 엄청 자유인으로 살았다. 말하자면 외롭고 고독한 도시의 자유인이다. 엄마의 의도와는 달리 나는 권위를 부정하고 체제의 압박에 적응하지 못했다. 수업을 빼먹고, 학교를 중단하고, 홀로 여행하며 평균인의 삶에서 벗어난 성장기를 거쳤다. 그래도 엄마를 완전히 반역할 수 없었기에 제도권에 발 한쪽을 걸치고 방황하는 얼치기 자유인으로 살았다. 회색지대에 거주하며 엄마에게 보이는 면은 정상적 사회인이고 보이지 않는 나의 내면은 저항적인 반체제인 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저항성은 줄어들고 현실에 적응하는 평범한 사회인이 되어갔다. 이제 엄마도 나도 이 사회의 가장 모범적인 구성원이고 때론 무기력한 지성인이다.


나는 나이 들어가며 삶에 가장 필요한 태도로 호기심과 유머를 꼽는다. 늘 깨어있기 위해 호기심을 버리면 안 되고 세상에서 주는 상처 받지 않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유머가 필요하다. 몸이 아파 자유롭지 못한 엄마도 아직 호기심은 다 버리지 않았다. 보행기에 의지해 어렵게 걸음을 떼면서도 현관에 꽂혀있는 봉투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돋보기 가져와라." 하며 꼼꼼히 서류를 들여다본다. 당신이 아니어도 누군가가 어련히 알아서 할 테지만 엄마 눈에 띄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그리고 가끔 꼬장도 부리고 은근히 일부러 속도 썩이신다. 나는 화를 내지만 속으로는 아직 엄마 속에 유머 코드가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삶을 살면 급격히 허물어진다. 엄마가 저 정도로 버티는 것도 적극적인 인생의 태도를 유지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다리에 힘이 더 빠져 잘 못 걸으시는데 센터에서 움직일 때라도 휠체어를 쓰면 안 되겠냐고 원장님이 전화했다. 나는 엄마에게 물어보겠다고 했다. 엄마는 그 말을 듣자마자 손을 내저으신다. 그 의지력이 아직 엄마를 버티게 하는 힘이다.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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