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객관화해나가는

엄마를 잡고 펑펑 울었다. 그래도 또 우리는 살아가는 이유를 찾는다

by 안경숙

배우 전미선이 자살했다는 뉴스를 봤다. 사망 원인을 우울증으로 추정한다는데 전날 아버지와 통화를 하며 가족들이 아파 힘들다고 했다고 한다. 기사에 따르면 전미선의 어머니 아버지가 아프고 얼마 전 올케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전미선이 유명 배우니까 기사에 나와 알게 되지만 일반인들이 가족의 질병과 간병에 따른 고통은 알려지지도 않는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간병인의 도움을 받지만 어려운 사람들은 그 고통의 짐을 오롯이 가족들이 져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간병인들의 어려움도 똑같을 터, 돈이 아니라면 그 일을 하겠는가? 그래서 점점 간병 계통은 조선족이나 중국인들이 맡고 있는 형국이다.


엄마가 아프고 나서 이런 뉴스들을 보면 발이 걸려 그냥 넘어가지가 않는다. 나의 경우야 가벼운 부담이지만 상태가 점점 어려워졌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부담은 늘 가지고 있다.


어려움을 견디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나 이를 치료하는 사람들의 글을 읽고 인간 존재의 존귀함과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고통은 현실이므로 이 사람들이 어떻게 그 개인의 고통을 존재론적 고난으로 객관화하여 극복해 나가는지 구체적 과정들도 눈여겨봤다. 정신이든 신체든 주체가 자각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론적으로야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아프면 '나에게 왜 이런 불행이?'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남들은 다 건강하게 웃으며 행복해하는데 나만 불행하다 하는 생각 때문에 점점 더 불행해진다. 고통을 극복한 사람들의 글을 읽어보면 이 모든 과정을 거친 후 인간 존재에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삶의 과정 중 한 모습이라는 것을 수용하면서 그 고통에서 헤어 나올 수 있다.


환자 본인이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간병하는 가족들도 함께 공부해야 긴 어려움의 기간을 헤쳐갈 수 있다. 잘할 때도 있지만 때로 못할 때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죄책감을 갖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우는 아이를 어린이 집에 놔두고 나올 때 바삐 출근하던 엄마들은 돌아서 눈물을 훔친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 분리의 과정을 거쳐 점점 철이 들고 사회적 인간으로 되어간다. 노년은 그 정상적 사회인에서 오롯한 개인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고독과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완전히 혼자인 죽음의 과정까지.


며칠 전 엄마를 잡고 펑펑 울었다. 엄청 힘들고 피곤한 날이었는데 그날따라 별것도 아닌데 침대에 누워 급하게 나를 찾는 땅땅 신호를 계속 보낸다. 혼자 일어날 수 있어 보이는데. 너무 속상해서 "엄마 나한테 왜 이래? 나 너무 힘들어"라고 퍼붓는데 갑자기 저 아래서 울음이 울컥울컥 치솟아 올랐다. 멈춰야지 하는데 안돼서 결국 펑펑 울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 엄마와 나는 한층 조심하며 산다. 물론 농담하며 안 잡아주는 스파르타 훈련도 하며 겉은 똑같지만 또 그런 폭발이 일어나지 않게 미리미리 조정한다. 엄마도 가능하면 혼자 하려고 애쓴다. 점점 어려워질 것을 우리 둘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내야 한다는 것에 엄마와 나는 침묵의 동의를 한 상태다. 이 정도도 좋다.


전미선이 우울증 약을 먹었다니 그 심정에 이르게 된 게 안타까웠다. 유명인이 아니었다면 가끔은 울면서 어려움을 드러내며 잘 헤쳐 나갔을지 모르는데. 전미선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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