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불교 경전의 글귀가 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과 같이 혼자서 가라'는 내용이다. 여러 가지 해석이 있겠지만 이 말을 처음 들었던 대학교 시절 나는 무척 외로운 처지였다.
설렘을 안고 경험했던 미팅의 결과도 시원치 않고, 끼리끼리 몰려다니는 세련된 학과생들과도 서먹서먹했다. 그렇다고 열성적으로 현실에 뛰어드는 운동권도 아니었다. 웃기는 소리로 하자면 ‘캠퍼스 배회파’로 분류되려나. 그러던 어느날 학생회관 벽에 붙어있던 이 글을 보며 어찌나 위안을 받았던지. 아마도 거기는 불교학생회 동아리방 옆이었던 것 같다. 종교적인 의미와는 무관하게 나는 이렇게 살겠다고 다짐했었다. 외로움을 감추고 당당하게, 아니 당당한 척 살아가기로.
사회에 나와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그야말로 무소의 뿔처럼 혼자 당당하게 나아갔다. 내 안에는 외로움이 가득 차 있었지만, 남들은 나를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걸크러쉬’ ‘여걸’ 이런 말로 불렀다. 호칭이 사람을 만든다고 나 또한 그 말에 걸맞기 위해 그렇게 행동했다. 비록 한밤중에 홀로 깨어 외로움의 폭포수를 맞을지라도.
직장에서 퇴직을 하고 환갑이 지났다. 이제 모든 위장의 외피를 벗어도 될 때가 되었다. 나를 놀라게 하는 외부의 소리, 흔드는 바람, 혼탁한 연못은 사라졌다.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라고 내면의 소리는 외친다. 이제 약한 모습, 지질한 모습 모두 드러내도 된다고. 노인의 나이는 어찌 보면 가장 나다운 모습이 되는 것이 아닐까. 비틀거리고, 기억하지 못하고, 연약해지는 나이, 갓 태어나 세상을 알아가던 아이의 모습처럼.
인터넷에서 ‘무소의 뿔’ 경구가 들어있는 불교 경전 숫타니파타의 글을 다시 만났다. 수없이 많은 욕망을 버리라는 출가자의 삶을 노래한 것이라 추측되었다. 보통 사람이 그 글대로 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읽어 내려가다가 중간쯤에서 이런 구절을 만났다.
‘널리 배워 진리를 아는 고매하고 총명한 친구와 사귀라.’
처자도 부모도 재산도 다 버리라고 노래하면서 오직 가지라고 하는 것이 총명한 친구라니. 정말 반가운 말씀이었다. 다 버리라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오십에 만난 친구들이 있다. 아무 조건 없이 함께 책을 읽는 친구들이다. 한 달에 한 번 얼굴을 보지만 우리는 항상 느슨한 끈으로 이어진 관계이다. 너무 팽팽해 끊어질 염려도 없고, 너무 늘어져 아무 의미 없는 그런 관계는 또 아니다. 가끔 살짝 당겨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다시 자유롭게 끈을 풀어 놓는다.
직장 생활하며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마음이 통할 때도 있었고 원수같이 생각되는 사람도 있었다. 오랜 세월 나만의 그물망으로 된 체로 거르고 걸렀더니 몇 명의 도반이 남았다. 별다른 걸 함께 하는 것도 아니다. 밥 먹고, 가끔 만나 탁구 치고, 그러다 내키면 여행도 간다.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미소를 마주하는 친구들이다.
어린 시절 스쳐 간 인연 중에도, 절망하며 힘들어할 때 곁에 있던 사람 중에도 남은 길을 함께 갈 총명한 동반자들이 더러 있다. 글을 쓰며 새로 만난 친구들도 진리를 아는 고매한 존재들이다. 누구나 자신이 깨달은 딱 그만큼 비슷한 친구를 만날 수 있다. ‘끼리끼리 만난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라는 말들이 있지 않은가.
21세기 가족주의가 허물어지고 있다고 한다.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관계가 사라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각자 혼자 잘 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로를 지지하고 경계해 줄 수 있는 관계는 필요하다. 구속, 지배, 권위가 아니라 평등, 반려, 함께하는 친구 같은 동반자 관계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는 말은 표현 그대로 혼자 살아가라는 의미가 아니라, 주위의 쓸데없는 말에 너무 상처받지 말고 살아가라는 뜻이 아닐까. 세파에 휘둘리지 말고 자기 주관을 가지고 살면 된다고.
어린 시절 아이에게 엄마가 필요했듯이, 세상 소풍에서 돌아가는 나이에는 묵묵히 함께 걸어갈 친구가 필요하다. 혼자 걷지만 같은 길을 함께 가는 도반이 있어야 한다. 제대로 가고 있는지 비춰볼 거울처럼. 널리 배우고, 진리를 알며, 고매하고 총명한 친구라면 더 바랄 것이 없다. 나 또한 친구에게 그런 존재가 되기 위해 오늘도 글을 쓰며 진리를 탐구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