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를 통해 내 아이가 살아있음을 느끼다

내 안의 준서가 세상에 내미는 작은 손길

by 준수한 서재

좋은 일을 하고 싶다면, 그 일을 이미 하고 있는 사람을 후원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마음만 앞선 채 오래 고민하기보다, 그 일을 잘 아는 사람이 더 잘할 수 있게 돕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내용이었다. 그 말은 당시 내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고, 지금까지도 깊이 남아 있다.


나에게 기부나 후원은, 크리스마스 구세군 냄비나 길거리의 구호단체 모금함 같은 이미지였다. 또는 의류수거함이나 공항의 외국동전 모으기 함처럼, 쓰지 않는 물건들이 누군가에게 필요로 바뀌는 과정을 돕는 것. 기부에 인색하지도, 그렇다고 아주 열성적이지도 않던 나는 작은 계기로 해외 아동 1대 1 정기 후원을 시작하게 되었다.


낯선 나라에 사는 세 아이와 연결되었고, 아이들이 보내오는 편지와 사진 속에서 그들이 조금씩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나는 적은 금액이라도 누군가의 삶에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따뜻한 기분을 주는지 깨달았다. 어린 시절 읽었던 키다리 아저씨의 마음을 잠시나마 이해했던 것 같다.


기부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아버지가 위암 선고를 받으셨을 때였다. 아빠와 함께 다니던 종교단체에 매달 3만 원씩 정기 기부를 시작했다. 기부는 대가 없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신과의 거래를 시도한 것이었다.

“이렇게 기부도 하고 착하게 살 테니, 아빠를 살려주세요.”

신은 아버지를 살려주셨지만, 그다음에 내 아들 준서를 살려주지는 않았다.


준서가 떠난 후 나는 종교단체에의 후원 대신, 준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곳에 기부를 시작했다. 남편과 뜻을 모아 준서의 빈소에 찾아와 준 조문객들의 조의금을 모아 기부했고, 준서의 생일이나 기념일에는 조혈모세포은행협회와 백혈병소아암협회 등에 후원했다. 준서처럼 아프지만 여전히 투병 중인 아이들과 그 가족들에게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내가 직접 나서서 무언가를 할 에너지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응원하는 일을 이미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웃소싱한 셈이다. 나보다 그 일을 더 잘할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줄 거라는 믿음으로, 내가 스스로 행동할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을 찾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둔 것이다.


아들의 이름으로 기부를 하면서 나는 준서가 기억되기를 바라는 사적인 마음도 덤으로 듬뿍 얹었다. 기부는 내게 단순한 나눔을 넘어, 손에 닿지 않는 머나먼 별이 되어버린 준서를 기억하며 살아가는 한 방식이 되었다.가장 큰 의미는 내 마음속의 준서가 준서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아직 이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나는 그 순간 세상과 준서 간의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를 다시금 생생하게 느낀다.


기부가 꼭 돈으로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특히 헌혈을 추천하고 싶다. 준서가 아팠을 때 가장 큰 도움을 받았던 것이 바로 혈액이었다. 혈액은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자원이다. 준서를 떠난 후, 나는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자로 등록했고 남편은 꾸준히 헌혈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아들이 받은 소중한 피를 자신의 피로 갚겠다는 마음으로 헌혈을 시작했다. 헌혈은 생명을 살리는 가장 즉각적이고 실질적인 기부 중 하나다. 신체 건강한 젊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헌혈의 집을 찾아가 보면 좋겠다.


기부는 받는 사람을 위한 일이지만, 주는 사람에게도 큰 위로가 된다. 기부를 통해 우리는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느낄 수 있다. 그 소소한 자존감의 고양이 다시금 나와 내 주변에 좋은 에너지를 가져다줄 것이다. 준서를 떠올리며, 기부로 이어지는 나의 작은 선택들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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