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인 식사는 심플하게
"어휴, 재미없어."
온라인으로 장을 보면서 두부를 담는 중이었다. 어떤 것들을 사는지 동생이 궁금해하길래 얘기해 줬더니 하는 말이 저렇다. 듣기에 좋은 말은 아니었지만, 수긍했다. 두부 전에 장바구니에 담았던 건 토마토, 새송이버섯, 양배추, 달걀... 누군가에겐 잠재력이 있는 재료들이겠지만 내 손에 들어오는 순간 밋밋하게 사라질 운명이니까.
토마토는 납작하게 썰려서 드레싱 없는 샐러드에 들어갈 것이고, 새송이 버섯은 생으로 구워져 소금, 후추나 조금 묻을 것이고, 양배추는 익지도 못한 채 기름장에 찍혀 그대로 먹힐 운명이다. 어쩌면 달걀 정도는 운 좋게 동생에게 넘어가 촉촉한 달걀찜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내 손에서는 그저 삶아질 뿐일 거다. 두부는? 동생에게 간택당할 리 없으니 끓는 물에 데쳐져 김이나 모락모락 내면서 아무 양념 없이 접시에 담기겠지.
처음부터 이렇게 "재미없는" 건 아니었다. 스스로 끼니를 챙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요리하는 걸 꽤 즐겼다. 파스타를 종류별로 만들어 먹고, 친구들을 불러 '연어 파피요트'같은 낯선 이름의 요리를 대접하거나, 밖에서 맛있게 먹은 메뉴를 집에서 따라 만드는 열정이 있었다. 새로운 레시피를 연구해 가며 노트에 기록할 정도로 진심이었다(그 노트 어디에 뒀더라). 뭔가를 만들어내면서 스트레스를 푼다는 게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내 부엌'에 대한 감흥이 조금 시들해졌고, 동네 맛집을 찾아 연달아 외식을 하기도 했다. 마침 동네에 좋은 식당이 많았고, 저녁 약속도 많던 시기였다. 그러다 만사가 귀찮게 느껴지면서 간편식만 찾게 됐다. 맛집에 가는 대신 마켓컬리에 접속했다. 냉장고를 요리 재료가 아닌 피코크와 비비고로 채웠다. 그러다 속이 영 더부룩하고 몸이 무거워진다 싶으면 다시 요리를 시작하고, 그러다 지치면 외식을 하고, 다시 간편식을 찾고... 10년에 걸쳐 돌고 도는 경험 끝에 지금의 식생활에 정착했다. 이건 본격적인 요리를 하는 건 귀찮고 간편식만 먹자니 마음이 무거운 나에게 딱 맞는 심플한 방식이다. 이제 막 독립생활을 시작한 동생에게는 한없이 심심해 보이겠지만.
잘 '차려'먹는 것에 대한 집착을 줄이고 간편한 조리를 추구하면서 저녁시간이 더 길어졌다. 퇴근 후, 집에 오면 주로 채소나 고기, 달걀, 두부 정도를 가장 단순하게 조리해서 먹는데, 식사를 준비하는 데 10분이 채 안 걸린다. 채소는 대부분 생으로, 아무 드레싱 없이 먹는다. 가끔 후추나 올리브유 정도를 더하는데, 양배추만큼은 참기름과 소금을 섞은 기름장에 찍어 먹는 걸 좋아한다. 버섯과 고기는 소금을 뿌려 굽고, 종종 고추냉이를 곁들여 먹는다. 겨울에는 특별히 알배추와 얇게 썬 고기를 쯔유를 푼 물에 데쳐 먹는다. 달걀은 반숙을 선호하는데, 시간을 자주 깜빡하기 때문에 완숙이 된다. 흰자는 그냥 먹고, 노른자에는 소금을 뿌린다. 두부는 노릇하게 부쳐진 걸 좋아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주로 그냥 뜨거운 물에 데쳐 먹는다. 이렇게 하면 식사 준비도 빠르지만 설거지도 간단하다. 밥을 먹고 바로 설거지를 하는 어른이 될 줄은 몰랐는데, 눌어붙은 양념이나 건더기가 남은 국물이 없으니 부담 없이 바로 해치울 수 있다.
조리는 간단하게 하지만, 재료를 고를 때는 나름대로 고심한다. 사람들과 어울려 식사를 할 때는 음식의 종류, 맛, 공간의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일상적으로 해결하는 끼니에서는 음식 그 자체의 영양소를 생각한다. 그렇다고 재료나 조리법에 대한 대단한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고, 단백질이나 식이섬유가 부족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정도다. 탄수화물과 지방은 회사 식당에서 충분히 공급받기 때문에, 주로 단백질이 부족하지 않게 신경 쓴다. 그래서 가장 만만한 달걀과 두부가 늘 장바구니에 담긴다.
자연스럽게 '밥'을 먹지 않게 되고, 그러다 보니 내 식탁에서 김치나 밑반찬은 활약할 기회가 좀처럼 없다. 냉장고에 김치가 없는 한국인이 있다? 그게 바로 접니다. 게다가 양념 없이 두부나 데쳐 먹다 보면 밀폐용기에 담긴 김치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냄새를 풍기는지 알게 되고, 냉장고에 김치를 두기가 두려워진다. 기껏 만들어둔 반찬을 웬만해서는 가져가지 않는 딸에게 섭섭해하는 듯했던 엄마도 더 이상 뭔가를 만들어 쥐어 줄 생각은 하지 않는다. 대신 장을 볼 때 고기를 양껏 사서 냉장고를 채워주는 것으로 딸의 섭식에 관여하고 있다. 나도 엄마의 음식을 참 좋아하지만, 손맛이 그리울 때는 엄마의 식탁에서 잔뜩 먹고 온다.
먹고 마시는 걸 좋아한다. 다채로운 음식과 풍성한 식탁이 주는 행복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미래의 인류가 음식을 알약으로 대체하게 된다면... 그런 미래에는 가고 싶지 않다. 입버릇처럼 말하듯이, 여전히 '한 끼 한 끼가 소중하다'.
하지만 집에서의 일상적인 식사만큼은 심플하게 하면서 절제하는 삶에도 나를 잘 대접하는 기쁨이 있다는 걸 알아가고 있다. 이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영역의 기쁨. 이 담백한 만족감이 좋다.
(photo: Shelley Pau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