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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Sep 22. 2022

직장생활 재밌냐?

부장님이 신입사원에게 물었다

회의실에서 행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참석자 수에 맞게 준비한 생수와 다과, 책자와 안내 자료를 책상 위에 하나씩 올렸다. 책상 배치는 알맞게 되었는지, 올려둔 물건은 정렬이 잘 맞는지 점검했다.  책상 하나에 생수 한 개, 생수 하나 위에 종이컵 한 개. 책상 하나에 책자 한 권, 책자 옆에 펜 접시 하나. 반복적으로 움직이다 보니 이성과 감성은 쉬고, 손과 발만 일을 하는 경지에 올랐다.



취업하기 전 예능에서인가 드라마에서인가, 회사 신입 사원은 '복사'가 주업무라는 내용을 본 적있다. 나는 그다지 복사에 대한 기억은 없다. 대신 이런 회의자료를 세팅하는 단순 반복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회의 준비가 당시 내 주 업무였기 때문에 자주 있는 일이었다.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다. 학창시절 나는 내가 좀 더 학구적이고 분석적인 일을 하게 될 거라 기대했었다. 그래도 그다지 낭만적인 편은 아니라 상황에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 애썼다. 낭만이 좀 더 컸더라면 다른 직장을 찾아 떠났을 수도 있겠으나, 돈을 버는데에 좀 더 집중하기로 했다. 그래도 나는 행사장을 제법 예쁘게 세팅하는 데에 재주가 있었다.



이날도 그런 평범한 날이었는데, 어느 순간 부장님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직장생활 재밌냐?"



직장생활 재밌냐? 라니... 포괄적인 물음에 다양한 생각이 가지를 쳤다. "음... 뭐라고 말해야 하지?". 회의실에서 단순 반복 운동을 하고 있는 내가 좀 무료해 보이셨던 걸까?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말하는 게 맞을까? 순간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재밌다고 답해야 하나?



하지만 지금 내 표정은 너무 무미건조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책상에 책자, 생수, 안내자료, 종이컵을 올려두는 일은 나한테 그다지 재미있는 일은 아니었다. 가끔씩은 사무실을 벗어나 몸을 움직이는 게 좋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서 막 신나는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때는 보수적인 조직 문화 속에서 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개성을 억누르고 지내던 시절이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나만이 캐릭터가 상사와 동료들을 당황시킬 것만 같아서, 나름 눈치 보며 지냈다. 신입이 어떻다더라 뒷얘기가 나오는 걸 들을수록 더욱 움츠려 들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도 편하게 어울리지를 못했다. 친한 사람이 없으니 인간관계에서 오는 즐거움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몇년 뒤 나는 회사 선후배 동료들이랑 정말 많이 친해졌다. 평일/주말 할거없이 같이 밥먹고 어울려 놀았고, 가끔씩 여행도 다니면서 재밌게 지냈다. 그렇지만 신입시절에는 위와같은 이유로 살짝 아싸처럼 다녔다.)



그럼 재미없다고 답해야 하나?



상사가 물었는데 "직장생활 재미없습니다"라니. 이건 그냥 맞는 답이 아닌 것 같았다. 괜히 이상하지 않나? 뭔가 모범적인 답변을 말해야 할 것 같은데, 이건 대충 봐도 아니다. 나는 아직 입사 지원서에 잉크도 채 마르지 않은 신입사원이 아니던가.



재미를 찾는 중입니다.



나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이 회사에서 내가 물품 세팅만 평생 할 것도 아니고, 분명 재밌는 일들이 더 많을 거라 생각했다. 신입이니까 이런저런 일들을 하는 거지 경험이 쌓이고 능력이 향상되면 나 또한 할 수 있는 게 더 많아지지 않을까? 정보 검색하고 보고서 작성하고,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것들을 좋아하니까. 나중에 그런 일들을 맡아서 하게 되면 더 재밌는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아직은 신입이라 모든 게 어색해서 사람들이랑도 어울리지 못하지만, 긴장이 좀 풀리고 사람들과 친해지면 더 재밌지 않을까 생각했다. 슬슬 동기들이랑도 가까워지던 시기라 이런저런 회사생활을 공유하고 같이 저녁에 맥주 한잔 하는 재미가 생기고 있었다.



내 대답은 부장님께 어떤 인상을 줬을까? 마냥 잘 보이기 위한 감언이설을 오히려 불편해하는 분이셨던지라 재미있게 웃어 넘겨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장님과 더욱 친해져서 편하게 대화하는 사이가 되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옳은 답일까?'라고 고민하는 일도 당연히 줄었다. 나대로 편하게 얘기해도 상대방이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을 거란 확신이 생겼을 때 나도 한번 물어보았다.



부장님, 직장생활 재밌으세요?



아. 니. 재. 미. 없. 어.


 

그런 거였다. 사실 부장님이 재미가 없어서 나한테 물어봤던 거였다. 직장생활 7 차가  지금 나는 옆에서 일하고 있는 신입사원에게 물어보고 싶다. 직장생활 재미있냐고. 하지만 내가 그러했듯 막내 또한 '옳은 ' 찾아 고민에 빠지지 않을까? 묻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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