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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Jul 11. 2022

사직서 이후에 보이는 것들

동료

나는 7년 차에 사직원을 제출했다. 




이 회사가 아니다 싶어 뛰쳐나가는 3개월 차가 아니며, 중고 신입으로 이직하는 1~2년 차도 아니고, 적성과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가장 많은 3년 차도 아니다. 명예퇴직을 생각하는 15년 차도 아닌, 정말 어중간한 7년 차다.




코로나 한창이던 지난 3년간친구들과 멀어졌다. 어쩌면 코로나가 아니었더라도 각자의 삶이 달라지는 분기점이었을지도 모른다. 결혼, 육아, 직장, 지역 등 각종 이유로 자연스럽게 어느 정도 멀어졌을 거란 생각이 든다. 자연스럽게 멀어졌을지도 모르는 관계들은 삼엄했던 코로나 거리두기와 함께 정말 빠르게 정리됐다.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당시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이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 남녀 간의 사랑, 부모 자식, 형제간의 사랑, 친구 간의 사랑. 그 모든 관계 속에서 서로를 잘 사랑하면서 사는 방법론에 대한 책이었다. 이 책의 이야기는 인간이 고립되어 있을 때 얼마나 불안하고 슬픈지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됐다. 




하필 가장 외롭던 시기에 읽었기에 기억에 오래 남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깨닫는 시간이었다. '혼자' 사는 1인 가구에게 몇 년간 이어지는 '거리두기'는 정말 많이 힘들었다. 자칭 타칭 혼자 놀기의 달인이었는데도 말이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는 것과, 강제로 고립되는 것은 다르지 않은가. 아직도 그 시절의 코로나 블루를 생각하면 조금 울적해진다. 




© LSK, 출처 Pixabay




그런 코로나 시기 덕분에(?) 회사 사람들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 되었다. 친구란 사적 영역에서 만난 사람들, 학생 때부터 오래도록 이어온 인연이라고만 생각했다. 공적 영역. 그것도 회사 선후배 동료로 만난 사람들과 가까운 친구가 될 거라는 생각은 못했었다. 일정 거리감을 두는 게 더 바람직할 거라고도 생각했었다. 돌이켜보니 이런 생각들도 편견이고 나의 고정관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지금 내게 가까운 '친구'는 내 옆에 있는 회사 동료들이었다. 나와 가장 자주 만나고,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힘들거나 기쁘거나, 서로의 삶을 밥 한 끼와 술 한잔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친구가 아니면 누가 친구란 말인가. 그렇게 거리두기 기간 동안 나는 회사와의 거리를 좁히게 됐다. 친구에 대한 정의도 달리 하기로 했다. 



지금 나와 가까운 사람, 친구



© quinoal, 출처 Unsplash




코로나가 잠시 사그라들 때에 맞춰서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코로나가 심해서 별다른 일을 할 수 없던 시기에는 그냥 한강변을 따라 산책하기도 했다. 주말에 밥해먹기 막막한 자취생들끼리 감자조림에 햇반을 돌려먹기도 했고, 어느 부장님의 집들이에 초대받아 와인을 여러 병 비우고 돌아오기도 했다. 그렇게 일상 속에서 내 맘속 깊은 정서를 털어놓고 위로를 받았다. 정작 내 기존 '친구'들로부터는 그러한 위로를 받지 못하는 시기였다.




오늘도, 어제도, 나의 전 직장 회사 동료들은 '잘 지내냐', '심심해서, 생각나서 연락했다' 안부를 물어왔다. 나는 이렇게 회사 동료, '친구'들의 연락을 받으며, 적적한 마음을 느꼈다. 택시를 타고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예전 회사를 지나쳐가는데, 왜 이렇게 씁쓸한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회사라는 물리적인 공간으로부터는 거리두기를 완료했는데, 아직 마음이 그 근처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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