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겨울에 떠날 태국 여행 준비 기록.
여행지로 태국을 정한 것은 사실 다소 만만한 여행지라서다. 스페인 비행기 티켓을 알아봤다가 가격을 보고 단번에 유럽 여행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아직 아니다. 직항도 거의 없어 비행 시간이 20시간이 훌쩍 넘고 가격도 인당 왕복비용이 150만원을 가볍게 넘었다. 그 정도 비용을 지불할 정도로 간절하게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으므로 해외 여행에 대한 욕구는 채워주되 비용은 조금 더 만만한 여행지를 찾아야 했다.
나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날씨가 좋으면 행복하고 날씨가 나쁘면 쉽게 우울하고 지친다. 고로 여행의 본전을 뽑으려면 계절 상으로 적기인 여행지를 골라야 한다. 비용도 아주 비싸지 않고, 계절 상 여행 적기인 곳이면서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가서 여행 난이도도 크게 높지 않은 곳. 태국이었다. 예전에 방콕에 갔을 때 기억이 좋긴 했어도 아주 미친듯이 다시 가고 싶은 여행지까진 아니었지만, 지금 어쨌든 미친듯이 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이 아닌 땅을 밟고 싶었으므로 여러 조건이 대강 부합하는 태국으로 정한다. 어쨌든 음식도 맛있고 물가도 저렴한 편이고 호캉스하기 좋은 호텔도 많고 장점이 많은 곳이다. 전에 갔을 때는 우기였지만 이번엔 건기에 가니까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으리란 기대도 있다.
방콕도 좋긴 했지만 한 번 가봤던 방콕을 다시 가기보다는 기왕이면 새로운 도시를 가보고 싶어서 치앙마이를 후보에 올렸다. 한달살기에 좋은 도시라고들 하던데, 사실 그게 여행지로서 매력적이란 뜻인지는 모르겠다. 장기 체류하기 좋은 조건인 거랑 짧게 여행을 와서 즐기기에 좋은 곳인 거랑은 또 다르니까. 상당히 심심하고 유유자적하기 좋은 도시라던데, 과연 나랑 잘 맞을까? 술도 안 마시고 시끄러운 것도 싫어해서 유흥과는 거리가 멀기는 하지만 또 가만히 있는다고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당시에 좋으나 싫으나 어쨌든 강렬한 경험이 기억으로 남고, 대부분 나중에 미화되어 추억으로 남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것도 일종의 가벼운 강박인지도 모른다. 여행을 갔으니 어떻게든 기억에 남을 만한 경험을 하고야 말겠다는. 일례로 하동에 갔을 때 의외로 좋았던 것은 관광지가 아닌 한적하고 조그마한 카페에 갔을 때의 기억이다. 열어둔 문으로 바람이 불고 맑은 하늘이 보이고,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와 나무들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크지 않게 들렸던 때 말이다.
어떻게 여행 계획을 짤 지는 그동안 여행을 회고해보면 계획의 방향성을 좀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좋은 숙소는 중요하다. 나한테 좋은 숙소란 기본적으로 청결해야 하고 덤으로 특색 있거나 조식이 맛있으면 더 좋다.
- 정말 좋았던 숙소를 꼽는다면 푸꾸옥의 살린다 리조트를 꼽겠다. 물론 그때 당시 좋은 숙소에 대한 경험이 적어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맛있는 조식, 깨끗하고 조용하고 고급스러운 숙소, 작지만 붐비지 않는 예쁜 풀, 앞에 있는 비치와 야자수는 덤으로 좋았던 곳이다.
- 반대로 괜히 예약했다 싶은 곳은 강원도 속초의 롯데 리조트였다. 규모가 큰 만큼 사람들도 매우 많아 북적였고, 체크인 과정이나 조식당도 정말 정신 없고 시끄러웠다. 인피니티 풀도 당시 날씨로는 너무 추웠고 말이다. 그 숙소에 묵어서 좋았던 점이라면 가는 길에 속초 해수욕장이 예뻤다는 것 정도.
- 속초에서 좋았던 숙소는 오히려 가격이 저렴했던 에어비앤비. 낡은 아파트였지만 내부를 완전히 리모델링해서 인테리어도 예뻤고 조용하고 깨끗했다. 거실 창으로는 바다가 보였는데 아침에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보는 뷰가 소소하지만 참 좋았다. 가격까지 저렴했으니 가심비로 만족도가 더 높았던 게 아닌가 싶다.
-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는 같은 지역에서 숙소를 굳이 나눠가면서 잡으려면 그 숙소에 그럴만한 메리트가 있을지 잘 따져봐야 한다는 것. 가격이 비싸다고 반드시 더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강원도 여행에서 약간 아쉬웠던 점은 한 지역에서도 숙소를 여러 개 나눠 잡았다는 것이다.
- 그룹 단위 여행객이 많은 규모 있는 리조트보다는 작지만 조용한 부티크 리조트가 더 나한테 잘 맞는 것 같다.
- 또 좋았던 숙소의 기억을 짚어보자면 방콕의 샹그릴라 크룽텝 윙도 좋았다. 넓고 조용하고 좋은 향기가 나는 큰 로비와 높은 층고에 대리석 바닥. 전체적으로 호텔 로비나 복도를 돌아다니면서 시끄럽다는 인상을 받은 적이 없었다. 조식은 다소 평범했지만 풀이 참 좋았다. 특히 밤에 사람 없을 때 조명이 켜진 수영장이 예뻤고, 야자수 사이로 빌딩들의 야경이 보이는 것도 좋았다.
- 반대로 별로였던 숙소는 강원도 강릉의 한 펜션이었다. 초당동에 위치해서 유명한 맛집들 사이에 있었지만 나는 엄청난 웨이팅을 감내해서 맛집에 가고 싶어할 정도의 미식가가 못된다. 펜션의 평점이 매우 높은 편이었어서 믿고 예약했는데, 확실히 청소 상태는 좋았지만 방음이나 하드웨어가 많이 부실했다.
-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는 글로벌 체인은 믿고 가는 이유가 있다는 것. 개인이 직접 만들고 운영하는 숙소는 좀 더 유의 깊게 살펴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샹그릴라도 규모가 큰 호텔이었지만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있어서 좋았다는 점. 숙소의 절대적 규모보다는 분위기가 중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