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치앙마이에서만 내내 머물까 생각했다가 헷징을 위해서 방콕과 끄라비도 추가했다. 과연 내가 치앙마이를 좋아할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2주동안 도시 간 이동경로를 정할 때는 숙소 값을 기준으로 결정했다. 12월 말이 될수록 끄라비 같은 휴양지의 숙소 값 상승폭이 매우 컸기 때문에 끄라비를 12월 중순으로 배치하고 비교적 숙소 값이 저렴한 치앙마이를 뒤에 배치했다.
12월 말 - 1월 초의 태국은 초성수기라고 한다. 유럽이 너무 비싸서 태국으로 돌렸는데, 태국 호텔들을 서칭하다보니 괜스레 박탈감이 들기도 한다. 비성수기 때는 훨씬 저렴한 숙소가 내가 가는 시기에는 1.5배에서 2배 가량 뛰어있다. 어떤 숙소가 마음에 들어서 좀 더 정보를 얻기 위해 유튜브나 블로그를 검색해보면 단돈 몇 만원에 이 좋은 숙소에 묵었다는 얘기가 많은데 나는 그 단돈 얼마에 가지 못하니까 손해보는 느낌이라 괜히 예약이 망설여진다.
하지만 그 시기에 유럽의 숙소를 검색해보고는 이내 간사하게도 마음이 바뀐다. 아무리 초성수기라도 태국은 태국인 것이다. 내가 가는 시기에 호텔들의 가격을 대략적으로 살펴보면서 마음속으로 상한선을 정했는데, 그 기준이 1박에 25만원이었다. 전반적으로 그 시기에 호텔 값들이 다 비싸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저 그런 숙소가 아니라 와우 포인트가 있는 좋은 숙소에 머물고 싶은 욕심도 있어서 그럭저럭 타협한 지점이 저 상한선이었다.
방콕을 기준으로 말하자면 나도 페닌슐라, 수코타이, 세인트 레지스, 월도프, 만다린 오리엔탈, 켐핀스키 같은 숙소에 묵고 싶었다. 하지만 초성수기에 주말도 껴있는 일정으로는 너무나 비쌌다. 그리고 방콕은 전에 다녀왔기 때문에 3박 일정으로 생각했고, 3박은 호텔을 쪼개기엔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하루만 비싼 호텔에 묵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저런 고오급 호텔들은 언젠가 다음을 기약하며 내려놓기로 했다. 상한이 25만원만 되어도 충분히 부담스러웠으니 말이다.
그 다음으로 고려한 것은 그랜드 하얏트 에라완, 콘래드, 메리어트 수라웡세였다. 그랜드 하얏트는 수영장과 로비가 괜찮아 보여서, 메리어트는 신축, 인피니티풀, 조식 때문에 마음에 들었고 콘래드는 딱히 끌리는 포인트는 없었지만 그냥 조용하게 묵기엔 무난할 것 같고 룸피니 공원 근처여서 후보에 올렸다.
하지만 하얏트는 BTS 소음이 꽤 있다는 이야기 때문에 아웃, 메리어트는 위치랑 호텔 규모에 비해 가격이 너무 비싼 것 같아서 고심 끝에 제외했다. 객실이나 건물이 너무 모던해서 서울에 있는 호텔과 구분이 잘 안가는 것도 조금 아쉬웠다. 그냥 가격 상한을 만족하는 한에서 무난한 선택을 할까 하고 콘래드도 마지막까지 고심했다. 하지만 기왕 가는 거 불쾌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것 이상의 만족스러운 호텔에 묵어보고도 싶었기 때문에 계속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서칭하다가 여러모로 타협점을 만족하는 호텔을 찾았다.
더 아테네 호텔 럭셔리 콜렉션. 딱히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는 호텔이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간다는 쉐라톤 그랑데 스쿰빗 뒤에도 럭셔리 콜렉션이 붙는다는 감상 외에는 전혀 생소한. 찾아보니 얘도 메리어트 계열이라고 해서 새삼 글로벌 호텔 체인의 시장 점유율은 정말 대단하구나 생각했다. 이 호텔은 꽤 오래된 호텔이지만 몇 년전에 한 번 리노베이션을 진행해서 그렇게까지는 낡은 티가 나지 않는데다가, 내 취향 영역에 있는 웅장한 로비와 조경이 괜찮은 수영장을 갖고 있다.
BTS 역에서 도보 이동이 가능해서 교통편도 나름 좋은 편이고, 룸피니 공원에서 크게 멀지 않은 점도 마음에 들었다. 구글 평점도 아주 좋고 한국인 후기가 많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다들 만족했다는 내용이었다. 모던하지는 않지만 어차피 세련됨은 나의 취향 영역에서 중요한 파트가 아니었다. 트렌디한 인테리어를 원했다면 스탠다드 마하나콘 같은 곳을 예약했겠지만 나는 그랜드 하얏트 서울이나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 같은 웅장하고 차분한 느낌이 더 좋다.
가격은 약간 상한을 오버하는 듯이 보였지만 호텔 예약 사이트들을 여기저기 뒤져서 가장 저렴한 곳에서 예약하니 다행히 딱 상한선을 맞출 수 있었다. 호텔을 예약하고 나니 오랜만에 갈 방콕이 더욱 기대되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