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나 May 14. 2023

2. 경력단절녀가 된 24살 청년의 10년 뒤 이야기

사실 나는 오만하게도 경력단절녀가 결혼한 게으른 여자들의 좋은 핑곗거리라고 생각했다.

결혼을 한다고 해서 삶이 변할 거라는 생각을 못했고,

내가 있던 ‘군대’라는 집단은 아이러니하게도 육아휴직이나 출산휴가 제도가 잘 되어있었기에 바깥세상을 잘 모르기도 했다.


90년생으로 살면서, 남녀차별이라고 할 만한 특별한 경험이 없어서.

아이를 낳는다고 경력이 단절된다거나 약자가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고,

아이 키우는 사람을 주변에서 본 적이 없어서 아이를 키우면서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초인적인 힘을 필요로 하는지도 잘 몰랐다.




첫 아이를 낳고 출산휴가에 돌입한 지 두 달. 나는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눈 밑은 퀭하고, 멘탈은 이미 사라져 버린 지 오래. 오늘 하루 식사를 하루 세 번 했는지, 잠은 4시간 이상 잤는지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피폐해져 있었다.


그 와중에 복직할 날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멀리 사시는 시어머니께서 직접 오셔서 아이를 봐주시기로 했다.

평일 5일간 봐주시고, 주말엔 다시 내려가시고를 반복했다.

주말 당직근무가 있는 날에, 또 주말이 낀 훈련이나 행사가 있는 날에도 봐주셨다.


어머님은 다시 댁으로 돌아가신 날이면 하루는 앓아누우셨다고 했다.


아직 스스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그렇다고 내 자식 키우는 일에 다른 이의 희생을 갈아 넣는 걸 보는 것도 괴로웠다.

매일이 죄송하고 송구스럽고, 죄책감이 드는 나날들을 이기지 못해 결국 나는 육아휴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육아휴직으로 나는 아이의 온 세상이 되었고 24시간을 나와한 몸처럼 딱 붙어 지냈다.

그렇게 2년을 보내고 나니, 복직할 자신이 없었다.

아이는 내가 잠깐만 없어도 불안해했고, 울었다.


2년 간 함께 해온 아이가 나 없이 울 모습을 볼 자신도,

나 대신 낮동안 아이를 봐줄 다른 사람의 희생을 볼 자신도 없었다.


도저히 복직할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어린이집을 보낸다 한들 3시에 끝마치는 아이를 누가 봐줄 것이며,

이주일에 한 번 꼴로 감기와 중이염, 장염 등등 잔병치레로 가정에서 보육해야 하는 날들은 또 어떻게 할까. (아이가 5세가 되기 전까지는 면역력이 형성되느라 온갖 바이러스를 온몸으로 다 받아낸다.)

게다가 육아만 해도 체력이 바닥인데 일을 하고 돌아와 지친 몸으로 육아까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슈퍼우먼 워킹맘들이 있지만, 나는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저출생이 두각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이 종종 일어나는 나라여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엄마에게 육아휴직이나 출산휴가가 있기는 하지만 쉽게 쓸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도 아니고

아빠들의 육아휴직도 일부 대기업과 공기업에 존재하기는 하지만 역시나 쉽게 쓸 수 없다(쓰고 나면 인사고과에 차질이 생기거나 평판에 문제가 생긴다고 하는 이들을 종종 보았다)

휴직을 부부가 나누어 쓸 수 있고 그 공백을 어렵지 않게 채울 수 있는 제도적 시스템이 잘 받쳐준다면,

유럽처럼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진다면,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출산에 대한 두려움이 이렇게 크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90년생임에도 불구하고 슬슬 <나이가 많아서>라는 이유로 거절당하는 일이 생기기 시작한다.

결혼한 여성은 아이를 낳을 수도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아이가 이미 있고, 맡길 수 있는 가족이 없는 여성은 아이가 어려서 라는 이유로 또 거절당한다.

아이가 다 자라서 비교적 자유로운 여성은 경력단절 기간이 길어서 거절당한다.  (물론 이런 사례가 모두에게 해당되지 않음을 알고 있다. 누군가는 겪고 있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일터에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알아서 그들 탓을 하고 싶지는 않다.

안정적으로, 장기적으로 근무해 줄 사람을 찾는 건 고용주에겐 정말로 꼭 필요한 일이니까.


그저 뭔가 시스템 적으로 고용주와 고용인을 둘 다 만족시킬만한 그런 방법은 없는 것일까, 하는 안타까움이다.




어쨌든 지금 나는 경력단절녀가 맞다.

9년 전 경력을 이력서에 써 봤자 케케묵은 옛이야기가 될 뿐이니까.

결국 지금의 나는 누가 나를 고용하지 않아도 되는, 스스로 고용주이자 피고용인이 될 수 있는 일을 찾아 열심히 삽질 중이다.

혹시 알까, 그 삽질 중에 우연히 온천수라도 터질지.

그리고 이 일이 내 안의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한 것 같아 재미있기도 하다.

오히려 군대에 남아있었다면 모를 세계였다.


누군가가 그랬다. 모든 일에는 장점만 있지도, 단점만 있지도 않다고.

경력단절이 나에겐 그런 일이었던 것 같다.

그 사실을 조금 더 일찍 깨달았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결혼이나 출산을 앞둔 누군가에게는 경력단절 이야기가 불편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경력단절의 기록을 공개적으로 남기는 이유는 나처럼 마음의 준비나 아무런 정보 없이 시작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의 준비나 현실적인 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 싶었다.


10년 전 내가 겪었던 우울이나 낙담이 없길 바라서.

자신이 겪을 삶의 전환점에서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서.



작가의 이전글 1. 전업주부? 난 그거 안 할 줄 알았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