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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마안 Mar 26. 2021

프롤로그. 돈 빼고 다 모으는 컬렉터

모으는 즐거움 속에 비로소 알게 된 진짜 내 이야기 그리고 취향

최근의 나는 무언가를 모으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이를 두고 얼마 전 개인 인스타 프로필도 반 농담 삼아 돈 빼고 다 모으는 컬렉터라고 남기기도 했는데, 이 표현이 이상하게도 마음에 든다. 실제로 무언가를 모으는데 몰두하는 내 모습이 최근에 나를 정의하는 정직한 표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생각해 보면 어릴 적부터 모으는 행위를 즐긴 일은 꽤 많았다.(수집이나 컬렉션이라고 하기엔 다소 하찮은 것들이라 행위로 표현했다.) 한 동안은 우표도 열심히 모았고, 빵 스티커 같은 것도 꽤 많이 모아봤다. 대부분 남들 따라 유행으로 시작한 일들이었다.


별거 아니지만 유행 따라 모았던 것들은 대개 돌아보면 일종의 권력(?)과 같이 비교우위를 점할 수 있는 하나의 매개체 같은 것이었다. 빵을 수십 번 사 먹어도 나오지 않는 레어 스티커를 손에 쥐거나 혹은 용돈이 많이 생겨 백화점 안의 우표 상점에서 비싼 희귀 우표를 손에 쥐었을 때, 남들이 갖지 않은 것을 지녔다는 이유로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 마치 뭐라도 된 것 같은 경험을 잠시나마 해본 적이 있었다. 반대로 권력(?)을 손에 쥔 친구들을 동경했던 경험도 많았다.(대체로 변신이 정교한 로봇이나 레고, 게임기, 비싼 모터를 장착한 개 빠른 미니카 등등)


하지만 유행이 한철 지나고 나면 사실 이런 권력 놀이도 쉽게 시들해지곤 했다. 소중했던 레어템이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만큼 언제 그랬냐는 듯 쉽게 거리가 멀어졌다. 그런 이후 모으는 취미는 한동안 기억에서 희미해져 갔다.



다시 몰두하게 된 모으는 일


벽에 걸어두지 못한 그림들, 하나하나 추억이 서린 소중한 것들이다.


다시금 무언가를 모으는 행위에 몰두하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로 팔자에도 없던 그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이다. (사연이 TMI라 자세한 건 생략)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난생처음 일러스트 한 작품을 구매하게 됐고,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처럼 이제는 집에 걸어놓을 자리도 마땅치 않을 만큼 크고 작은 작품들을 집에 모셔두고 산다. 그렇다고 엄청 비싼 작품들이 있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시장이 바라보는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순수한 열정과 정직한 취향으로 즐기고 있다. 



완전체를 모으기 위해 프로모션 기간 동안 편의점 우유를 열심히 마셨다.


어릴 적 NHK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된 무민이라는 캐릭터를 성인이 되어 팬심으로 좋아하게 됐다. 엉뚱한데 낙천적이고 푸근한 매력까지 있는 무민 가족이 어느 순간 고단한 삶 속에서 미소를 머금게 하며 위로를 받았던 것. 그런 이후 무민과 관련된 굿즈를 틈만 나면 모으기 시작했다. 책장 한편에 쌓여가는 크고 작은 굿즈들이 하나 둘 모여있는 모습은 언제 봐도 미소가 절로 나온다. 



막 시작했지만 점점 금전적으로 부담스러워지는 LP 모으기


최근에 몰두하는 수집 아이템 1순위는 LP판. 요즘은 많이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지만 수집의 시작은 꽤 빠른 편이다.(사실 수집이 동기는 아니었지만) 2013년 오키나와 여행 때 아메리칸 빌리지에서 구해 온 마마스 앤 파파스 앨범 2장이 시초였다. 원래는 당시에 선구적으로 LP를 모으던 선배에게 선물하려고 샀는데, 재킷이 멋스러워 장식용으로 갖고 있다 턴테이블이 생기며 7년 만에 실제 판 속의 음악을 듣게 됐다. 그러고 나서는 자연스럽게 또 하나의 수집 거리가 생겨나고 말았다.


어릴 적 수집과 요즘 몰두하는 수집은 예나 지금이나 열정적인 행위지만 수집에 임하는 마음가짐이나 동기는 확연히 구분된다. 어릴 적의 수집은 유행을 따라갔고 유치하게나마 친구들 사이에서의 권력을 목표로 했다면, 지금은 지극히 순수한 동기로 취향과 자기만족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 


예전의 모으기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일단 경제활동을 하고 있고, 모을 수 있는 루트나 정보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아졌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웬만한 것들은 얼마든지 컬렉션을 구축할 수 있다. 그래서 무언가를 모으는 게 값지게 여겨지지 않을 수도 있을 법한데, 오히려 요즘이 더 어릴 적보다 모으는 열정을 크게 느끼는 것 같다. 모이는 것들 하나하나가 오롯이 나와 관련된 사연들이 있고 그것들을 바라볼 때마다 그 이야기들이 선명하게 피어난다. 나의 최애 영화 중 하나인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서 주인공 폴이 어릴 적 기억을 돌이키기 위해 먹었던 마들렌처럼...  



모이는 것들이 진짜 '나'인가?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하나하나 사연이 있는 것들이 모이게 되면 그 속에 내가 몰랐던 나를 만나게 된다. 그럴 때마다 한편으로는 마음속에서 일종의 부조화를 느끼며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모여있는 것들이 그동안 내가 알던 나와 많이 달라서...


실제로 집에 하나 둘 그림을 모아보니 나도 모르게 레드 컬러의 그림이 많은 걸 보고는 의아해한 적이 있다. 살면서 붉은 계통의 색 혹은 무언가를 좋아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쿵짝쿵짝 뛰는 음악을 좋아해 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내적 댄스를 유발하는 촌스런 디스코와 댄스 음악을 즐겨 찾아 듣는 걸 보면... 


이럴 때마다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를 다시 생각하고 나는 내 취향에 정직한 편인가를 돌아본다. 근데 분명 그 하나하나에 대한 좋은 기억이 선명하고 다시 봐도 좋은 감정을 느끼는데, 그렇다면 확실히 부정할 수 없는 내 취향이 아닌가? 


어쩌면 변해가는 내 모습일 수도 있지만, 원래 내 취향인데 나와 맞지 않는 좋아 보이는 것들을 애써 좋아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을까 하며 지난날의 나를 돌아본다. 그리고 내 생각과 다른 나를 하나 둘 인정하면서 나한테 좀 더 정직해지는 것 같아 좋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은 나를 더 알고 싶은 마음에 모으는 일에 더 열정적인 것 같다.





돈 빼고 다 모으는 컬렉터... 우스갯소리긴 하지만 진짜 나를 찾는 일에 다 돈이 들다 보니, 진짜 나라는 사람에 대한 정직한 표현이라는 확신이 점점 들고 있다. 근데 그런 나를 보며 한숨이 자꾸 나오는 이유는 뭘까... 대략적인 글감과 나름의 아웃라인이 있지만 실제로 어떻게 흘러갈지 혹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연재 글은 오롯이 나를 위해 즐기는 다양한 수집 거리에 얽힌 진짜 내 취향과 이야기다. 


* 매주 금요일 정오에 한 편씩 서랍에서 꺼내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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