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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마안 Apr 02. 2021

월급이 작고 귀엽던 시절, 작은 사치에 눈을 뜨다

돈 빼고 다 모으는 컬렉터  - 그림 첫 번째 이야기


모으는 일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열정을 가졌던 것이 바로 그림이다. 어릴 적 수채화나 데생을 잠깐 배우러 다니던 것 이외에 미술과는 아무런 관련도 관심조차도 없었지만, 우연한 계기로 피어난 숱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하나씩 스스로 찾다 보니 어느샌가 본업을 제외한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보통은 그림이 걸린 곳 혹은 전시를 보며 미술에 대한 흥미를 느끼는데,  나의 경우는 왜 사람들이 그림을 소유하고 싶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출발점이었다. 대체로 사치재를 소유하는 심리와 유사하다는 기본적인 생각은 있었지만, 내가 처음 이러한 궁금증에 빠지게 된 다소 안타까웠던 에피소드를 겪은 이후로는 미술품이라는 재화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작품은 공산품이 아닌데...'

살면서 가장 큰 호기심이 들었던 날


2012년 11월의 어느 날,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에 책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코너 한편에 눈이 머무르는 나를 발견했다. 1호 사이즈 정도 되는 작은 캔버스의 다양한 유화 그림이 코너 한편에 진열되어 있었던 것. 가격이 2만 9천 원에서 시작된 걸로 기억하는데, 책 한 권 가격 정도 되는 가격에 예쁜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어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인상을 받았다.

그중에 맘에 들었던 그림 몇 가지를 눈으로 셀렉하고는 지나가는 점원에게 그 그림들에 대해 궁금했던 점들을 물어보기로 했다. 별도로 기록된 정보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점원은 신진작가를 위해 공간을 내어주고 판매를 해주는 캠페인이라는 설명을 친절하게 해 주었지만 각각의 그림이 어떤 작가의 작품인지 어떤 타이틀을 갖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정보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공산품 같이 진열된 작품들에 아쉬움을 안고 돌아와 페이스북에 남겼던 포스트 (2012.01)


집에 돌아와 페이스북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글을 남겼다. 내가 생각하는 미술품은 크든 작든 작가의 의도와 생각이 담겨있는 소중한 창작물인데, 뭔가 찍어낸 듯한 공산품처럼 진열되어 있는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에서였다. 신진 작가의 작품을 대중적인 채널에서 널리 알리고 판로를 열어주는 좋은 의도라는 생각에는 공감했지만, 그걸 십분 살리지 못고 있는 모습에서 큰 아쉬움을 느꼈던 것 같다. 아무리 유동인구가 많은 대형 서점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공산품처럼 작품이 취급되는 것을 작가들도 원치 않았을 텐데... 약간의 직업병으로 내가 이 캠페인을 기획했다면 하며 안타까움을 속으로 삭혔던 기억이 있다


결과적으로 이 에피소드는 내 삶의 큰 이정표 같은 순간으로 남게 됐다. 이 날 이후 그림에 대한 많은 궁금증이 생겨났는데,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이러한 궁금증들이 그림을 소유하는 행위에 대한 관심 그리고 미술시장에 대한 관심으로 나를 인도했다.



우연한 기회, 떠나지 않는 발길

기어코 난생처음 빨간 스티커를 붙이다


궁금증이 계속 가시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많은 것들을 찾아보기도 하고 알만한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는데 쉽사리 손에 잡히는 것은 없었다. 실제로 그림이란 걸 한 번 사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당시 작고 귀엽던 월급으로는 정말 사치 같은 일이었다.


우연한 기회로 교회에서 주관한 시화전의 스태프로 서포트한 적이 있었다. 근육이 점차 사라지는 불치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젊은 시인 친구의 마지막 소원이었던 시화전을 열어주는 프로젝트였다. 작은 행사였지만 나름 교회 네트워크로 모인 현직 작가 분들과 큐레이터까지 참여해 성황리에 진행됐고, 당시 스탭을 하며 재능기부로 직접 작성한 보도자료를 몇 군데 배포한 덕분에 지역 미담으로도 알려진 행사였다.


젊은 신진 작가부터 중견 작가 분들까지 재능을 아낌없이 내어 놓으셨는데, 진짜 내가 봐도 저렴하게 나온 작품들이 많아 순식간에 빨간 스티커가 붙는 것을 눈 앞에서 지켜보게 됐다. 뭔가 취지가 강한 전시다 보니 시의 내용과 작품이 주는 느낌에 공감하기가 쉬웠고 상대적으로 큰 부담 없는 가격에 작품이 나오다 보니 선뜻 구매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수익금 전액이 시인 친구의 치료비로 전달됐으나, 좋은 추억을 남기고 5개월 후 하늘나라로 갔다.)



전시장을 지키는 가운데 나 역시 자꾸 눈이 가는 작품이 하나 있었다. 작은 수채 일러스트 작품이었는데 보면 볼수록 묘한  느낌이 있었다. 결코 비싼 가격은 아니었지만(가격이 8만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고 귀여운 월급으로 근근이 먹고살던 당시 나로서는 정말 큰 맘먹어야 쓸 수 있는 돈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갈등하는 소심한 내가 우습지만, 당시 30분을 고민하며 물끄러미 바라만 보다 망설임 끝에 은행에서 돈을 찾아 큐레이터를 통해 지불을 했고, 작품명 옆에는 바로 빨간 스티커가 붙었다. 


그 날 페북 글에 따르면, 빨간 스티커가 붙은 후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뒤에서 느껴졌다는 표현을 했다. 마치 뭐라도 된 것 마냥 으쓱했던 느낌이 있었나 보다. (당시 남겨 놓은 글이 아니었으면 잊혔을 기분이다.) 무엇보다도 숱한 고민 끝에 결국 내 소유가 됐다는 일종의 안도감, 그리고 세상에 하나뿐인 무언가를 갖게 됐다는 기쁨이 꽤 긴 여운으로 남았다.


그 여운은 좁고 어두운 자취방에서도 생명력 있게 여운을 이어갔다. <마음에 피는 꽃밭>이라는 짧은 시를 표현한 그림인데, 보고 있으면 계속 흐뭇한 기분이 들며 정말 마음에 꽃밭이 피어나는 느낌을 받았고 벽만 바라보면 기분이 좋아졌다. 다소 과했다는 본전 생각은 시간이 갈수록 쉽게 잊혀졌고 남은 것은 마음의 풍요로움이었다.




작은 그림 하나를 직접 소유하고 나니, 계속해서 또다시 이런 희열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마치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되듯,  좋은 그림이 눈 앞에 있다면 최소 몇십만 원 정도는 좀 더 덜 고민하고 베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작은(더 이상 귀여워 보이지는 않게 된) 월급에는 당치 않은 일이지만, 한 번 좋은 기억을 안고 나니 마음은 점차 거침이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다음 작품 수집은 시간이 꽤 많이 흐른 뒤였지만, 좋은 그림을 찾아다니는 데 나도 모르게 점차 열정적으로 변해갔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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