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죽기로 결정했나

숭고한 희생 뒤 지워지는 존재에 대하여

by 알레로그

뉴토피아를 보면서 여자친구와 "좀비 사태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할래?"라는 주제로 대화를 한 적이 있다. 뉴토피아에서는 박정민X지수가 서로를 찾기 위해 좀비들이 득실거리는 서울 시내를 넘나 든다. 이야기가 전개되려면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주인공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좀비가 되고도 남을 행동들이 이어졌다. 드라마를 보면서 답답함을 느낀 우리는, 서로의 안전을 위해 각자가 안전하리라 믿고 서로의 안전한 환경에서 끝까지 버티는 것으로 일차적인 합의를 했다.


다음 주제는 둘 중 한 명이 좀비에 물렸을 때 어떻게 할까였다. 나는 나로 인해 내 주변사람들을 위험에 빠트리는 상황이 오지 않았으면 해서, 처리할 수 있다면 나를 처리해 주기를 부탁했지만 여자친구는 반대로 본인이 물리게 된다면 내가 그녀를 단호하게 죽일 수 있냐고 물었다.

반대로 질문을 들으니, 만에 하나 좀비가 되지 않을 수도 있고 좀비가 되더라도 나중에 치료제 개발이 되어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는데 섣부르게 먼저 행동하는 게 옳은 행동인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나를 처리해 달라는 부탁처럼 ‘내가 희생하겠다’는 말은 생각보다 쉽게 나왔지만, 정말 그 상황이 와도 단호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다시 일상을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의해 내 결정이 흔들리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이 이어졌다.



조금 더 밸런스를 조절해서 비슷한 질문을 던진 소설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김동식의 단편 「운석의 주인」에서, 어느 날 우주에서 지구를 향해 운석이 날아오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런데 이 운석과 정확히 충돌하는 지점이 중간중간 바뀌는데 주인공 김남우를 따라서 운석의 경로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지구인들이 내린 결론은 ‘김남우를 지구 밖으로 보내면, 운석은 지구를 피해 갈지도 모른다’였다. 그는 좀비에 물리지 않았음에도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리게 될 상황이 된 것이다. 곧 지구인들이 내린 결론에 의해 김남우가 우주로 내보내지는 것은 기정사실화 되었다. 그리고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한 사람을 희생해서 모두를 살리는 게 정당합니까?”

저자는 주인공의 심경을 빌려 이렇게 묻는다.

‘자신의 목숨으로 세계를 구할 수 있다면, 기꺼이 바치는 게 맞는 걸까?




죽음까지는 아니더라도 공공의 이익이라는 이름 아래, 한 사람의 희생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생각보다 우리 일상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누군가는 해야 하잖아."

"네가 하면 잘할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위에서 시키는 거라 부탁 좀 할게."


이런 말들은 강요가 아닌 듯하면서도, 책임의 방향을 조용히 한 사람에게 밀어버린다.

작품 속 주인공도 그랬다. 김남우는 어째서 운석이 본인을 따라오는지 알지도 못했지만, 이미 다른 사람들에게 그의 희생은 결정된 사안이었고, ‘우주로 보내기 전 그를 먼저 죽이면 운석이 멈추지 않을까?’ 같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숭고한 희생’이라는 말은 종종 그 희생이 누군가의 선택이 아닌, 사회가 강요한 결과였음에도 ‘숭고’하다는 표현 뒤에서 불합리함이 가려지게 된다.

사회가 ‘누가 죽기로 결정했나’라는 질문을 하기보단, ‘죽어줘서 고맙다. 이 희생을 잊지 않겠다.’는 말만 남기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영웅’이란 얼마나 자주, 침묵 속에 내몰린 사람의 또 다른 이름일까.

누군가의 죽음이 정답이 되는 사회는, 얼마나 쉽게 또 다른 이름을 불러내어 똑같은 결말을 반복하게 될까.

희생하고자 하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인지, 사회가 그를 희생할 수밖에 없도록 결정했는지 우리는 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를 위해’라는 말은 고귀하게 들리지만, 그 모두에서 지워진 사람은 없는지 우리는 살펴봐야 할 것이다.

죽음이 아닌 삶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라면, 우리는 그 사람이 “안 죽고도” 모두가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다시 고민으로 돌아온다.


좀비에 물린 나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해주었으면 좋겠는지 생각해 본다.

내가 원한 죽음은 자유로운 내 의지로 결정한 것이 맞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고 싶단 마음에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건 아닐까?


희생은 언제나 숭고하지 않다.

당연한 희생은, 누군가를 조용히 지우는 방식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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