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싸움의 유전자

극단과 분열이 살아남는 전략이 된 사회

by 알레로그

트럼프 행정부가 돌아왔다. 그가 다시 백악관에 입성한 후 벌어진 일들은 익숙하면서도 불길했다. 동맹국에 대한 관세 압박, 자국 우선주의를 외친 외교 정책,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협상 전쟁'이 다시 시작됐다.

그는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싸움을 원한다. 갈등을 극대화시키고 그에게 반하는 집단을 숙청하는 과정은 결국 그를 지지하는 진영 밖에 남지 않도록 한다.

놀랍게도 이 방식은 또 한 번 통했다. 사람들은 피로감을 토로하면서도, 결국 다시 그를 선택했다. 우리 사회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반복된다. 혐오와 분열을 기반으로 한 정치적 메시지가 이상할 정도로 널리 퍼진다. 상대를 자극하는 언어, 도발적인 발언, 선 긋기와 편 가르기가 전략처럼 반복된다.

이 모든 것이 단지 정치인의 성향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가 이미 ‘갈등’을 살아남는 기술로 받아들이고 있는 걸까?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ESS(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 개념을 소개한다.

이는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는 개체들이 사회에 퍼졌을 때, 각각의 전략을 채택하는 개체들이 안정을 이루는 일정한 '비율'이 있음을 말해준다.


초기에는 단순히 ‘매파(Hawk)’와 ‘비둘기파(Dove)’의 대립 구도에서 시작된다. 매파는 언제나 싸움을 선택하고, 비둘기 파는 피하거나 겉으로만 위협한다. 이 단순한 시뮬레이션은 다양한 변수들을 넣을수록 점점 복잡해진다. 싸움의 비용, 승리의 보상, 전략의 조합에 따라 전체 집단에서 어떤 행동이 우세한 전략이 되는지 달라진다. 그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사회에 매파가 많아질수록, 평화로운 비둘기 전략이 오히려 유리해진다. 하지만 반대로 비둘기가 너무 많아지면, 다시 매파가 득세하게 된다. 즉, 어떤 개체에게 가장 좋은 전략은 개체군 대부분이 무엇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저자는 이러한 모습이 표면적으로는 집단선택설처럼 보일 수도 있다고 언급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이야기임을 강조한다. 집단선택설처럼 보이는 이유는 안정된 평형 상태가 있어서 그것을 흐트러뜨리면 다시 그 상태로 되돌아오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ESS는 집단 선택과 다르게 어떤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더 성공적인지 판단하지 않는다.




이 말은 즉슨, ESS는 어떤 전략이 도덕적이거나 옳다는 거나 성공적이라는 사실을 말해주진 않는다는 것이다. 단지, 그 전략이 현실에서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말해줄 뿐이다. ESS의 관점으로 사회를 보면, 반복되는 갈등이 단지 사람들의 감정적 미숙 때문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극단을 부추기는 정치인, 분노를 소비하는 언론, 혐오를 무기로 삼는 집단들이 언제나 일정 비율로 살아남는 이유는, 그것들을 전략으로 삼음으로써 우리 사회에서 효율적인 점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며, 그것이 살아남기 위해서 택해야 하는 올바른 전략이어서가 아니다.


극단은 주목을 얻는다. 주목은 힘을 만든다. 힘은 제도를 흔든다. 그 과정을 통해 하나의 극단이 살아남는다. 그 극단은 상대 진영의 반대 전략을 더욱 강화시키고, 결국엔 갈등이 양극화되어 균형을 형성한다. 우리는 그 균형이 불안하다는 걸 알면서도, 의외로 그 안에 익숙하게 적응해 버린다.


그리고 빠르게 영역을 확대한 극단적 집단은 그 영향력 때문에 우리 개인의 생존 전략이 된다. 주목을 얻고, 지지 기반을 만들며, 진영 논리를 강화하는 과정 안에서 정치인도, 언론도, 시민도 이 생존 게임의 플레이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갈등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실은 다른 어떤 생명체들보다 갈등이 익숙한 세상에 길들여져 있다.


갈등은 불가피하지만, 그것이 유일한 선택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우리가 이 전략이 본능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싸우는 법, 공격하는 법, 선을 긋는 법. 마치 그게 이 시대의 언어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갈등은 전략이고 수단이다. 우리가 그것을 반복하는 이유는 그저 그것이 가장 오래 살아남았기 때문이지 가장 효율적이어서가 아니다.


단순한 시뮬레이션 모델, 매파 7/12와 비둘기파 5/12로 된 안정된 개체군에서 한 개체의 평균 득점은 6.25점이라고 한다. 비둘기파만 존재하는 집단에서 비둘기파 개체들이 얻는 평균 득점 15점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수치이다. 우리가 모두 비둘기파가 되는 것에 동의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ESS에 머물러있는 경쟁자 집단보다 성공할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


물론 비둘기파만 있는 개체군에서 매파 전략을 택함으로써 일부 매파 개체군은 훨씬 더 효과적인 점수를 얻을 수 있다는 점과 우리 사회가 순수한 선의에 기대어 특정 전략을 택할 만큼 순진하고 단순한 사회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위와 같은 이야기는 이상적이고 꿈같은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이 계속 살아남도록 내버려 둘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균형을 모색할 것인지는 우리 사회 전체의 선택이다.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이라도, 반드시 윤리적으로 안정된 전략은 아니다.

우리가 어떤 전략을 유산으로 남기고 싶은지 결정할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안정적이고 효과적인 개체군이 될 수 있도록 이상적이고 순수한 전략을 채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 사회가 '진화'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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