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글을 쓰려는걸까?

글쓰기와 생존 본능의 공통점

by 알레로그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며 문장을 수정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왜 이 문장을 다시 쓰고 있는 걸까? 읽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단어 하나에 집착하면서 문장을 고치고, 글을 남기고 싶어하는 걸까? 때로는 블로그에 여러 작품들을 읽은 뒤 독후감을 적기도 하고, 때로는 감성이 풍부해지는 새벽 시간에 감정을 담은 문장들을 일기장에 남기기도 한다.

이런 글을 남기고 싶다는 내 욕망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나는 질문의 답을 뜬금 없지만 유전자에 관한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처음 읽었을 때 나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생명과학 내에 여러 가지 지식과 현상들을 우리 삶 속의 다양한 비유로 풀어서 설명하는 그의 방식은 이해하기 쉬웠을 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다른 것들도 이러한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책에 푹 빠졌던 나는 한동안 후유증으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물체와 현상들과 특징들을 ‘이기적 유전자’ 방식으로 설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곤 했다.

꽤 많은 사회현상이나 행동들이 유전자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느껴질 만큼 저자의 설득 방법은 쉽고 명쾌했다.

그리고 저자가 의도하지는 않았을 수 있겠지만 인간이 글을 쓰고 싶어지는 욕구에 대해서도 이기적 유전자의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책 속에서 생명체는 유전자의 생존을 위한 운반 도구로 다뤄진다. 인간의 이타심조차도 유전자의 생존 전략이라는 관점은 정말 신선하면서도 동시에 설득력 있었고 아직까지도 나는 이보다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은 찾지 못했다. 그래봤자 성선설, 성악설, 성무성악설 정도지만..

나라는 존재는 결국 유전자 운반 기계이고, 내 몸을 통해 유전자는 다음 세대로 나누어져 간다.

이 책은 ‘내 모든 행동이 결국 유전자의 명령에 의해 조종되는 것’이라는 불편하면서도 놀라운 해석을, 신기할 만큼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내게 전달한다. 이러한 해석을 읽고 난 후 나는 저절로 그의 이론이 옳다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그리고 내 생각은 아래와 같이 이어진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도 마찬가지로 유전자가 나에게 하는 명령 중 하나가 아닐까?



유전자는 생존 본능에 의해서 끊임없이 복제된다. 인간의 염색체를 살펴 보면, 염색체는 감수 분열, 교차, 역위 등의 돌연변이를 통해 있는 그대로 복제되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분화되어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자신의 일부라도 다음 세대로 전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변화하고 복제된다.


이런 유전자의 일련의 과정을 보면 내가 쓰고 있는 글들과 닮은 점이 보인다.


인간은 생각, 철학, 가치관 또는 이론적인 발견 등을 글로 남긴다. 그리고 이렇게 쓰여진 글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읽히고 느낀 점과 생각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다듬어져 머릿 속에 저장된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그들의 생각들은 다시 문장이라는 형태로 또는 말이라는 방식으로 세상에 나와 또 다른 사람들에게 복제된다.


자식을 유전자 복제의 결과물이라고 한다면, 글은 인간의 생각을 복제한 것의 결과물인 셈이다.


그래서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히 자기표현이나 커뮤니케이션을 넘어, 자신의 생각을 생존시키기 위한 본능적인 충동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생각이, 감정이, 이 경험이 누군가에게 닿아 기억된다면, 내 육체가 사라져도 나의 일부는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마치 유전자가 그러했듯이.


작성한 글을 처음부터 쭉 살펴본다.


나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지만, 다른 사람들도 이 글을 읽고 공감을 할지는 모르겠다.

어떤 정보들은 이미 내게는 너무 당연해져서 충분한 설명 없이 건너뛰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다른사람들에게 너무 당연한 부분이지만 나에겐 낯선 개념이었어서 주저리주저리 지우고 수정하고를 반복한 문장들이다.

다른 사람들의 글과 생각들이 합쳐져 나의 방식으로 풀어진 글.


나의 부모님은, 부모님의 부모님은, 그 윗 세대의 조상님은 갖고 있던 유전자의 복제 명령에 따라 자손을 낳기 시작했고, 다시 자손을 낳고 그 과정을 반복하여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유전자처럼 어떤 생각을 물려 받은 나는, 비록 유전자는 아니지만 내 안의 생각을 복제하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이 생각 또한 나로부터 시작된 게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매체나 글을 통해서 내게 복제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이유야 어쨌든 글쓰기가 나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내 안에 어떤 작은 생각이 명령한 행동 강령 중 하나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생각은 글을 읽은 당신에게도 복제된다.


당장 글을 쓰고 싶어지지는 않을 수도 있겠지만, 머릿속 한 구석에 작은 생각으로 복제되어 살아있을 것이다.

언젠가 먼 조상이 전하고자 했던, 인간의 말을 발명했을지도 모르는 조상이, 혹은 인간의 글을 발명했을지도 모르는 조상이, 혹은 인간의 문자를 발명했을지도 모르는 조상이 전하고자 했던 작은 명령을 담은 생각에 의해 언젠가 본인의 생각을 표현할 순간을 기다릴 것이다.


글을 쓴다는 건, 어떤 생각이 명령한 나의 흔적을 남기기 위한 발버둥이다.

육체가 사라져도 문장은 남고, 그 문장을 읽은 누군가를 통해, 나의 생각은 여전히 '존재' 할 수 있다.


이런 점을 볼 때 글쓰기는 가장 생명체다운 복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유전자를 복제하듯, 생각을 남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언젠가 글을 쓸 당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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