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백을 연출해 낼 수 있을까
가끔씩 '가짜 상황'에서 사람들의 진심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예능의 몰래카메라나 유튜브의 실험카메라를 통해서 누군가가 위기에 처한 척하면, 누군가는 당황하지만 도와주고, 누군가는 그저 지나친다. 상황이 연출이라는 걸 알게 된 후 대부분은 웃어 넘기겠지만, 일부에게 남겨지는 감정은 웃음이 아닌 불편함이 될 수도 있다.
'저게 진짜 내 모습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섬뜩한 자각.
혹은 나에게 저 상황이 똑같이 닥쳤어도 '다른 사람들처럼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도울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
가짜는 때로 진짜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김동식의 단편 『자랑하고 싶어 미치겠어』는 성범죄 가해자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피해자 김소녀는 범행 이후 스타가 되어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인물로 성장한다. 반면 가해자인 주인공은 사람들의 찬사 속에서 점점 비뚤어진 감정을 키워간다. 가해자 주변에서 국민적인 스타 김소녀를 칭찬하고 찬양하는 말들이 오갈 때 주인공은 속으로 내가 저 김사랑과 하룻밤을 보낸 사이라며 잘못된 만족감을 속으로 표출한다.
속에서 쌓여만 가던 그의 그릇된 만족감은 결국 그는 "내가 저 유명인을 예전에 성폭행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입 밖에 내는 계기가 되며, 그가 그 말을 꺼내는 순간 시뮬레이션은 종료된다. 이러한 그의 고백은 곧 법정에서 유효한 자백이 된다. 이 이야기를 통해 자백이 죄책감이 아닌 과시욕에서 비롯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시는, 잘 설계된 각본이 만들어낸 ‘함정’이었다.
이 소설을 읽으며 든 첫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왜 그는 자백했을까?” 우리가 아는 많은 범죄자들은 들키지 않는 한 침묵으로 일관한다. 특히 성범죄처럼 도덕적으로 최악으로 여겨지는 행위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선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다. 주인공은 자기 죄를 무덤 속까지 가지고 가지 않는다. 오히려 자랑하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하고 그것을 스스로 꺼내게 된다.
시뮬레이션이 인간의 내면에 있는 '과시욕'을 자극함으로써 자백을 이끌어낸 것이다.
죄를 스스로 고백하는 순간은 반드시 죄책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죄의 감면을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고 느꼈을 때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고백을 하게 되는 것이 대다수 일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하지만 이 단편에서는 위와 같은 사유가 아니었다.
인정욕구, 승리감, 혹은 타인보다 우위에 서고 싶다는 심리가 섞여 죄의 자백을 이끌어 냈다.
마치 무대 위에서의 연기가 진심을 흘리듯, 연출된 공간 속에서 범인은 자기 속마음을 흘려버린 것이다.
소설 속 시스템의 이야기이지만 실제로 이런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도록 기술적으로 뒷받침이 된다면, 현실에 반영될 수 있을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정말 이러한 '과시욕'을 자극하여 범죄자의 자백을 이끌어 내는 것이 범죄 심리학적으로 효과적인 방법일까? 하는 생각이다. 소수에 그릇된 욕망을 갖고 있는 범죄자라면 위와 같은 시나리오로 자백을 얻어 낼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욕망이 범죄자들에게 '일반적'인 감정인지 의문이 들었다.
추리물 등을 통해 범죄자들이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다는 자랑하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본 것 같기는 하나 보다 일반적인 심리를 자극하는 것이 효과적인 자백을 이끌어내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하나는,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가이다.
법정 재판을 다루는 드라마를 보면 종종 재판장에서 '검사는 지금 유도 신문을 하고 있습니다.' 하며 변호인이 판사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장면이 종종 연출되곤 한다.
위와 같은 시스템이 기술적으로 구축되었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자백을 받아내는 과정을 제도적으로 허용해 줄 수 있을지이다. 시뮬레이션이 특정한 자백을 이끌어내기 위해 가해자를 상황 속에 던져 넣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단순히 질문을 통해 유도하는 것보다 피고인에게 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위와 같은 문제들이 떠오르지만 이 밖에 떠올리지 못한 문제가 더 존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통해서 던져보고 싶었던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연출된 환경 속에서 인간을 어디까지 솔직하게 만들 수 있을까?
이러한 연출된 자백은 내면에서 나오는 고백일까, 아니면 정교하게 설계된 유도장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