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이 거듭되는 세계에서 함께였던 우리
1. 플레이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라는 말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제노블레이드3는 혼자 움직이는 순간이 거의 없습니다. 언제나 둘씩 짝을 지어 전투에 임하고 여섯명이 무리 지어 여행합니다. 모든 행동과 대사에는 ‘나’보다는 ‘우리’가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각자의 내면은 각자의 아픔과 슬픔을 품고 있었습니다. 70시간에 달하는 플레이타임은 서로를 닮아가는 여정이었고 그 닮음이 곧 이별을 준비하는 방식처럼 느껴졌습니다.
2. 이 게임은 시작부터 ‘이별’을 품고 있었습니다.
세계관 설정상 모든 캐릭터들은 10년이라는 수명을 안고 태어납니다. 싸우고 살아남는 것이 유일한 삶의 존재 이유고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건 일상처럼 반복됩니다. 그러다 보니 관계의 깊이는 빠르게 지나가고 감정은 끝을 안은 채로 생겨나죠. 그래서일까요. 지나가는 캐릭터의 짧은 대사 한 줄, 아주 짧은 시선 하나에도 80년은 살아온 사람과 같은 무언가를 담고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제한된 세계에서는, 감정조차 절실해지는 법이니까요.
3.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인터링크(짝) 시스템이었습니다.
노아와 미오, 유니와 타이온, 란츠와 세나. 6인의 일행은 전투를 함께하는 파트너이기도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며 성장해가는 과정이 정말 섬세했습니다. 초반에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조합이 어느 순간 너무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이 조용한 변화는 대사보다는 행동과 침묵으로 드러납니다.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말은 줄고, 마음은 닮아갑니다. 특히 묵묵했던 타이온이 유니에게 허브티 레시피가 담겨있는 책을 마지막에 건네주는 장면이 백미였죠.
4. 스토리 전개가 느린 덕분에 캐릭터 하나하나에 애정을 쌓을 시간이 충분했습니다.
특히 사이드 퀘스트와 히어로 퀘스트가 단순한 콘텐츠 소비를 넘어 각자의 서사를 풀어가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제노블3는 ‘스토리를 즐긴다’는 말보다 ‘인물과 함께 살아간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경험이었습니다. 누구 하나 단편적으로 소비되지 않는 점이 좋았습니다.
5. 제노블레이드3의 세계는 아름답지만, 언제나 쓸쓸함과 함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언덕 너머로 지는 해, 폐허 위를 걷는 장면, 물살이 잔잔한 호수 위의 고요한 음악. 이 모든 것이 전투보다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장면은 언제나 여섯 명이 함께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따뜻했고, 그래서 더욱 외로웠습니다.
6. 플레이 내내 느꼈던 감정은 ‘억눌린 분노’랄까요.
누군가에 의해 짜인 시스템, 그 안에서만 허용된 선택지, 그리고 그 안에서 서로를 지우고 살아가는 삶. 게임 속 설정이지만 현실에서도 종종 느껴지는 구조였기에 더 와닿았습니다. 제노블레이드3는 단순히 판타지에 머무르지 않고 ‘삶의 구조에 대한 물음’을 조용히 던지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화가 났고, 더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7. 게임 중반부터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계속 걱정했습니다.
(리쿠와 마나나를 포함한 노폰은) 다들 너무 사랑스러웠고 그만큼 이별이 가까워진다는 예감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엔딩까지 서두르지 못하고, 일부러 사이드 콘텐츠를 돌고 필요 없는 전투도 몇 번이고 반복했습니다. 이들과의 시간이 조금이라도 길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달까요. 이야기는 끝났고 예상대로 엔딩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이별은 단호하거나 차가운 것이 아니라 굉장히 조용하고, 예의 있는 방식이었습니다. 정말로 모노리스스러운.
8. 엔딩 장면은 지금도 종종 생각납니다.
조용히 흐르던 음악, 서로를 향한 마지막 눈빛, 그리고 멀어져만 가는 서로를 향해 끝없이 달려가는 장면. 그 장면에서 숨을 잠시 멈췄고 게임이 끝난 후에도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건 완성도 때문이라기보다 약 2달간 그들과 진짜 작별한 느낌이 들어서였습니다.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멀리 떠난 것 같은 감정이었습니다.
9. 그제서야 이 게임이 말하고자 했던 것이 ‘자유’가 아니라 ‘동행’이란걸 깨달았습니다.
누구와 함께였는지, 어떻게 함께였는지가 제노블3의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었습니다. 전투보다도, 퀘스트보다도, 결국 노아, 미오, 유니, 타이온, 세나, 란츠와 함께한 시간들이 마음에 가장 오래 남습니다. 제노블레이드3는 그 시간을 아름답게 기록해주는 게임이었습니다.
10. 지금 이 순간에도 문득 그들이 떠오릅니다.
음악을 틀고, 장면을 떠올리며 혼자서 조용히 되짚어보게 됩니다.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이야기. 게임기는 꺼졌지만 여전히 내 마음속에 머무는 여정. 제노블레이드3는 제게 그런 게임이었습니다. 가상인 캐릭터들이라고 해도 함께였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던 그리고 지금도 그 사실만으로 따뜻해지는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