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후기) 13기병 방위권,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완벽한 드라마
1. 첫 만남의 혼란
'13기병 방위권'을 처음 플레이했을 때 괴랄한 게임성 때문에 당황했습니다. 조작법부터 알려주는 다른 게임들과 다르게 이 작품은 시작부터 수많은 이름과 사건,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장면들, 그리고 전혀 알 수 없는 단서들이 쏟아졌기 때문입니다. 보통 게임은 서사의 기본 틀을 보여주고 차근차근 확장해나가지만 이 작품은 정반대였습니다. 무질서처럼 보이는 파편화된 이야기 속에서 저는 자연스럽게 혼란을 받아들이며 ‘이 세계는 대체 어떻게 얽혀 있는 걸까?’ 호기시믈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혼란이야말로 게임이 의도한 장치였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이 과정을 거쳐야만 나중에 다가올 연결의 순간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2. 13개의 시선
이 게임은 13명의 학생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갑니다. 어떤 이는 고등학생의 평범한 일상에서 출발하고, 또 다른 이는 거대한 로봇을 조종하며 인류의 미래를 짊어진 영웅으로 시작합니다. 서로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모든 인물들이 하나의 커다란 줄기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각자의 기억, 사랑, 두려움, 선택이 교차하면서 마치 13편의 짧은 소설을 동시에 읽는 듯한 감동을 줍니다. 캐릭터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각 인물이 지닌 세계를 들여다보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성찰처럼 다가왔습니다. 13개의 우주를 경험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죠.
3. 파편에서 퍼즐로파편 같던 이야기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퍼즐처럼 맞춰지기 시작합니다. 각 인물이 다른 시점에서 겪는 사건은 때로는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점차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진실을 향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게임을 하면서 저는 수많은 조각난 기억을 수집하는 작가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한 인물의 시선에서 본 사건이 다른 인물의 이야기에서 해답을 주고, 또 다른 인물의 이야기가 그 해답을 다시 뒤집습니다. 이런 구조 덕분에 플레이어는 단순히 ‘스토리를 보는 관객’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이야기를 조립하는 독자이자 해석자가 됩니다.
4. 인간적인 질문
하지만 이 작품이 단순히 SF로만 머물지 않는 이유는 그 속에 ‘인간적인 질문’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13명의 인물은 모두 저마다의 선택 앞에 놓입니다. 어떤 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이는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또 다른 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기계와 싸웁니다. 저는 이 장면들을 보며 “세계는 어떻게 구원되는가?”가 아니라 “인간은 어떤 선택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는가?”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화려한 로봇 전투와 시간여행의 장치 뒤에, 결국 인간의 본질적인 고민이 숨어 있었습니다.
5. 시간과 기억의 의미
'13기병 방위권'은 시간과 기억을 끊임없이 교차시킵니다. 현재라고 믿었던 순간이 사실은 과거의 잔영이거나, 미래의 한 조각임을 알게 되는 순간이 반복됩니다. 플레이어는 끊임없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진짜일까?’를 의심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과정이 단순히 혼란을 주는 장치가 아니라, 인간의 기억이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고 느꼈습니다. 기억은 언제나 편집되고 재구성되며, 그 틈 사이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진짜 나’를 찾아갑니다. 결국 이 게임은 시간과 기억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서사로 체화시킨, 하나의 철학적 실험이기도 했습니다.
6. 잘 짜여진 서사의 힘
스토리가 끝에 다다르면, 모든 파편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정교하게 맞아떨어집니다. 처음에는 제각각이던 조각들이 마지막에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는 순간의 짜릿함. 저는 그 장면에서 문학을 읽을 때 느끼는 감동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게임’이라는 범주에 묶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게 짜여진 서사라고 인정했죠. 게임이라는 장르가 이렇게까지 문학적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동시에 예시로 들 수 있는 작품을 만났다는 사실에 기뻤습니다. 잘 짜여진 이야기가 얼마나 큰 울림을 주는지, 이 작품은 그 자체로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7. 아트워크가 완성한 세계
'13기병 방위권'의 이야기가 깊이 다가올 수 있었던 힘은 '아트워크'에 있습니다. 반딧불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도시의 밤, 따스한 햇살이 스며드는 교실, 서늘한 공기가 감도는 연구소의 복도까지. 모든 배경은 마치 한 장의 일러스트처럼 섬세하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캐릭터의 표정 하나, 움직임 하나도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어 마치 애니메이션을 직접 플레이하는 듯한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특히 복잡하고 어려운 장면에서도 아트워크가 있어 이야기를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들었죠. 현실과 꿈, 과거와 미래를 구분 짓는 경계가 색감과 연출로 표현될 때 ‘비주얼만으로도 충분한 서사’를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13기병 속 아트워크들은 그 자체로 미술작품이라 말해도 손색없는 장면들로 가득 차 있었고 덕분에 저는 서사에 더 깊이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8. 13명의 세계가 만나는 순간
마지막 장에서 각 인물들의 이야기는 하나의 세계로 모입니다. 누군가는 희생을 택하고, 누군가는 끝내 사랑을 붙잡으며, 누군가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인합니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그 모든 선택들이 모여 거대한 이야기를 완성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 순간이야말로 '13기병 방위권'이 가진 진정한 매력이었습니다. 모든 인물이 단순한 조연이 아니라, 각각의 우주를 지닌 주인공으로 기능하다가 마지막에 서로를 향해 달려가는 결말. 저는 그 과정을 통해, 인간은 혼자가 아니라 서로의 선택으로 완성된다는 단순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다시금 배웠습니다.
9. 인상 깊었던 주인공 – 후유사카 이오리
수많은 캐릭터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후유사카 이오리'였습니다. 그는 특별한 능력이나 비범한 출발점이 없는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런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습이기에 괴리감이 더 크게 느껴졌죠. 이오리는 꿈과 현실이 겹쳐지는 경계에서 늘 혼란스러워하지만 결국 끝까지 '사람들과의 유대'를 놓지 않습니다. 다른 인물들이 거대한 조직과 싸울 때, 그는 일상의 감각을 끝까지 붙잡으며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오리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SF 속에서도 결국 인간을 지탱하는 건 평범한 삶과 관계라는 사실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피비린내나는 전쟁터와 시간의 뒤엉킴 속에서도 작은 일상의 가치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 이 게임의 진정한 메시지처럼 다가왔습니다.
10. 잊을 수 없는 캐릭터 – 히지야마 타카토시 "야키소바-팡"
한명을 더 꼽자면 히지야마 타카토시가 있겠네요. 군인으로서 책임감과 사명감을 중시하는 히지야마는 곧게 서 있는 태도와 명령을 중시하는 말투로 확실히 다른 학생들과 달랐습니다. 그런데 그가 보여주는 '취향'이 갭모에를 불러오는데요. 바로 '야키소바빵'을 좋아하는 모습입니다. 거대한 기계와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인물이지만 야키소바빵을 먹고 싶어하고 마주칠 때마다 "야키소바-팡"이라 외치며 행복해하는 모습은 묘하게 따뜻하고 인간적이었습니다. 군인의 진지한 얼굴 뒤에도 평범한 소년의 모습이 숨어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세계를 지키는 사명과 간단한 빵 하나에 웃음을 짓는 순간이 공존하는 모습은 우리 삶과도 닮아 있습니다. 거대한 서사 속에서도 일상이 주는 힘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히지야마가 몸소 보여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fin. 게임을 넘어선 이야기
'13기병 방위권'은 잘 직조된 문학입니다. 기억과 시간, 인간의 선택을 다룬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였고 동시에 삶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 체험이었습니다. 혼란에서 시작해 퍼즐이 맞춰지고, 결국 하나의 진실로 모이는 과정은 삶 그 자체를 닮았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통해 이야기가 가진 힘과 게임이라는 매체의 가능성을 다시 보았습니다. '13기병 방위권'은 제게 문학이자 철학이었고, 동시에 게임이 줄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이었습니다.
-총평 별점
스토리: ★★★★★
게임성: ★★★☆☆
BGM: ★★★☆☆
아트워크: ★★★★★
“복잡하지만 정교하게 직조된 서사를 경험하고 싶다면, '13기병 방위권'은 반드시 해봐야 할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