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좋지만 오래는 못해요...'게임불감증'

플레이 시간은 줄었어도 설레임은 여전한 '게이머들만의 권태기'

by 유앨런

1. 짧아진 플레이 시간

퇴근 후 집에 돌아와 게임하는 건 여전히 설레는 순간입니다. 전원을 켜고 타이틀 음악이 흐르면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문에 서 있는 것처럼 두근거림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 설렘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나이 탓인지 회사 탓인지 피로가 잔뜩 쌓여 눈꺼풀의 무게를 견디기 힘듭니다. 게임 속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어도 현실의 저는 점점 집중을 잃어가고 결국 30분 만에 그대로 잠들어버리곤 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게임을 하다가 잠드는 일이 상상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모님의 잔소리를 피해 밤을 새우던 제가 이제는 패드를 놓치고 침대에 몸을 던집니다. 짧아진 플레이 시간은 피곤을 넘어 나이가 들었다는 걸 실감하게 합니다.


2. '수집'도 게임의 일부가 아닐까

게임을 충분히 즐기지 못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게임을 ‘하는 것’보다 ‘사는 것’에 더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용돈을 모아 신작을 구매할 때마다 마치 새로운 세계관을 한 아름 안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서랍에는 아직 플레이하지 못한 패키지가 쌓여가고 라이브러리에는 실행하지 않은 타이틀이 늘어납니다. 하지만 플레이하지 못해도 이상하게도 안도감을 느낍니다. 그 게임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되니까요. 언젠가는 여유가 생기면 즐길 수 있다는 약속이 즐겁습니다. 그래서 게임은 제게 모험의 체험이자 동시에 수집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엔딩을 보기 위해 시간을 쏟아부었지만 지금은 타이틀을 손에 넣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즐거움으로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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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현실이 만든 벽

회사에서 하루 종일 이어지는 회의와 과제, 쏟아지는 메일과 보고서들로 에너지가 바닥나 버립니다. 퇴근길 무거운 발걸음은 곧장 집으로 향하고 문을 열자마자 밀려오는 피로는 저를 소파에 묶어둡니다. 컨트롤러를 쥐어도 머릿속은 여전히 오늘 일들 때문에 복잡하고, 내일 해야할 일들이 끝없이 떠오릅니다. 게임 속 전투보다 현실의 근심이 더 거대하게 자리잡으니 몰입이 예전만큼 되지 않습니다. 결국 저는 게임을 통해 휴식을 얻으려다가 오히려 현실의 무게에 눌려버리곤 합니다. 제 마음을 가볍게 만드는 게임이라는 놀이터로 도망가다가도 현실의 문제들이 집중하는 걸 막아버리는 순간, 저는 비로소 '게임불감증'을 실감합니다.


4. 익숙함이 만든 불감증

체력뿐 아니라 익숙함도 원인이 됩니다. 오랫동안 수많은 작품을 경험하면서 저는 게임이라는 장르를 점점 더 예측할 수 있게 됐습니다. 새로운 전투 시스템을 만나도 금세 익숙해지고 이야기의 구조와 전개도 어쩐지 익히 아는 구조에서 반복됩니다. 처음엔 신기했던 연출도 언젠가는 예상 가능한 공식처럼 다가오고 캐릭터의 대사와 갈등조차도 어딘가에서 본 듯한 장면처럼 느껴집니다. 게임이 재미없어진 게 아니라 너무 많은 게임을 접해봤다는 사실도 문제였습니다. 어렸을 때는 작은 모험 하나에도 가슴이 뛰었지만 이제는 그 설렘이 쉽게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화면 앞에 앉아 있으면서도 마음속에서는 ‘이 이야기는 결국 이렇게 흘러가겠지’ 하고 결말을 앞서 떠올립니다. 몰입은 줄고 불감증이 쌓여가는 요즘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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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과거와 현재의 간극

어린 시절의 저와 지금의 저는 같은 사람이지만 완전히 다른 사람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밤새워서라도 엔딩을 보고 숨겨진 던전과 보스를 클리어해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그때 게임은 단순 오락이 아니라 현실보다 더 중요한 모험이자 도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하루의 무게에 지쳐 겨우 짧은 시간만 함께하는 위로의 수단으로 게임을 붙잡습니다. 과거에는 현실에서 벗어나 게임에 집중했지만 현실에 짓눌려 게임에조차 오래 머물지 못하는 요즘입니다. 그 간극은 나이를 넘어 삶의 무게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6. 여전히 설레는 순간들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게임을 좋아합니다. 아무리 짧게 해도 새로운 게임을 시작할 때의 설렘은 여전합니다. 타이틀 화면이 뜨고 첫 음악이 흘러나올 때 제 안에 숨어 있던 어린 시절의 열정이 순간 깨어납니다. 오랫동안 반복된 패턴과 피로 속에서도 가슴 한구석이 뜨거워지는 순간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전히 기대합니다. ‘이번 게임은 다를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다시 빠져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저를 붙잡습니다. 잠깐이라도 몰입하는 그 시간은 제게 충분히 의미있고 짧은 호흡 속에서도 생동감을 안겨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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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기다림이 주는 힘

그래서 매번 다시 가슴을 뛰게 할 게임을 기다립니다. 올해 하반기에도 수많은 기대작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하데스 2, 드래곤퀘스트 1&2 리메이크, 드래곤퀘스트 7 리메이크... 이름만 봐도 다시금 설렘이 피어오르는 명작들이 기다리고 있죠. 아직 플레이하지 않았지만 언젠가 제대로 집중할 그 순간을 떠올리며 하루를 버팁니다. 기다림 자체가 즐거움이 되고 설렘이 되어 일상의 무게를 덜어내는 작은 힘이 됩니다. 현실은 여전히 버겁지만 게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저는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fin. 불감증 속에서도 게임은 역시나 즐겁다

게임을 길게 못하는 저 자신을 보며 씁쓸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깨닫습니다. 게임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 제 삶의 리듬을 만들어주는 존재라는 사실을요. 불감증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것은 게임을 오래 사랑한 사람만이 겪는 또 다른 단계일지도 모릅니다. 짧은 몰입 속에서도 여전히 가슴은 설레고 새로운 모험을 기다리는 마음은 여전합니다. 언젠가 다시 밤새우며 몰입할 날이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여전히 게임이 제 곁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다시 설레게 될 순간을 기다리며 패드를 곁에 두고 잠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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