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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brisa Aug 05. 2024

지방에서 고립되지 않는 법

책으로 만난 세상

속초살이에 대하여 남편 친구들이 "속초 가서 뭐해먹고살지?"를 묻는다면 ( '속초에 살아보니 어때' 2화 참고) 내 친구들은 제일 먼저 "외롭진 않아?"를 묻는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속초에 내려와 아이까지 키우며 살고 있다 보니 이미 육아의 길을 걷고 있는 친구들은 여기서 느끼는 고립감, 고독감을 알기에 묻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외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생각해 보면 분당에 살 때도 친구들을 자주 만나는 편은 아니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더 편안한 내향적인 인간인 데다 그저 일에 치여 출근하고 퇴근하기 바쁜 직장인이었기 때문이다. 외로움을 측정하는 잣대가 친구들을 만나는 횟수라면 우리를 핑계로 곧잘 속초에 놀러 오는 친구들 덕분에 오히려 이곳에 내려온 후 더 자주 친구들을 만나고 있다.


유독 사람들과 친해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 있다. 주목받는 것을 싫어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어렵다 보니 타인과 관계를 맺는데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내 이야기 맞다. 이곳에 내려온 지 4년이 다 되었지만 커피 한 잔 편하게 마시러 갈 친구가 한 명도 없다. (딱 한 명 있었는데 지난봄, 다른 도시로 이사 갔다.) 이렇게 지극히 내향적인 사람이 지방도시에 내려와 세상과 단절되지 않기 위해 생각한 방법은 책이다. 원래도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미생의 삶을 살며 잊고 있었던 독서본능이 육아를 하면서 다시금 깨어났다.

시작은 태교였다. 조산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 산모로서 유독 긴 10개월을 누워지내야만 하다 보니 처음에는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육아서를 읽게 되었다. 육아에세이들을 읽으며 '건강한 아이를 낳을 거야'라는 희망회로를 돌린 것이다. 출산 후에는 육아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보니 지식을 얻기 위해 읽었다. 코로나 시국이라 남들 다하는 친정 찬스도 어려운 상황이라 그야말로 책으로 육아를 배웠다. 이렇게 점점 육아서를 파다 보니 이왕이면 잘 키우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이런 욕심은 아이를 잘 키운 '좋은 엄마'가 되고 싶게 만들었다. 여기서 좋은 엄마란 공부하는 엄마, 책 읽는 엄마, 도전하는 엄마, 꿈을 이룬 엄마다.

속초교육도서관 유아열람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으로 나가야 하는데 번듯한 문화센터 한 곳 없는 속초에서 내가 택한 곳은 바로 도서관이다.


속초에는 크게 속초시에서 운영하는 속초시립도서관과 강원도교육청에서 운영하는 속초교육도서관(문화관)이 있다. 속초시립도서관은 비교적 깨끗한 건물에 어린이열람실, 장난감도서관 등이 함께 있어 유아와 함께 이용하기에 좋다. 대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용해 베스트셀러들은 항상 대출 중이다.

반면 비교적 아담한 크기의 속초교육도서관은 열람실도 작고 겉은 열악해 보여도 비교적 책도 깨끗하고 인기도서들도 항상 비치되어 있어 요즘은 이곳을 더 애용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다 보니 찾는 사람도 적어 아이와 나란히 앉아 부담 없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이곳을 자주 찾게 된 이유 중 하나다.


아이의 걸음마가 시작된 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같이 나가자는 딸에게 흐린 날 마땅히 놀러 갈 친구 집이 한 곳도 없다는 것이 속상한 적이 있다. 그럴 때 향한 곳도 도서관이다. 참 감사하게도 도서관은 늘 남녀노소 모두에게 열려있다. 내가 책을 좋아한 탓에 일찍이 아이에게 책을 많이 읽어준 까닭도 있겠지만 걸음마가 시작된 순간부터 함께 도서관을 다녀서인지 덕분에 아이는 30개월에 스스로 한글을 떼고, 43개월인 현재는 읽기 독립도 시작되었다. 무엇보다 심심하면 찾는 것이 장난감이 아니라 책이라는 것에 감사하다.






지난 봄, 올해 처음으로 진행된 '영랑호 벚꽃축제'에는 광화문광장에서 진행된 야외도서관 부스가 설치되었다. 푸른 잔디밭에 북트레일러와 미니 텐트가 있어 이 곳에 앉아 봄바람을 느끼며 독서를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곳에서 그즈음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어쩌다 속초」의 작가님을 만났다. 책을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며 내가 먼저 아는 척을 하니(이럴 때는 외향적이다.) 작가님이 사인본을 선물해 주시면서 속초에 '어른 그림책 모임'이 있으니 관심 있으면 같이하자고 초대해 주셨다.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 아직 모임에 참여한 적은 없는데 책을 통해 인간관계가 확장된 순간이다.


무엇보다 속초에서 책을 통해 시야가 더 넓어진 것은 지난 6월부터 시작하게 된 독서모임이다. 이제 겨우 두 번 진행되었지만 평소 내가 읽지 않는 장르의 도서를 읽고, 나와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신선하고 재미있다.


이로인해 나는 속초에서의 삶이 전혀 외롭지 않다. 내가 만나고 싶은 세상이 너무나 많고, 이런 세상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한 명씩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아직도 도시에 살고 있었다면 꿈도 못 꿨을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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