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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brisa Jul 29. 2024

속초댁 전통시장 첫 방문기

현지 시장 적응하기

속초살이 1595일째, 현지인을 대변하는 마음으로 이 브런치 북을 연재한 지도 어느덧 3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내 삶엔 현지인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서울촌뜨기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다.

예를 들면 바닷가 마을에 내려와서도 수산물보다는 육식을 찾는 한결같은 입맛이나 해변가에 즐비한 것이 커피숍인데도 그저 익숙한 프랜차이즈로 향하는 발걸음들 말이다. 속초에 살면서 내가 주로 장을 보는 곳은 이마트, 자주 가는 카페는 스타벅스회도 소량구매가 가능한 이마트 회를 선호한다.


이런 나의 생활이 모순적으로 느껴진 것은 최근 일이다. 

여름휴가계획을 세우는 친구가 이번에는 빵지순례를 하겠다며 속초의 빵 맛집을 물었다. 


친구 : 속초에 마늘바게트가 유명한 빵집이 있다는데 어딘지 알아?

나 : 빵은 파리바게트가 최고 아니야?

친구 : 파리바게트는 우리 집 앞에도 있고, 너 서울 다시 올라온 거 아니지?


미식가인 친구는 이 대화를 시작으로 속초에 맛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왜 많은 사람들이 속초로 미식여행을 떠나는지, 그리고 아직도 마트에서 회를 사 먹고 있느냐며 친정엄마와 같은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나는 먹는 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긴 하지만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은 부끄러웠다. 속초 현지인 대표를 자처해 놓고서는 서울 사는 친구와 똑같이 먹고사는 내가 문득 위선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주전, 이곳에 내려온 지 4년 만에 처음으로 5일장이 열리는 양양전통시장에 다녀왔다.






속초에서 자동차로 약 20여분 걸리는 양양시장에는 4,9일로 끝나는 날에 우리나라 전통의 5일 장이 열린다. 

종종 이웃 아주머니가 장에 다녀왔다며 주전부리를 사다주셔서 먹거리가 많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직접 온 건 이 날이 처음이었다. 정암해변을 지나 여객터미널을 지나 남대천 공원 변에 들어서니 TV프로그램 '삼시세끼'에서만 봐왔던 시끌벅적한 시장 풍경이 펼쳐졌다.


주차를 하고 천변을 따라 올라오는데 이미 주차장 거리부터 양쪽 길을 가득 매운 트럭들에 반짝반짝 눈길이 간다. 그동안 나는 식구수가 적다 보니 다 먹지도 못한 채 남아서 버리는 것보다 조금 사서 다 먹는 것이 이득이라 생각하고 대형마트에서 소분되어 있는 식재료를 선호했다. 허나 장바구니 고물가 시대에 채소 한 바구니가 3,000원 5,000원이라니 눈이 번쩍 뜨인다. 


길 건너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 수산물도 둘러보았다. 딱 봐도 하얀 얼굴에 서울말투를 쓰는 내가 사장님이 보시기에는 영락없이 관광객 같았나 보다. 자꾸 택배포장도 가능하다며 반건조 생선, 젓갈을 권하신다. 사실 생선은 집 안에 비린내가 퍼지는 것도 신경 쓰이고, 아이가 어려 목에 가시가 걸리기라도 할까 봐 가시가 발린 순살생선만 고집하던 나였었다. 이 날도 딱히 생선을 사겠다는 생각보다는 장에 나왔으니 아이에게 물고기 구경이나 시켜주자며 둘러본 건데 이런 사장님의 모습을 보니 괜한 오기가 생겨 바로 저녁반찬 해 먹을 거라며 고등어 한 손 손질을 요청드렸다. 그랬더니 이제는 막 살림을 시작한 새댁 같으신지 생선 비린내가 싫으면 식초 발라 구우라며 조언을 해주신다.





이 외에도 병아리 등을 파는 동물시장, 골동품을 파는 트럭, 색색깔깔의 꽃나무를 파는 묘목시장 등 이거 저거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시장을 두 바퀴 돌며 향긋한 나물과 고소한 기름냄새가 버물어진 바삭한 나물튀김도 한 접시 먹고, 아이의 요청에 옛날 학교 앞에서나 먹던 설탕맛 가득한 크림 와플도 오랜만에 먹었더니 기름칠한 배 탓인지, 달달한 간식의 영향인지 그 어떤 나들이보다 기분이 꽤 좋다. 무엇보다 만원 짜리 두장으로 고등어 한 손, 양파 한 바구니, 복숭아 한 바구니까지 이렇게 무겁게 장을 봤다는 것이 뿌듯하다.


보통 마트로 장을 보러 갈 때면 세일 품목에 눈을 돌리지 않으려 리스트를 정확하게 적어가는 편이다. 그리고 무채색의 진열대를 돌며 목표물만 담아 빠르게 나오는 편인데 오랜만에 낯선 공간에서 떠들썩한 소리, 갖가지 음식들이 섞여 빚어내는 군침 도는 냄새, 다채로운 색깔의 제품들을 한 번에 만나게 되니 마치 잊고 있었던 새로운 감각들을 일깨운 느낌이다. 가장 좋았던 건 내가 관광객이든 현지인이든 하나라도 더 챙겨주시려는 사장님들의 마음에서 유년시절 엄마 손 잡고 다녔던 시장골목이 떠올라 정겨웠다. 이래서 조선시대부터 시작되었다는 우리나라의 지역 전통시장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나 보다.






이 날 이후로 한 달에 한 번은 전통시장에 가려 노력 중이다. 비교적 저렴한 장바구니 물가 탓도 있지만 아빠 무등 타고 간 시장 나들이가 아이 기억에는 꽤나 좋았나 보다. 이제 막 날짜개념이 생긴 네 살 딸 아이가 4,9일만 기다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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