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brisa Aug 12. 2024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살아보니 그제야 보이는 것들 2

언제 들어도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광고 카피가 하나 있다.

바로 어느 숙박업소에서 시작된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짧고도 명쾌한 캐치프라이즈다.

여행지에 가면 1분 1초가 아까워 한 곳이라도 더 둘러보기 위해 일정을 짜고, 날씨라도 흐리면 떠나는 발걸음이 못내 아쉬운 한 사람으로 여행의 정의가 살아 보는 것이라니 듣기만 해도 시간부자가 된 듯해 기분이 좋다.


흔히들 인생을 여행에 비교하곤 한다. 이 문장을 뒤집어보면 여행이 곧 인생이라는 이야기인데 나의 여행은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일찍이부터 여행자의 피가 흐르던 나는 스무 살이 되던 해 열흘 간의 일본여행을 떠났다. 처음 떠난 햬외여행이라 이동거리를 고려 못 해 온종일 신칸센에서 보내기도 하고, 마지막 날은 숙박비가 없어 공항 노숙을 하기도 했다. 이때 알게 된 것은 일본은 공항도 안전하다는 것이다. 밤 12시가 돼서도 어린 여학생이 공항 로비에  우두커니 앉아 있으니 경찰이 다가와 왜 여기 있느냐고 물었고, 사정을 이야기하니 이 주변은 상시 경비가 이뤄지니 다른 곳으로 가지 말라고 일러주었다. 덕분에 경찰이 지켜주는 공항 로비에서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스무아홉 살이 되던 해에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 시카고로 두 달간의 여행을 다녀왔다. 친언니가 미국에 있던 시절이라 비교적 편안하게 머물 수 있었는데 두 달 동안 관광지라고는 시카고 시내 한 번 갔다. 그저 매일같이 동네 마트를 산책하며, 주말에는 근처 공원에서 소소한 일상을 보냈는데 오히려 이런 평범한 일상을 통해 진짜 미국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열흘이든 두 달이든 살아보기 전에는 몰랐다. 그저 일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상관없이 각자의 개성을 뽐내기 좋아하며, 미국 사람들은 과장된 몸짓과 웃음으로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기는 개인주의자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짧게라도 직접 겪어본 그들은 자신의 나라에 놀러 온 낯선 타인에게도 그저 따뜻하고 친절한 이웃이었다.

이런 긍정적인 여행의 경험들은 뜬구름 같았던 우리의 속초살이를 또렷하게 만들어 준 배경이 되었다.

삶의 터전을 떠나게 해 준 결정적 동기까지는 아니어도 일단 살아보라고, 살아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며 우리의 발길을 응원해 주었다.


그래서 속초에 살아보니 어떠냐고?

관광지에서의 삶은 낭만 그 자체다.

어쩌다 버스를 타려면 기본 30분은 기다려야 하는 대중교통과 속초타임이란 것이 존재하는 건지 약속을 해도 연락 없는 사장님들, 가끔 욕처럼 들려 듣는 귀를 당황케 하는 안부인사는 여전히 불편함으로 다가오지만 편리함을 내려놓고 몸으로 느끼는 속초에서의 삶은 도시와 사뭇 다른 모습들로 충분히 낭만적이다.

이곳 현지인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속초 사람들은 캠핑족과 상관없이 트렁크에 항상 캠핑의자를 들고 다닌다고 한다. 도로를 달리다 어디든 의자를 피면 그곳이 오션뷰 커피숍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도 바로 구매해 종종 낚시를 하기도 하고, 편의점 커피로 바닷카 카페를 만들기도 한다. 관광객들이 떠난 한적한 바닷가는 이상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바다였기에, 일상에서 바다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속초살이에서 느끼는 가장 큰 기쁨이다.


한 가지 더, 도시에서 민원처리를 할 때에는 항상 대기표를 뽑아 기다려야 했다. 짧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구청에 가면 기다리다 시간을 다 보내 점심을 거를 수밖에 없었는데 이곳에서는 시청이든 주민센터든 대기시간도 없고, 그래서인지 보통 다 친절하다.




언제가 나의 꿈은 프랑스에서 1년 정도 살아보는 것이다. 매일 같이 에펠탑을 바라보며 눈을 뜨고, 에펠탑 소등과 함께 잠이 드는 날을 꿈꾼다. 이곳에서 10분이면 바닷가 해변에 닿듯 매일 산책하듯 미술관에 들려 하루 한 작가의 그림만 원 없이 보다 돌아오는 것,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는 것이 남은 내 인생의 로망이다. 이번 파리올림픽 개막식에서 핑크빛으로 물든 센강을 보며 흡사 눈물 한 방울이라도 흘릴 것 같은 표정을 지으니 남편은 이상한 로망에 빠졌다며 비웃었지만 나는 늘 여행 같은 인생을 꿈꾼다. 설사 그곳에 특별한 무언가가 없다고 해도 또다시 새로운 곳으로 떠나게하는 용기는 내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여행은 우리가 살아온 시간을 기억하게 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 알랭드 보통 -

이전 15화 지방에서 고립되지 않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