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화방_책대여점_ 서점> 동네에 한 군데씩은 있었던 가게
베르사유 장미, 슬램덩크, 열혈강호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책이다. 지금도 만화책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책이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만화책을 한 번이라도 안 본 사람이 있을까.
학교 수업 가면 아이들 책상에는 늘 만화책이 놓여있다. < 흔한 남매 > 시리즈가 인기 최고다. 나머지는 대부분 학습만화를 보고 있다. 유아부터 초등 저학년까지 만화에 흠뻑 빠져있다면 초등 중학년부터는 웹툰을 즐겨본다. 이미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웹툰 원작으로 제작되고 있으니 그 인기가 얼마나 많은지 짐작할 수 있다.
웹툰은 네이버, 다음 등의 각종 플랫폼 매체에서 연재되는 디지털 만화를 지칭한다.
어릴 적 우리 동네에는 유일한 서점이 있었다. 아빠 어마와도 친분이 있는 집이라 책은 대부분 그 집에서 다 구입했다. 가게 가운데에는 기다란 진열장 위에 잘 가 나는 책들을 전면배치로 쌓아놓고 그 밑으로 문제집 위주로 배치한 기억이 난다. 계산대는 가게 제일 안 쪽에 위치했으며 사람이 그렇게 많이 붐비지 않았다.
아저씨 아줌마도 책방 주인이라 그런지 조용한 스타일이었고 그곳에서 살고 있는 남매가 참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에도 만화책을 보는 것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만화책 보는 것을 싫어했는지 이유를 알지 못하는 채 우리 삼 남매는 만화책에 푹 빠져 있었다. 그때 한참 같이 봤던 만화책은 < 슬램덩크>가 큰 비중을 차지했고 무협지를 좋아하는 아빠 영향으로 무협지 만화 <열혈강호> 시리즈를 즐겨봤다. <열혈강호>는 유독 여자의 몸매에 집착하는 부분들이 많아 처음에는 무슨 내용인지도 몰라 남동생한테 일일이 물어가며 보았던 기억이 난다. 또한 <베르사유 궁전 > 시리즈와 < 유리 가면 > 시리즈는 한 번 읽으면 손에 놓지 못해 번번이 엄마한테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던 책이었다.
삼 남매가 만화책에 한층 더 빠질 무렵에는 우리 동네에 책대여점이 들어왔을 때다. 한 건물에 있었고 바로 우리 가게 옆에 있다 보니 자주 이용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홍콩 시리즈 영화 비디오, 아빠가 좋아하는 무협지 소설, 그리고 우리가 좋아하는 만화책이 비싸지 않은 가격에 숙박요금처럼 몇 박 며칠로 빌릴 수 있으니 신세계였다. 심부름 가면서 우린 틈틈이 만화책도 끼워 빌려왔다. 연재가 있는 만화책일 경우에는 그 달이 빨리 지나가고 다음 달이 되어야지만 그 만화를 볼 수 있었는데 이것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엄마 아빠 몰래 책을 구입해 보기로 결정했다. 혼자서 실생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동생들을 꼬셔 동참시켰다.
우리 가게 옆에 화장실 가는 골목이 있는데 여기를 이용해 책을 구입해 소장하는 걸로 결론 내렸다.
계획은 의외로 간단했다. 첫 번째 세 명 중 한 명은 망을 본다. 둘째 만화책을 용감하게 구입해 올 사람을 가위바위보를 정해 뽑는다. 셋째 만화책을 구입해 온 사람이 골목으로 책을 던지면 두 명이 그 책을 받아 옷 안에 넣고 자연스럽게 방으로 들어간다. 넷째 엄마가 보지 못하는 곳에 만화책을 보관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자기로 하면서 만화책을 본다. 충분히 실행할 수 있는 것을 강조해 계획을 꼼꼼히 살펴보며 우리는 가위바위보를 했다.
가위 바위 보!
여동생은 망을 보고 남동생은 만화책을 받아 방으로 가져가고 내가 서점으로 가서 책 구입하는 자로 정해졌다. 겁이 많았던 난 할 수 있을지 마음과 몸이 후들후들 거렸지만 체면이 있다 보니 아무렇지 않다면서 조심조심 골목으로 걸어갔다. 커다란 덩치 세 명이 고개를 숙이며 몸을 낮추면서 발소리가 나지 않게 신발을 벗고 골목 끝에 있는 열쇠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여기는 화장실로 가기 위한 좁은 골목이었다.) 낮은 철문 사이로 양쪽에 담 낮은 빈틈이 있었기 때문에 점프하기에는 그리 위험하지 않았다. 책을 사야 하는 사람이 나이기에 가슴에 크게 울리는 북소리를 움켜쥔 채 양말 신은 발로 담벼락에 올라갔다. 그 사이 여동생은 엄마 아빠가 무엇을 하는지 망보고 있었고 남동생은 내가 떨어지지 않게 받쳐주고 있었다. 쿵 소리와 함께 동생들은 헛기침을 크게 하며 운동하는 자세를 취했고 난 땅에 떨어지자마자 엄마가 손님을 상대하고 있을 때 부리나케 서점까지 달렸다. 헉헉 멈춰지지 않는 가뿐 숨을 내쉬면서 눈은 챔프로 향했다.(챔프는 만화잡지물 중 하나였다.) 집에서 보기 전에 서점에서 후루룩 <슬램덩크> 부분만 빨리 보았다. 몇 장 되지 않았지만 먼저 본다는 사실에 그저 입이 벌어졌다. 비상금 잔돈을 팍팍 털어왔기에 잔돈까지 긁어서 계산했다. 책방 아저씨는 다 안다는 표정으로 씩 웃더니 어서 가보라고 재촉했다. 나오긴 했는데 어찌 다시 들어갈지 걱정이었다. 몸을 더 낮추어 가게 앞을 지나가고 다시 담벼락 쪽으로 올라갔다. 책을 먼저 남동생한테 넘기고 다시 쿵 했다. 아뿔싸! 이번에는 뛰어내리다가 발목을 접질렸다. 자주 발목을 접질려서 이쯤은 괜찮다고 속삭이며 빨리 우리 방으로 직행했다.
반듯하고 윤이 나는 챔프를 어서 빨리 이불속으로 넣었다. 밥 먹으라는 소리에 대답하고 다시 그 만화책은 책상 위로 그리고 책꽂이로 들어갔다. 우리의 미션은 성공이었다. 다만 다리를 절뚝거리는 나를 의심에 찬 눈으로 바라보는 엄마의 눈초리가 아직도 기억난다. 아마도 엄마 아빠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알면서도 모른 척한 것 같다. 그 시절 그렇게 푹 빠지게 보았던 만화를 이제는 자주 보지 못한다. 구하기 힘든 만화책이 되기도 하였고 사서 보기에는 아깝고 빌려보자니 딱히 갈 만한 곳이 우리 동네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송언이 쓰고 강화경이 그린 그림책 << 우리 동네 만화방 >>이 있다.
1970~1980년대 배경으로 그 시절 생활모습을 보여준다. '우리 동네 만화방'이라는 간판 아래 교복 입은 여학생과 남학생은 물론 아기를 업고 있는 어린아이까지 만화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
<< 우리 동네 만화방 >> 그림책은 작가의 어린 시절 모습을 담은 이야기다. 이야기를 좋아한 소년이 꿈을 키우고 성장한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오래전 어느 마을에 한 소년이 살았는데 이 소년은 이야기를 몹시 좋아했다. 소년에게는 이야기꽃을 피워 주던 눈먼 할머니가 있었다. 어느 날,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소년의 이야기도 사라진 것 같아 함께 울었다.
그 무렵 소년이 사는 동네 골목에 만화방이 생겼다. 소년은 만화책을 빌려 볼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는 집이 아니었기 때문에 동전만 생기면 가게로 달려갔다. 심지어 머리 깎을 돈으로 늦게까지 만화책 가게에서 만화책을 본 소년은 뒤늦은 밤이 되어서야 이용원으로 갔다. 빡빡머리만 할 수 있는 돈 밖에 남아있지 않아 소년은 빡빡머리로 나타났고 엄마한테 엄청 혼났다. 세월이 흘러 소년은 이야기 좋아하는 소년의 꿈대로 작가가 되었다.
내 학창 시절에 만화방은 일탈의 장소로 각인이 되어 간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 시절에 보여주는 만화방 모습이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더구나 어른들이 말하는 어두운 곳이 아니라 서점처럼 밝은 분위기에 많은 학생들이 이용하는 평범한 책방처럼 보였다. 어쩌면 그 시절 학생들과 어린이들이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던 곳이 만화방이 아니었을까? 휴대폰 게임과 인터넷 게임으로 작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아이들처럼 그때는 만화책이 만화방이 아이들에게 있어 최고의 장소이자 도구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