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르소나_자존감 >
따끔거린다. 누군가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통감이 얼굴을 스친다. 오늘도 나는 ‘괜찮은 척’하는 가면을 쓰고 하루를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온 힘을 다해 참아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비정규직의 삶은 대개 일 년 단위로 매듭지어진다. 재계약이라는 다행스러운 소식이 들려오지 않으면, 그간 쌓아온 모든 공적을 뒤로하고 다시 출발선에 서야 한다. 특히 정책의 변화가 파도처럼 몰아칠 때, 우리 같은 현장의 강사들은 가장 먼저 젖고 가장 늦게 마르는 존재들이다. 늘봄사업의 시작부터 불거진 수많은 의문은 현장의 목소리를 거치지 않은 채 지시사항으로만 내려왔고, 학교라는 거대한 조직 안에서 나는 그저 전달되는 명력에 따라야 하는 ‘을’ 중의 ‘을’이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 현장은 들썩였고, 그 파동은 고스란히 나의 일상을 흔들어 놓았다.
보통 큰 결격 사유가 없다면 2년 정도는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 안온함은 착각이었다. 아이들의 사교육비는 늘어만 가고 외벌이로는 감당하기 벅찬 현실 속에서, 규칙적인 수입은 내게 유일한 숨구멍이었다. 나를 위한 소비는 오로지 책 몇 권이 전부였음에도 통장은 늘 마이너스를 맴돌았다. 작년부터 강의 요청이 늘어 열심히 노를 저었지만, 그만큼 몸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화상을 입으신 친정엄마를 보필하며 마음을 쏟는 사이, 내 몸은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코 주변엔 붉은 습진이 생기고 눈꺼풀 위엔 벌레에 물린 듯한 상처가 정착했다. 연고를 발라도 낫지 않는 염증은, 어쩌면 견디고 있다는 내 마음이 보내는 위험 신호였을지도 모른다.
불길한 예감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매일 복사를 하던 교무실에서 교장 선생님과 마주친 날이었다. “여기 사람들 불편하니 여기서 하지 말고 지원실 가서 하세요.” 그 한마디에 심장이 찌릿했다. 늘봄 지원실 복사기가 고장 난 지 한참이라는 걸 알면서도 고쳐주지 않던 학교가, 내가 교무실로 밀려난 지 한 달도 안 되어 그 복사기를 수리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육감은 확신으로 변했다.
11월이 다가오자 공기는 더욱 차갑게 얼어붙었다. 재계약 여부를 묻는 내게 돌아온 답은 냉담했다. 프로그램 명칭이 바뀌고 수업 시수가 줄어들어 재계약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학생 수 감소와 교실 사용 문제 등 여러 이유가 덧붙여졌지만, 결국 내가 설 자리가 사라진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미 눈치 빠른 이들은 다른 곳에 서류를 넣었지만, 나는 이곳의 수업 일수가 많았기에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기대를 걸었다.
결국 한 자리를 두고 열 명 이상이 몰린 면접에서 나는 고배를 마셨다. 질문에 정성껏 답했고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기에 상실감은 더 컸다. 합격한 동료의 즐거운 표정 뒤에서 나는 다시 ‘괜찮은 척’ 가면을 고쳐 썼다. “선생님은 괜찮으세요? 다른 데 지원 안 하세요?”라고 묻는 동료들의 걱정 어린 시선이 나를 더 압박했다. 불안을 감추고 부담 없는 척 웃어 보이는 내 모습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수입이 반 토막 난 현실 앞에서 마음은 자꾸만 발을 동동 구른다. 누가 등 떠밀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무능력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책을 읽어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괜찮아, 곧 다른 기회가 올 거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다가도, ‘안 되면 어떡할래? 너는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어?’라는 서늘한 비난이 나를 짓누른다.
인정해야겠다. 나는 지금 전혀 괜찮지 않다. 여전히 불안은 진행 중이며, 나는 이 차가운 계절을 가면 하나에 의지해 위태롭게 지나고 있을 뿐이다.
따끔거린다. 누군가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통감이 얼굴을 스친다.
오늘도 나는 ‘괜찮은 척’하는 가면을 쓰고 하루를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온 힘을 다해 참아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비정규직의 삶은 대개 일 년 단위로 매듭지어진다. 재계약이라는 다행스러운 소식이 들려오지 않으면, 그간 쌓아온 모든 공적을 뒤로하고 다시 출발선에 서야 한다. 특히 정책의 변화가 파도처럼 몰아칠 때, 우리 같은 현장의 강사들은 가장 먼저 젖고 가장 늦게 마르는 존재들이다. 늘봄사업의 시작부터 불거진 수많은 의문은 현장의 목소리를 거치지 않은 채 지시사항으로만 내려왔고, 학교라는 거대한 조직 안에서 나는 그저 전달되는 명령에 따라야 하는 ‘을’ 중의 ‘을’이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 현장은 들썩였고, 그 파동은 고스란히 나의 일상을 흔들어 놓았다.
보통 큰 결격 사유가 없다면 2년 정도는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온함은 착각이었다. 아이들의 사교육비는 늘어만 가고 외벌이로는 감당하기 벅찬 현실 속에서, 규칙적인 수입은 내게 유일한 숨구멍이었다. 나를 위한 소비는 오로지 책 몇 권이 전부였음에도 통장은 늘 마이너스를 맴돌았다. 작년부터 강의 요청이 늘어 열심히 노를 저었지만, 그만큼 몸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화상을 입으신 친정엄마를 보필하며 마음을 쏟는 사이, 내 몸은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코 주변엔 붉은 습진이 생기고 눈꺼풀 위엔 벌레에 물린 듯한 상처가 정착했다. 연고를 발라도 낫지 않는 염증은, 어쩌면 견디고 있다는 내 마음이 보내는 위험 신호였을지도 모른다.
불길한 예감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매일 복사를 하던 교무실에서 교장 선생님과 마주친 날이었다. “여기 사람들 불편하니 여기서 하지 말고 지원실 가서 하세요.” 그 한마디에 심장이 찌릿했다. 늘봄 지원실 복사기가 고장 난 지 한참이라는 걸 알면서도 고쳐주지 않던 학교가, 교무실에서 복사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고장 난 복사기를 수리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육감은 확신으로 변했다.
11월이 다가오자 공기는 더욱 차갑게 얼어붙었다. 재계약 여부를 묻는 내게 돌아온 답은 냉담했다. 프로그램 명칭이 바뀌고 수업 시수가 줄어들어 재계약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학생 수 감소와 교실 사용 문제 등 여러 이유가 덧붙여졌지만, 결국 내가 설 자리가 사라진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미 눈치 빠른 이들은 다른 곳에 서류를 넣었지만, 나는 이곳의 수업 일수가 많았기에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기대를 걸었다.
결국 한 자리를 두고 열 명 이상이 몰린 면접에서 나는 고배를 마셨다. 질문에 정성껏 답했고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기에 상실감은 더 컸다. 합격한 동료의 즐거운 표정 뒤에서 나는 다시 ‘괜찮은 척’ 가면을 고쳐 썼다. “선생님은 괜찮으세요? 다른 데 지원 안 하세요?”라고 묻는 동료들의 걱정 어린 시선이 나를 더 압박했다. 불안을 감추고 부담 없는 척 웃어 보이는 내 모습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수입이 반 토막 난 현실 앞에서 마음은 자꾸만 발을 동동 구른다. 누가 등 떠밀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무능력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책을 읽어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괜찮아, 곧 다른 기회가 올 거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다가도, ‘안 되면 어떡할래? 너는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어?’라는 서늘한 비난이 나를 짓누른다.
그렇다. 나는 지금 전혀 괜찮지 않다. 여전히 불안은 진행 중이며, 나는 이 차가운 계절을 가면 하나에 의지해 위태롭게 지나고 있을 뿐이다.
정경숙 작가가 쓰고 그린 <<악어의 비밀 가방>> 그림책이다.
커다라고 날카로운 입. 사람을 물어뜯을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악어는 공포스러운 동물 중 한 마리다. 그런 악어 이름이 도롱이다. '엥? 도롱뇽?' 찔러도 피 한 방을 흐르지 않을 것 같은 악어 이름이 악어보다 훨씬 작은 도롱이라는 이름이라. 아니나 다를까. 도롱이는 낯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악어였다.
이름만 들으면 작고 연약한 도롱뇽 같지만, 도롱이는 사실 강력한 힘을 가진 악어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겉모습과 달리, 도롱이는 낯선 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힘겨워하는 지독한 내향성 악어였다. 수줍음 많은 자신을 감추기 위해 도롱이는 원숭이 가면을 쓰고 친구들에게 다가간다. 가면 뒤에 숨어 사람들과 어울리지만,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온 도롱이의 마음은 전혀 개운하지 않다. 오히려 부정적인 생각들이 자신을 공격하는 듯한 기분에 휩싸인다.
때로는 과한 관심이 부담스러워 늑대 가면을 쓰고 가시 돋친 말을 내뱉으며 친구들을 쫓아내기도 하고, 자신을 위협하는 상황 앞에서는 밀림의 왕 사자 가면을 쓰고 위세를 떨치기도 한다. 하지만 ‘~인 척’ 했던 가면들이 늘어날수록 도롱이는 더 힘겨워진다. 급기야 가방 속에서 수많은 동물 가면이 튀어나와 서로 자기가 진짜 도롱이라고 싸우는 지경에 이른다. 그때 도롱이는 처음으로 무거운 가면들을 벗어던지며 크게 외친다.
도롱이는 나야 나! 진짜 도롱이는 나라고!!
우리는 환경에 따라 수많은 가면을 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페르소나’라 부른다. 사회라는 정글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이기에 페르소나 자체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가끔은 그 무거운 가면을 모조리 벗어던지고 싶을 때가 있다. 유일한 안전지대여야 할 ‘집’에서조차 가족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페르소나를 써야 할 때, 그 피로감은 극에 달한다.
지금의 내가 그렇다. 모든 의욕이 바닥을 치고 있는 중이다. 일도, 집안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마음을 감추려 괜한 짜증을 내기도 하고, 정돈되지 않은 서류들처럼 내 일상을 어지럽게 흩뜨려 놓았다. 도롱이처럼 “이게 바로 나야!”라고 당당하게 외치며 이 불안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좋으련만, 아직 내게는 그럴 용기가 부족하다. 여전히 누군가 건네는 “괜찮아”라는 말조차 서러운 부담으로 다가온다.
이 글을 쓰며 내 가방 속에서 소란을 피우던 가면들을 하나씩 꺼내 본다. 원숭이, 늑대, 사자... 그리고 그 밑에 숨어 떨고 있는 작은 악어 한 마리를 본다. 사실 그 가면들은 나를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 간절하게 나 자신을 지키고 싶어 했던 노력의 흔적들이었다.
지금 당장은 이 무거운 가면을 다 벗어던질 순 없을 것이다. 내일도 나는 다시 단단한 가면을 고쳐 쓰고 집을 나설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가면 뒤의 내가 얼마나 울고 싶어 하는지,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는 더 이상 모른 척하지 않으려 한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진짜 내 모습은 완벽한 합격생의 미소가 아니라, 이 불안을 견디며 한 줄의 글을 써 내려가는 떨리는 이 손끝에 이미 살고 있을 테니까.
내일의 나에게, 그리고 도롱이에게 조용히 속삭여 본다.
오늘도 가면을 쓰느라 참 고생 많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