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이어트 1 >
내 주변에는 늘 날씬한 사람들이 많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 대부분이 날씬하다.
항상 건강에 대한 프로그램이 계속 진행되고 있고 다이어트에 관한 정보와 홍보는 절대 빠지지 않는다.
그만큼 사람들이 다이어트에 관심도 많고 건강하게 살을 뺀 사람을 모델로 따라 한다.
이왕이면 가벼운 몸으로 생활하면 기분이 더 좋아지기에 너도 나도 다이어트라는 명목 아래 실천한다.
나 역시 몸이 큰 편이라 언제나 '다이어트'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통통한데 특히 하체가 유독 살이 몰려있어 항상 스트레스를 받는다.
왜 이렇게 하체에 살이 집중되어있는지 생각하며 제발 좀 하체 살이 얇아지기를 바란다.
태어날 때는 하체 비만이 아니었다. 우량아도 아니었다.
엄마가 출산 전까지 심한 입덧으로 음식을 제대로 먹은 게 없어 평균 커트라인에 간신히 걸린 체중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지 내 몸이 조금씩 위로가 아닌 옆으로 커지고 있음을 알았다.
왕성한 식욕과 덜 움직임이 한몫하였다.
무엇보다 신체에 대한 처참함을 알게 된 것은 첫 가족여행이었다.
특히 내 몸 하체 중 종아리 비애를 처음으로 생생하게 느낀 날이었다.
부모님의 자영업으로 365일 매일 바빴던 날을 뒤로하고 부부 계모임에서 가족 제주도 여행을 가게 되었다. 모두 부푼 마음으로 배를 타고 제주도로 향했다. 우리나라에서 아름다운 섬 중 하나인 제주도.
비록 비행기를 타고 가지는 않았지만 물살을 가르며 고속으로 달리는 배에 몸을 맡긴 채 가는 것도 좋았다.
시원한 바람에 마음은 붕 뜨고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상상 속으로 빠지기에 충분했다.
설렘으로 도착한 제주도는 정말 딴 세상처럼 멋진 곳이었다.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온 착각이 들었다.
단체로 제주도 관광지를 여기저기 다녔다. 용두암 관광을 시작으로 제주도에 있는 흑돼지도 직접 보고 말도 타보았다. 문제는 바로 이 '말'타기 체험에서 일어났다.
승마체험을 하기 위해서는 여기에 어울리는 복장이 따로 있었다.
부츠, 조끼, 헬멧이 승마 복장이다. 다른 복장은 별문제가 없었는데 딱 하나 부츠가 말썽이었다.
내 종아리가 어찌나 굵었던지 부츠가 알통 같은 종아리에서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순간 얼굴이 붉어졌고 누가 볼까 봐 조바심이 나서 말타기도 싫어졌다.
울고 싶었지만 이 상태에서 울어버리면 시선 집중될까 봐 울지도 못했다.
다만 인상이 구겨지고 안절부절못하지 못해 주위를 살피며 누가 도와주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다른 사람들은 승마복으로 갈아입기에 정신이 없었고 누가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울기 직전 모습으로 도우미분을 찾았다. 내 표정을 보고 달려온 점원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나와 내 종아리를 동시에 보며 빠른 걸음으로 한 사이즈 큰 것으로 가져와 신어보라고 했다. 다행히 종아리까지 올리기에 낑낑거렸지만 부츠는 딱풀처럼 내 다리에 달라붙었다. 지금 신은 것보다 한 치수 큰 것으로 바꾸면 발바닥 부분이 헐렁거려 말타기에 적합하지 않아 그냥 이 사이즈 그대로 신었다. 점원과 얼굴이 마주치자 다시 얼굴이 붉어지고 딱딱해진 종아리를 보면서 비참함을 느껴야만 했다. 종아리 비애로 이미 마음은 다쳤지만 이것을 모르는 엄마 아빠는 사진 찍기에 몰두하였다. 독사진은 기본이고 삼 남매 사진, 그리고 가족사진까지 여러 장 찍으며 시간은 느리게만 지나갔다. 그때 찍은 사진을 아직 엄마가 간직하고 있지만 두 번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사진이었다.
설렘으로 시작한 제주도 여행이 최악의 가족여행으로 끝이 나면서 난 그 이후 절대 치마를 입지 않았다.
첫 가족여행 사건 이후 내 하체에 대한 문제가 심각함을 알게 되었고 특히 종아리에 대한 콤플렉스가 생기면서 외모에 대한 자신감은 현저히 낮아졌다. 중학교 때는 자유 교복이라 치마를 입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고등학교 때는 교복이 의무라 난감하였다.
괜히 남들 시선에 의식해 최대한 가리는 데 급급했다. 겨울에는 두껍고 진한 색 팬티스타킹만 골라 신었고 더운 한여름에도 커피색 스타킹을 꼭 신고 다녔다. 고3 때는 야간 자율학습으로 늦게까지 앉아 있다 보니 종아리가 더 붓고 엉덩이도 커지며 허리도 굵어져 고등학교 입학 때 입은 옷이 불편했다. 다른 친구들은 줄여 입는다고 난리였는데 난 오히려 늘이거나 새로 맞춰야 하는 상황이었다. 공부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튼실한 하체는 나를 더 괴롭히기에 충분했다.
초등학교 때 제주도 가족여행 사건 이후로 내 종아리가 남들보다 유난히 두껍구나라고 생각은 하였지만 특별히 '하체비만'이라는 말로 나를 가둬 본 적은 없었다. 다만 종아리 비애로 콤플렉스만 있었을 뿐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우리 사회에 '하체비만', '상체 비만'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을 그렇게 규정짓고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하체비만. 저주받은 하체. 공포의 종아리. 이런 발들 속에 나를 점점 더 스스로 비하시켰고, 남들 시선에도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하였다. 점점 더 몸에 대한 불만은 많아졌고 빠질 거라고 날씬해질 거라고 굳게 믿었던 희망도 사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