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엽편 소설 >
"오늘 저녁 뭐야?" 남자가 말했다.
"어제 사놓고 요리하지 못한 낙지볶음." 여자가 대답했다.
"맛있겠다. 당신 이제 요리 잘하니 따로 하는 방법 이야기 하지 않아도 잘할 수 있지?'
여자는 잘할 수 있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 맡겨달라고 했다.
퇴근을 하고 온 남자는 부랴부랴 씻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냉장고에서 숨 쉬고 있는 차가운 맥주 한 캔을 꺼냈다. 퍽! 경쾌하게 울리는 오픈 소리와 함께 꼴깍 목에 흘러가는 소리가 여자에게는 이제 요리를 시작하라는 준비종처럼 들렸다.
저녁 식사를 하기 전 애피타이저처럼 늘 맥주 한 캔을 마시며 마른 한 주로 입을 적힌 남자는 밥상에 무엇이 나올지 기대하는 얼굴로 여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의 간절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자는 혼자 바삐 여기저기로 움직였다. 마치 여러 팔을 가진 인공지능로봇처럼 여러 가지 일을 척척 해내는 그녀의 모습에 남자는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저게 가능해?'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는 남자에게 여자의 몸놀림은 신기에 가까웠다.
양념이 부족한 거 같아 양념장은 여자가 따로 더 만들어 당면과 함께 요리했다.
냄새에 예민했던 남자는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육감적으로 느꼈다.
마늘냄새가 진동해 낚지냄새가 나지 않았다.
"여보, 마늘을 얼마큼 넣은 거야? 마늘 냄새가 온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어."
후각이 남달리 발달된 남자는 여자가 양념장을 만들 때 마늘을 많이 넣었음을 직감해서 한 마디 했다.
"사람 되어라고 많이 넣었어. 많이 먹어."
농담으로 한 말이었지만 그 순간 입맛이 사라졌다.
먹을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마늘 양념이 듬뿍 들어간 낙지볶음이 상에 올라왔다.
비주얼은 나쁘지 않았다. 남자가 좋아하는 당면도 많이 있었고 붉은색의 낚지와 삼겹살까지 들어가 군침이 돌았다. 하지만 강한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남자는 여자가 열심히 한 요리이기에 차마 말은 못 하고 한 숟가락을 들어 낙지볶음을 입안으로 넣었다.
역시 마늘 냄새가 많이 나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에 반해 여자는 맛있게 잘 먹었다.
"여보, 그게 입에 들어가? 안 이상해?" 남자가 눈치를 보며 짧게 말했다.
"맛만 있는데. 왜 이상해?" 여자는 남자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낙지볶음을 한 입 크기로 입 속으로 넣었다.
"마늘이 너무 들어가서 못 먹겠어. 미안해. 나 나갔다 올게." 남편은 여자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말했다.
눈을 마주치지 않은 여자는 불쾌한 듯 시선을 아래로 둔 채 말했다.
"또 평가하니? 그만 좀 해라. 왜 당신은 만날 평가해! 평가 좀 그만해!"
불같이 화내는 여자 말에 남자는 당황했다.
"난 당신이 마음 다칠까 봐 조심스럽게 이야기 한 건데. 휴...... 나갔다 올게."
그렇게 남자는 옷을 주섬주섬 입더니 현관문밖으로 사라졌다.
저녁 메뉴가 무엇인지 묻는 남자에게 짜증이 올라왔다.
'내가 무슨 가정부도 아니고 요리사도 아닌데 만날 메뉴를 물어보는 건 무슨 심보냐고.'
주는 대로 먹으면 되는데 여자에게 만날 식사 메뉴를 물어보는 남자에게 화가 났다.
입맛이 까다롭지 않다고 말하는 남자는 사실 까다로웠다. 예민한 후각 때문에 매번 요리에 대해 평가를 했다. 물론 이 평가라는 것이 음식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여자가 하는 일마다 평가할 뿐만 아니라 텔레비전에 나오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평가한다. '또 시작이군. 젠장!' 그래도 저녁은 먹어야 하기에 여자는 어제 사다 놓은 낙지볶음을 꺼낸다. 양념이 충분하지 않아 만들까 생각 중이었는데 남자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양념장을 더 만들어 먹자고 제안했다.
양념 그릇에 간장, 고추장, 설탕, 참기름, 생각즙, 굴소스, 고춧가루 등을 넣다가 마늘을 넣었는데 아뿔싸, 생각보다 더 들어갔다. 그래도 뭐 몸에 좋다고 생각하며 그냥 휙휙 섞었다. 여자는 남자만큼 후각이 예민하지 않았다. 그리고 예민한 남자에 비해 여자는 예민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또한 여자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스트레스를 덜 받기 위한 방법이었다. 열심히 볶고 있는데 남자가 따지를 걸었다. 마늘 냄새가 심하게 난다고 한 소리 했다.
'야, 아무거나 먹어라. 제발 좀 주는 대로 먹으면 안 되니! 젠장!'
소심하게 궁시럭 거리던 여자는 화가 나서 휙휙 강하게 주걱을 휘젓었다. 국물도 졸아버렸다.
다시 물을 넣어하기 싫었다. 남자가 한 말 때문에 즐겁게 시작한 요리가 짜증 나는 요리로 둔갑했다.
'오자마자 술이나 마시면서 지적질이나 하고. 열심히 일하고 와서 아무 소리 안 했건만. 똑같이 공부하고 일했는데 왜 난 지금 이러고 있는 거냐고.' 여자는 참았던 화가 스멀스멀 연기처럼 올라왔다.
밝았던 표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퉁명한 얼굴로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금방 한 따뜻한 밥에 낙지볶음 한 숟가락을 넣어 비벼 구운 김에 싸 먹은 여자는 맛만 좋았다.
곁눈질로 남자를 보니 한 순가락을 제대로 뜨지 않은 모습에 눈에 거슬렸다.
그때 남자는 마늘 냄새가 강하다며 수저를 놓았다.
'지랄을 하는구나. 그냥 먹으면 안 되겠니!' 애써 화를 누르며 여자는 남자에게 다른 반찬을 해주길 원하냐고 물었다. 남자는 미안했는지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표정은 괜찮지 않았다.
"나갔다 올게." 남자가 던진 말 한마디에 여자는 숟가락을 쾅하고 크게 놓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또 평가하니? 그만 좀 해라. 왜 당신은 만날 평가해! 평가 좀 그만해!"
순간 당황하는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는 아주 짧은 순간의 통쾌함을 느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고.' 더 큰소리로 말하면 싸움이 될 것 같아 최대한 감정을 누르며 한 말이었다.
주섬주섬 옷을 입던 남자가 현관문 밖으로 사라지자 여자는 한 마디 했다.
"주는 대로 그냥 먹으라고. 내가 네 엄마니!"
그 뒤에 계속해서 거친 말들이 쏟아졌다. 그러다 남자가 아파트 입구까지 다 내려갔다고 생각했을 때 여자는 고함질렀다.
"아~~~~~~~~~~~~~~ 이제 그만 좀 평가하라고. 이 새끼야!"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고 했던가. 여자는 아주 크게 이불속에서 속에 담아두었던 거친 말들을 계속해서 쏟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