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엽편소설 >
새벽 2시 30분
휴~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할까.
귀에서는 위 위잉 하는 작은 소리가 달팽이관을 계속 때리고 더 신경을 날카롭게 한다.
오늘도 잠은 다 자버렸다. 30분 잤나.
수면제는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난 그렇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 옆에 있던 남편이 없어진 지 15년이 훌쩍 넘어가고 있다.
크지도 않은 아파트 안에는 나보다 큰 가구들만 덩그러니 있고 휑하다.
미친년처럼 밖을 헤매다 돌아오면 누구 하나 반겨주는 이가 없다.
그렇게 15년이 지났지만 난 혼자였고 밤이 더 길어져가는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오늘은 또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한다 말인가.
옆에 있는 것만이라도 든든하던 남편은 갑작스러운 폐암으로 살고 싶다는 말만 남기고 죽었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늘 여장부 같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느새 나는 잠을 자지 못하는 늙은이로 변해가고 있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 몸이 힘들어도 걷고 또 걷는다.
이웃사람들은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냐고 이야기하지만 한 마디도 거들지 않고 앞만 보며 걸어간다.
'내가 어딜 가든 무슨 상관인지. 하여튼 남 험담하는 버릇은 여전하군.
여자 혼자 있다고 무시하나. 또 무슨 꼬투리 잡아 소문내려고 저러는지.'
따듯한 물이 든 물통, 약을 먹기 위해 먹어야 하는 밥과 삼치구이, 그리고 폰을 가방에 넣고 백팩을 둘러맨다.
야구모자로 머리카락을 감춘 뒤, 검은 마스크를 쓰고 성큼성큼 걸어간다.
'오늘은 또 어디를 고쳐야 하는 거야. 이놈의 집구석은 만날 고쳐야 하니. 이젠 몸이 안 따라주는데 어떡하지.
사람을 불러 시키자니 맘에 들지 않고 내 손으로 해야 직성이 풀리니. 참, 나도 나다.'
아이들은 돈을 줄 테니 사람 시켜서 집수리하라고 하지만 내 눈에 찬 사람이 한 번도 없었다.
낡아도 내가 유일하게 돈을 벌 수 있는 건물인데 포기할 수 없었다.
믿고 맡긴 업체마다 눈 속이고 돈만 챙기는 일이 많아 하나에서 열까지 내 손이 가야만 했다.
차라리 남자로 태어났으며 좋으려 만.
나이 든 여자 혼자 집수리할 때 업체 문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자라고 깔보거나 나이 많다고 얕보는 것 같아 하나 있는 사위한테 부탁한 적도 있지만 딸은 눈치 보이는지 하지 말라고 한다. 하긴 한 번 부탁했더니 말은 청산유수 더만 술 한 잔 들어가니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업체 사장과 이야기하니 잘 되던 일도 흐트러졌던 일이 여러 번이었다.
'가스나! 좀 옳은 신랑 만나 호강하고 살지. 왜 저렇게 지지리 궁상맞게 사는지. 내가 저렇게 살아라고 저렇게 키웠나. 다 소용없다. 소용없어.'
난 노인이 되어도 절대 죽을 때까지 먹어야 하는 약을 안 먹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운동만 했건만 이건 한 달이 지나 병원 가 검사를 하면 약이 또 하나 늘어난다. 의사 선생은 또 어찌나 겁을 주는지 더 불안해진다.
마음속에 있는 고민을 툭 털어버리라 하지만 그게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우리도 이제 부자라며 아끼고 아낀 돈으로 매입한 상가 건물.
그때 느꼈던 자부심을 남편과 함께 한 건물이라 팔지 않고 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아이들에게 손 벌리기 싫어 여기서 조금이라도 나오는 월세로 하루하루 살아간다.
늙어도 돈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알았기 때문에 이 낡은 건물을 버릴 수 없었다.
건물을 구입할 때부터 상태를 자세히 보아야 했는데 우리 것이라는 흥분으로 잘 살펴보지 않는 것이 이제 와서 후회된다. 이제 와서 그때 원망하면 뭐 할까. 이제는 마를 때도 되었건만 아직도 눈물이 내 시야를 흐리게 한다. 덩치는 큰 건물인데 거주하는 사람이 없으니 내 손길이 더 바빠졌다.
사람 없을 때 수리를 빨리하고 세를 놓아야 하는데 무슨 돈이 이렇게 많이 들어가는 걸까.
'에고. 딴 집 자식들은 집수리하라고 큰돈을 척척 주고 간다고 하는데 내 자식들은 뭐 하는 건지.'
돈 안 빌려 가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 생각한다.
웬만한 미장 쟁이보다 방수공사나 페인트칠은 더 잘하게 되었고 주변을 걸어 다니면서 건물 상태가 어떤지 꼼꼼하게 보는 습관이 생겼다. 이렇게 뼈 빠지게 공사를 잘했지만 자식들은 그냥 쉭 한번 보고는 몇 마디 하지 않는다. 안다. 알고 있다. 이 집 이야기만 나오면 몸서리친다는 것을. 그래도 어쩌노. 내게 유일하게 돈을 주는데.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얼른 수리가 끝나야 할 건데.
하루가 다르게 몸은 더 지쳐가고 밥은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살이 5kg나 빠졌다. 약을 먹기 위해서라도 먹어야 하는데 왜 이렇게 목구멍에서 거절할까.
교통카드는 있지만 지하철을 타면 공짜라 악으로 지하철까지 걸어간다.
그리고 또 악으로 집까지 걸어간다. 정말 피곤하다. 운동은 하지 않지만 욕실 고장으로 집에서 샤워하기가 불편해 센터에서 뜨끈한 물로 씻고 집으로 오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띡띡띡, 찰칵!
쓰러질 것 같은 몸으로 집 안으로 들어가니 아무도 없다.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갑자기 서러움이 밀려왔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되는지 모르겠다. 하루라도 편안하게 푹 자보는 게 소원인데 그 소원은 나를 피해만 간다. 텔레비전이 유일한 내 친구라 밤늦게까지 켜놓는다. 자식들은 빛으로 수면에 방해되니 끄고 자라지만 큰 텔레비전 화면이 꺼지면 공포가 몰려와 잠이 오지 않는다.
약에 의존해 보지만 몇 분 가지도 않는다.
정말 피곤하다. 쓰려서 자고 내일 아침에 눈을 뜨고 싶다.
작은 흰 정제는 어서 자기를 먹으라고 나를 쳐다본다.
순간 뭔가 홀린 것처럼 약봉지를 뜯어 한 끼도 먹지 못한 내 빈 뱃속으로 들어갔다.
어느새 눈은 감겼다.
번쩍!
다시 눈이 떠졌다. 한밤중이었고 머리맡 휴대폰으로 시간 확인하니 한 시가 조금 넘었다.
자고 싶은데 잠이 안 오다.
난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할까.
순간 다가오는 공포에 텔레비전을 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