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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미인 앨리 Jan 21. 2024

권력을 위해 존재하는 사법기관

공정과 상식이 무너지고 있다 - 사법기관의 정신은 어디로?

윤석열 대통령의 공정과 상식은 무너지고 있다. 대통령 지지율은 무너진 공정과 상식을 반영한다. 윤 대통령이 새벽 2시에 한때 '멘토'라 불렀던 신평 변호사 sns에 '좋아요'를 눌렀다고 한다. 불면의 밤을 지새우고 있느냐는 의문이 있지만 각자 해석의 영역이다.


윤 대통령의 권력기반은 검찰경찰감사원 등 사법기관들이다. 사법기관의 핵심가치는 공정과 상식이다. '법 앞에 예외가 없다'는 것은 공정과 상식의 기준선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가을의 서릿발 같은 매운맛'이면 더더욱 좋겠으나, 최소한 형식과 절차라도 준수하라는 외관은 갖추어야 한다. 국가 공권력은 헌법과 법률에 의거하고 국민이 위임한 권력이기 때문이다. 공익의 대표자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그러나 작금 현실의 사정기관들을 보라. 모조리 권력을 위해 존재하는 사법기관 인양 행세하고 있다.


국민이 보기에 김건희특검법과 해병대 수사, 방통심의위원회 민원유출 수사는 국가공권력이 객관의무를 무시하는 대표적 사건들이다. 적박하장도 유분수라는 말이 사방에서 넘쳐난다. 김건희특검법은 정부여당이 막을 수 있는 기회가 18개월 동안이나 존재했다. 검찰이 진즉 김 여사를 소환조사하고 절차에 따라 수사를 진행했으면 발의하기 어려운 법이었다. 또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법무부장관 시절 검찰총장에게 이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회복시켜 주었다면 야당이 명분을 갖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동훈 위원장에게 지금 기회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대통령을 설득하면 된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법' 앞에 예외가 없지만, 김건희특검법은 총선 선동을 위한 악법이라고 방패막이를 하고 있다.


한 위원장이 떠난 법무부는 더 노골적으로 김 여사를 비호한다. 대통령비서실도 아닌 정부 부처가 보도자료에서 '주가조작 사건은 민주당 정권 시절에 이미 충분히 수사를 했다는 등, 구체적인 범죄 단서가 있던 사건이 전혀 아니라는 등' 주관적인 허위사실들을 늘어놓았다. 달리 말하면 이 사건은 '수사 중인 사건이고 소환조사를 하지 못한 사건'이라 해야 할 것이다. 보도 자료에는 작성 검사 이름까지 실렸으니 장차 이 일을 법무부가 어떻게 감당하려 하는지 헤아릴 길이 없다.


해병대 사건은 아무리 주관적 시가이라고 해도 국민의 눈높이에서 보면 도저히 항명죄가 성립될 수 있는 범죄가 아니다. 이종섭 전 장관의 '혐의자와 혐의내용을 빼라'는 외압은 장관의 군사보좌관 문자에 버젓이 기록돼 있다. 그야말로 외압의 증거는 차고 넘친다. 심지어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의 업무수첩엔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혐의자와 혐의사실을 빼라'고 말한 내용이 그대로 적혀 있다. 해병대수사단 사사관이 경북경찰청 수사팀장과 통화한 녹취록은 더 생생하다. "무고한 해병대원이 죽었다. 나중에 밝혀지면 어쩌려고 경북경찰청이 그러는 것이냐"며 해병대 수사관은 절규한다. "사실 규명을 위해 책임자를 찾고.. 이게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왜 경북경찰청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십니까?"라고 하소연하자 경북경찰 수사팀장은 "아니 그것 잘못된 것 아닙니다. 수사관님"하면서 도리어 흐느낀다. 사건을 인계받고도 "인계받았다"라고 말을 하지 못하는 경찰의 비굴함과 맹종, 무력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경찰은 방심위의 '민원유출 수사'에만 매달린다. 원래 권력기관 내부비리가 터지면 검찰과 경찰은 비리 본안수사와 비리 유출수사를 나눠 진행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 경찰 수사방식은 다르다. 방심위원장이 자신의 친인척까지 동원해 민원사주를 넣었다는 혐의에 대해선 수사 언급이 없다. 그의 민원사주가 사실이라면 중대 범죄다. 국가기관을 사유화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공정과 상식이 의심받는 시대는 본말이 전도된 시대이다. 그 점에서 전 정권에 대한 국민의 판단은 냉혹했다. 권력기관의 권한 행사는 공정과 상식을 판단하는 기준들이다. 국민들이 판단할 때 윤석열 정부의 사정기관은 국민을 위한 수사가 아니라 권력을 위한 수사에만 강력한 것으로 인식된다. 외관상 상식과 합리성을 부여하려는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일방적이다.


특검법에 대한 창선이 60%를 오르내리고 대통령의 부정평가 또한 60%를 넘나드는 배경엔 대표적으로 이 세 사건이 있다. 이들 사건에서 공통점은 국민들이 공정과 상식으로 당선된 대통령에게 거울 마주 보기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에서 맹종은 반드시 후환을 남기곤 했다.





어릴 적부터 '정치'에 대한 뉴스 장면은 어른들의 꼴 보기 싫은 진흙탕 싸움이었다.

다 큰 어른들이 하물며 국민을 대표한다는 자들이 서로 엉키고 설키면서 국회에서 몸싸움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고성이 오가는 모습에서는 동네 건달들과 무엇이 다른지 한숨이 절로 나오는 장면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 또한 어른이 되었지만 한국의 정치인들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비리는 존재하였고 들통나도 '모르쇠'로 양면몰수는 그들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국민은 '희망'이라는 끈을 놓지 않았기에 우리나라를 이끌었던 대통령들의 비리에 참지 못하고 그들이 죄수복을 입고 벌을 받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여전히 정의가 살아있구나라고 생각하며 정치의 아주 작은 변화에 박수를 보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기점으로 촛불시위는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고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정부의 정치인들의 횡보를 보면 공정과 상식은 사라졌다.

대한민국을 이끄는 대통령부터 술에 취해 아바타처럼 정치하며 해외에서 민방한 모습을 여럿 보여줬다.

마치 놀잇감이 되어버린 듯한 치욕스러운 모습에 욕이 절로 나왔다.

방명록조차 스스로 작성하지 못하는 대통령의 모습에 '어떻게 저런 사람이 검사까지 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로 나오는 소재가 정의다. 그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활약하는 분야는 경찰, 검사, 변화사들의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아무리 악행을 저질러도 벌을 받는다는 교훈이 절대 바뀌지 않음을 은연중에 심어줬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나라 사법부 기관을 보면 '법'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증거가 버젓이 있음에도 눈 감은 심봉사처럼 모른다고 일관하며 아니라고 잡아뗀다.

거짓말이 들통났을 때 잡아 때는 아이와 별 차이가 없다. 그냥 우기면서 무조건 남 탓으로 돌린다.

어찌 내 탓은 한 번도 하지 않고 오로지 일관성 있게 남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눈과 귀를 다 막고 오로지 자신만의 생각만으로 밀고 나간다. 순간 연산군 시대가 생각났다. 폐비 윤 씨의 진실을 알고 난 후 본격적인 폐륜적인 일을 일삼는 연산군과 그를 치마폭에 감싸 조정하는 장녹수와 그런 그들을 조정하기 위해 아첨만 일삼는 간신들의 행위가 떠올랐다. 지금의 시대와 다르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분명히 이들은 정의가 무엇인지 기본적으로 배웠고 그 걸음을 실천하기 위해 사법부를 지낸 자들이다.

그러기 위해서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고 그들을 위해 부모가 뒷바라지를 했을까. 과연 이런 모습을 보고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겠는가. 인공지능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정치는 조선시대로 되돌아가고 있으니 자고 일어나니 선진국이 아니라 어느새 후진국으로 떨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권력기관의 권한 행사는 언제까지 이어져 야만 할까.

개혁이 제일 안 되는 곳이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정치와 교육이다. 그들이 누렸던 권력의 혜택과 맛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 오로지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달콤한 말로 국민을 조롱한다.

하지만 더 이상 국민들은 달콤한 말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아무리 언론을 막더라도 IT강국에 살고 있는 국민들의 생각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 이제는 더 날카로운 시선으로 권력기관의 권력 행사를 지켜봐야 하며 냉정하게 판단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자리는 학교의 반장 자리가 아니다. 한 나라의 리더로 제발 좀 공정과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올바른 길을 걸었으면 한다. 

잘못한 것은 인정하고 벌 받을 것이 있으면 받는 것이 리더의 참된 모습이다.

왜 모르고 있는가. 우리가 어릴 때부터 수차례 학습하며 배우는 것의 기본적인 자세임을!


( '권력을 위해 존재하는 사법기관' 칼럼 / 구용회 논설위원 2024. 01. 18.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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