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이어트 4 >
대학시절 우연한 기회로 미국에서의 인턴십 과정을 마치고 귀국한 나는 큰 충격에 빠졌다.
친구들이 하나둘 취업하는 동안 나는 불어난 몸과 아빠의 갑작스러운 병으로 인해 홀로 정체되어 있었다.
결국 취직이 힘들었던 나는 전공과 상관없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보는 사람마다 왜 그렇게 사냐고 비난하는 소리를 여과 없이 들어야만 했다. 특히 친구나 선배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말할 때는 쥐구멍으로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취직하기가 힘든 상황임을 일일이 설명하기도 싫었고 거기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존심과 자존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탈출구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몸도 가벼워지면서 집중할 수 있고 그 순간만이라도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기댈 수 있는 것이 간절하였다.
문득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지만 해보고 싶었던 것. 그건 바로 '춤'이었다.
초등학교 때 반 아이 말이 떠올랐다.
"넌 춤은 좀 추는 것 같은데 몸이 너무 무거워." 하며 말했던 남자아이.
순간 수치심에 얼굴이 붉혔던 기억이 생각났다.
언제가부터 '춤' 잘 추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다. 음악에 맞춰 자신을 맡기며 열정적인 동작을 선보이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클럽에 가면 구석에 앉아 춤추는 것을 구경했던 기억도 났고 무대에서 화려하게 춤을 추며 사람들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영화 한 장면도 생각났다.
잘하지는 못해도 직접 해보고 싶고 그 희열을 느끼고 싶었다.
살도 빼고 모도 가벼워지며 긍정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춤'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하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아르바이트 일이 끝나자마자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시내에 위치한 재즈 댄스학원을 찾아갔다. 방송댄스보다 이상하게 재즈 댄스가 더 끌려 나도 모르게 무엇에 홀린 것처럼 터벅터벅 학원까지 걸어갔다. 혼자 무엇을 한다는 자체가 나한테는 굉장히 어렵고 용기를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학원 앞에 도착하였다. 밖에서 들려오는 크고 흥겨운 소리에 호기심이 가득 찬 표정으로 창문으로 바라보았다.
문을 열지도 못하고 서성 거리를 삼 일간 반복 또 반복하였다.
그만큼 낯선 곳의 문을 두드린다는 것이 내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포기할까 하다가 하고 싶은 간절함에 또다시 문 앞에 서성거리던 어는 날 한 사람이 같이 들어가자며 문을 열어주었다.
생기 넘치는 사람, 땀을 흘리면서 환한 미소를 짓는 사람들이 하나 둘 보였다.
두려움에 아주 작은 목소리로 수업 시간과 비용을 문의한 후 크지 않은 강의실 밖에서 수업을 구경하였다.
몸에 딱 달라붙어 멋지게 동작하는 사람도 있고 헐렁하게 옷을 입었지만 매력적이게 춤을 추는 사람, 무엇보다 카리스마가 풍기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와 나에게 함께 즐기자는 유혹을 받았다. 정말 신세계였다.
일에 찌들며 사람들 시선과 비난, 그리고 가족들이 나를 보는 시선에서 벗어나 오로지 몰입할 수 있는 순간임을 직감하고 그렇게 어렵게 문 두드린 신세계에 서서히 물들기 시작했다.
짧은 커트 머리, 아주 작은 얼굴,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선생님이 풍기는 카리스마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스트레칭부터 발레 기본 동작인 점프와 턴까지 보여주는데 계속 입만 벌리고 땀을 흘리며 부담스러운 동작으로 따라갔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 버벅기리지만 언젠가는 능숙한 동작으로 맨 뒤에서 맨 앞줄에 서겠다는 간절함으로 일주일에 세 번 즐겁게 배우러 다녔다. 일을 마치고 바로 학원으로 가야 해서 저녁을 자연스럽게 안 먹게 되었다. 그렇게 1시간 집중해서 춤을 추고 나면 피로감이 몰려와 바로 자는 시간이 많았다. 이게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서서히 부담스럽던 내 모습은 탈피하듯 아주 천천히 허물이 벗겨지기 시작하였다. 또한 생각도 긍정적으로 변하게 되고 늘 소극적이며 수동적인 내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지만 적극적인 태도로 바뀌고 있었다.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을 아주 어렵게 극복하고 손을 내민 용기로 난 '재즈댄스'라는 신세계를 접했고 회복 탄력성과 함께 불편함 몸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실패로 끝났던 다디어트가 재즈댄스를 만나 비로소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 길고도 험난한 다이어트 인생에서 정말이지 큰 의미 있는 일이었다.
땀과 열정, 에너지와 긍정적인 태도가 결합된 내 삶 자체의 변화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시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결혼과 임신으로 열정적인 신세계는 더 이상 접하지 못했고 상상하지도 못한 경험을 통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두 아이를 출산하고 변해버린 내 몸을 보며 다시 우울해졌다. 나와 같은 아이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날씬한 아이 엄마들 모습에 충격받아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더구나 출산 전 후의 몸 상태가 이렇게 다를 줄은 전혀 몰랐다. 비록 재즈 댄스는 아니었지만 헬스장을 다니면 운동하고 소식을 해도 몸은 별 반응하지 않았다.
지금은 이 방법이 안 통한다는 것이다.
( 다음 편에 계속...)
문득 내 열정을 쏟았던 춤이 생각나며 그림책 한 권이 떠올랐다.
<< 춤을 출 거예요 >> (강경수 그림책 / 그림책공작소2015) 그림책은 춤을 추고 싶은 소녀의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릴 적 내가 무엇이 하고 싶은지 생각하게 하는 그림책이다. 이 책 속에서 자신의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아이가 어쩌면 지금도 꿈을 꾸는 나와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춤을 추고 있는 아이 표정은 정말 예쁘고 밝다. 내가 재즈댄스를 배우면서 느꼈던 그 희열감을 이 책으로 다시 한번 더 느꼈다. 노란색 조명 아래 춤추는 아이 모습 책 표지를 넘기면 목탄으로 그린 한 소녀가 토슈즈 끈을 묶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장소, 날씨와 상관없이 춤을 추는 소녀 모습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꼭 재즈 댄스 수업시간에 참여한 내 모습이 보였다. 소녀의 춤에 소녀의 꿈에 박수를 치는 나를 보며 나 또한 꿈을 향해 간절하게 춤추고 있음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