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그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화나, 짜증나, 기분이 안 좋아
가 아니라
내가 느끼는 감정에는 트리거가 분명이 있었을 것이고
단순히 화나, 가 아닌 감정의 흐름이 있을 것이다.
저 사람이 저런 말을 하면,
나를 일부러 무시하는 느낌이 들어서
속에서 천불이 나고
3대가 망하라고 저주를 퍼붓고 싶고
나도 똑같이 대해주고 싶은데
저런 천박한 인간은 되고 싶지 않고
다른 우아한 복수할 방법을 찾고 싶은데 머리에 떠오르지 않아서
답답하고 억울하고
내가 저런 인간한테 진 것 같아서 자괴감이 들어
같은 것.
예전 같으면
나의 나쁜 감정을 듣고 상대가 기분이 안 좋아질까봐
되도록 나쁜 감정은 무시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나는 보살이 아니고
그런 감정이 쌓이다 보면
풍선 효과처럼 다른 엉뚱한 데에서 터지게 되는 것을 느꼈다.
엊그제는
카페에 갔는데
본인들이 잘못을 하고도
너무나도 뻔뻔하게 절대 사과를 하지 않는데다가
마치 내가 말을 지어내는 것처럼 뒤집어 씌우는
전형적인 이탈리아인 장사치의
환멸적인 행태를 보고
옛날의 트라우마가 떠올랐다.
중국 상해에서
택시 기사가 잔돈을 덜 주길래 달라고 했더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사람들을 모으더니
나를 사기꾼 취급하더라는.
진짜 이탈리아 정부는 알베르토에게 훈장을 줘야 한다.
한국 사람들은 이탈리아 사람이 다 알베르토 같다고 생각하니까.
어쨌든
평소 같으면
나무아미타불 혼자 삭혔겠지만,
그날은 내가 아는 모든 욕을 다 퍼붓고
오랜만에 욕 카타르시스도 느꼈다.
그리고 바로 뭔가 죄책감을 느꼈는데
그 장사치가 아닌
내 옆에 같이 있던 사람이 나의 감정 쓰레기통이 된 것은 아닌가 하고.
무고한 인간에게 나쁜 감정을 퍼부은 나는
미움과 버림을 받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익숙치 않은 위로를 받게 되었다.
- 네가 그렇게 화가 났었구나.
뭐든 투명한 것이 좋다.
투명하고 확실한 것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내가 이탈리에서 와서 살면서 가장 싫은 감정은 모호함이었다.
거의 모든 것이 모호하다.
TV를 켜고 뉴스를 봐도 드라마를 봐도 100% 확실하게 이해할 수 없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도
그 사람의 의도나, 의중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내가 누군가에게 내 감정을 전할 때에도 속 시원하게 전달하기가 어렵다.
어쩌면 98%, 어쩌면 99%.
하지만 뭔가 투명하지 않은 모호함이 항상 찝찝하게 남아 있다.
그 감정이 참 싫었다.
회사에서 똥을 싸느라 시원 깔금하게 못 싼 느낌이려나,
밥 먹고 뭔가 살짝 얹혀서 코카콜라 한 컵 들이붓고 싶은 느낌이려나,
또 다른 불편함은
계속해서 내가 무해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
어떻게 보면
나는 foreinger 외국인이고
self 자기가 아닌 foreign material 외부 물질인 것이다.
기본적으로 적응이 될 때까지는
외부 물질에 대항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려나,
한국에서야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
어떤 말투를 쓰는 사람인지 같은 것을 보면
그 사람의 배경을 대충 가늠할 수 있지만,
여기 foreign country에서는
내가 그들을 파악하기도 힘들고
그들도 나를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언제 어디서나
일단 나의 무해함을 증명해야 한다.
난 너희들을 해치지 않아....
거기에서 자연스러운 자기 검열이 시작되고
그렇지 않아도 일단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매 순간이 자기 검열의 연속이었으니 얼마나 피곤했을까. 과거의 나여.
누군가 그러더라,
인생은 열심히가 아니라 효율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요즘에서야
나에게는 외부 물체인 그들이 어느 정도 파악되기 시작했고
나는 외부 물질의 꼬라지에 따라
무해하기도 유해하기도 하면서 살고 있다.
중요한 것은 남들이 뭐라고 지랄을 하든
내 패이스를 유지하는 것.
나는 유유자적 내 갈 길 가는 것이다.
역시, 오늘도
엄마 말대로 인생은 대충 살아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