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그랬다.
다른 나라에서 살며
씁쓸함을 느끼는 시점이 있다면
그 나라에 적응해 버리는 순간이라고.
처음에 여행객 모드에서 느꼈던
모든 신선함이 사라지고
주변의 것들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시점.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여기에 정착하려면
응당 자연스럽게 적응해야 마땅하겠지만,
정작 그렇게 되면
뭐랄까,
애써 힘들게 키운 자식이
잘 자라서 이제 독립한다고 집을 나가
큰 집에 혼자 소파에 편안하게 앉아 있는 느낌이려나.
쓰러져가는 동네 철물점 간판을 찍고
길거리 우체통에 쓰여진 알 수 없는 경고 문구도 찍고
5월이면 프레지아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꽃들이
만발한 작은 동네 둘레길을 지나려고
일부러 돌아 돌아 걸어서 슈퍼에 가고 그랬었는데.
모르는 사람의 인사에 '차오'라고 답해보기도 하고.
여전히
집 앞 바다 너머 산에서는 가끔 무지개가 솟아오르고
사람들은 볼인사를 하고
누구도 목례를 하지 않는 곳이지만.
이제 많은 것들이
나에게는 이상하지도 않고
신기하지도 않다.
주말마다 데이트 코스 짜던 연인이
중년의 부부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이제 그냥 하찮아진 허니버터칩 같기도 하고.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사는 것에 점점 익숙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간은 상대적인 것이라
나의 주의를 끄는 것들이 많은 생경한 환경에서는
천천히 흐른다고 한다.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한국에 오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여행객처럼 신이 난다.
이것도 먹어 보고 싶고, 저기도 가 보고 싶고.
이탈리아에서는 가끔 미슐랭도 가지만,
여기에 오면
이상하게 추억의 장소에만 눈이 간다.
대학교 때 자주 간 곳이나, 어릴 때 자주 먹은 음식이나...
동창들도 만나는데,
신기한게
다들 내가 오면이나 한번 모이지
같은 서울에 살면서도 거의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정처럼 시간낭비가 없다고 한다.
그래도 가끔 생각해 본다.
내가 한국에 계속 살았더라면,
그때 용기가 더 없었더라면.
인생은 재미있다.
답도 없고 끝도 없다.
그리고
각자 자신의 인생이 존재한다.
얼어붙은 호수 위의 스피드 스케이팅이 아닌
꿀렁꿀렁 움직이는 파도를 타는 서핑 같은 하루하루.
인간 관계건
어떠한 현상이건
정의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말끔하게 정의되는 정답이 없다고
불안할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