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시 바르네아 해변에 갔다.
해변이라고는 하지만 도심에 있어,
바르셀로나의 해변처럼 모래 사장이 펼쳐진 형태가 아니라
인공적으로 조성된 곳이다.
집에서 차로 15분이니 편리하고 모래 사장이 아니라
덜 예쁠 지는 모르겠지만 모래를 털어내야 하는 수고도 필요 없으니
자주 가서 요가도 하고 바다 수영도 한다.
아무데나 바다와 가까운 곳에 각자의 비치타올을 깔고 누웠다.
요코는 일본이나 한국 같으면 해변 한번 가려면 일단 차 타고,
먹을 것, 마실 것,
쓰레기 봉투, 해변용 의상,
해변용 샌들, 메이커 수영복,
선크림, 모자, 튜브,
방수 카메라 커버, 이것 저것 다 준비해서
차 막힐 시간 계산해서 피해서
새벽같이 출발해서 도착하면 또 주차장 찾느라 헤매야 하고,
파라솔 자리 치열하게 찾아야 하고
찾는다 해도 돈내고 빌려야 하고,
결국 인스타에 올릴 사진 찍느라 시간만 다 보내다가
정작 살 탄다고 시원한 바다에도 안 들어가고
이제 덥고 배고프다고 나와서
어디 맛집 줄이나 서는 게 삶인데,
여기 이탈리아는 이렇게 아무것도 신경 안 쓰고,
바다 가자! 하면
바로 안에 비키니 입고
아무 원피스나 걸치고
비치타올만 챙겨 나오면
넉넉잡아 30분이면 바다에 도착해서
편하게 쉬고 수영할 수 있어서 괜찮지 않냐고 했다.
비록 외국인으로
그러니까 동양 여자로 사는 것이 불편한 점도 많지만(...)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요코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 넌 사람 만나는게 싫어?
- 왜? 아니.
- 저번에 축제 때 보니까
사람들이랑 얘기도 잘 안하고
구석에서 혼자 핸드폰 보고 있고,
방금도 나 아는 사람들 만났는데,
너는 그냥 다른 데 가버렸잖아..
- 아, 나는 할 얘기도 별로 없고, 아는 사람들도 아니고 해서.
요코는 좀 놀란 눈치였다.
- 아니, 뭐 그렇게 어울려 듣고 말하고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알아가는거지.
너는 사람들을 싫어하는 것 같아.
- 아니야, 나 사람들 좋아해.(혼또니!) 근데,
사람들이 나를 별로 안 좋아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그러니까 내가 하는 말에 별로 관심이 없어하는 것 같아.
-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동그란 미우미우 선글라스 너머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 사람들이 나하고 별로
친해지고 싶어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내가 굳이 말걸고 말하고 그러는 것도 민폐 같고 해서.
- 뭐라고? 남들이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 게 그렇게나 중요해?
요코의 눈이 커졌다. 내 목소리는 작아졌다.
- 중요하지...
- 그럼, 네가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은?
그건 안 중요해?
- 응?
- 네가 그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한 거 아니야?
그 사람들이 널 어떻게 생각하는 건 개나 주라고 해.
여긴 이탈리아야.
여기 사람들은 아무도 서로 무슨 생각할지 눈치보거나 배려하지 않아.
다들 자기 자신을 뽐내기에 바쁘다고.
그리고 여기서는 아무도 다른 사람을 챙겨주지 않아!
뭔가 머리를 부딛힌 기분이어서 잠깐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 나를 뽐낸다고?
- 다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느끼는지 설명하기 바쁘다고.
남이야 어떻건 관심도 없다고.
요코는 뜨거운 햇살에 반짝이는 아드리아 해를 흘겨보았다.
- 너를 드러내!
요코는 양팔을 한껏 벌리고
가슴을 앞으로 힘차게 내밀며 웃었다.
드러내라고?
과연 드러낼 내가 있을까 잠시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란색 비치 타월에 등을 대고 누우니
태양열로 따땃해진 바닥이 온돌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습하지 않아서 그 느낌이 좋았다.
이탈리아에 오기 전에 산
유물 같은 비비안웨스트우드 선글라스를 쓰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차 소리,
아이들이 물 장난치는 소리,
기러기의 울음소리,
사람들의 쉴새 없는 이야기들이
8월의 공기를 가득 채웠다.
나는 어디서부터 고장난 걸까.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냐?
더운데 바다에 뛰어들자! 얏땨!
요코는 무섭지도 않은지
바위를 딛고 바로 물 속에 퐁당 빠지더니
이내 저 멀리 수영을 해 나갔다.
나는 천천히 바위를 잡고 한발 한발 내려가며
바다 깊이를 가늠했다.
요코는 재촉하지 않았다.
어디선가 배운대로 심장에 무리가 가지 않게
서서히 바닷물에 몸을 담구었다.
바닷물은 맑고 시원하면서도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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