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향을 좋아한다.
그러니까 향수가 아니라 향, 냄새를 좋아한다.
냄새 맡는 것을 좋아한다.
나름 발달된 후각을 가지고 있어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면 아마 립스틱 자국이나 머리카락 따위 보다는
아마 남편의 자켓이나 정수리 냄새로 맞출 것이다.
공항은 티비 리모컨도 설겆이감도 없는 곳이다.
그 곳에서 공평하면서도 한정된 장소와 시간을 동등하게 제공 받고
각자의 취향에 충실하면서도 하찮다고 생각되는 일로 시간을 보낸다.
나는 면세점 곳곳을 뒤지며
이러저러한 향수나 화장품들을 하나하나 차분하게 맡아 보며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향수가 있으면 산다.
하지만 보통은 하나도 사지 못 한다.
그리고 운이 좋게 마음에 드는 향수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더라도
그 향수를 날마다 뿌리지는 않는다.
샤워 비누 향 그대로가 좋을 때도 있고
특별한 냄새가 나지 않는 내가 좋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화장실 캐비넷에는
정향과 가죽향이 어우러진 잘 길들여진 야생 사슴 같은 향수도 있고
식어버린 피 같은 베리들과 축축한 낙엽향이 뒤섞인 매력적인 살인자 같은 향수도 있다.
뚜껑만 열었는데도 부겔빌레아가 흐드러진 카르파토스의 해변에
비키니만 입고 누워 있는 느낌이 드는 향수도 있다.
향수를 뿌리는 날은 그런 날이다.
이러저러한 나를 만나 보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