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의 공항 통유리창에 비친 나, 자신의 모습을 보고 흠칫 놀랐다.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이물질(Foreign body)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볼 수 없다.
죽을 때까지 우리는 순수한 우리 자신을 볼 수 가 없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100% 나의 모습일까? 타인이 보는 나의 모습일까?
나는 나 또한 밝은 머리에 눈이 커다란 생명체라 여겼다.
그런 사람들만 줄곧 봐왔었기 때문에.
그러다 갑작스럽게 암스테르담 공항 12번 게이트 옆 나를 한 번에 덮치고도 남을 정도로 거대한
유리에 비친 나의 아주 작은 눈동자를 마주했을 때,
꼬여버린 코딩처럼 일종의 버그로 몸이 순간 멈춰버렸다.
한국에 있는 2주 동안 날마다 엄마가 만들어 준 신김치 김밥을 먹었다.
한식이란 참 이상하다.
약간 명품 같은 거라
갖기 전에는 없으면 죽을 것처럼 원하지만
막상 갖고 나면 그냥 그런 시시한 것이 되어버린다.
이번 또한 한국에 오기 전에 이 식당도 가고, 이 음식도 먹고, 이것도 사먹고
얼마나 많은 음식 목록, 맛집 목록을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도착하면
엄마가 만들어 준 신김치 김밥만 먹게 된다.
사실 이게 별거 아닌데 말이다. 정말 양념을 쪽 짠 신김치만 들어간 김밥이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진짜 별것인지도.
이 신김치부터 얼마나 정성들여 재료와 양념을 고른 것인가.
하나도 허투루인 것이 없다. 외할머니 텃밭에서 난 유기농 고춧가루에
아는 사람만 주문해서 살 수 있다는 서해안 새우젓에
정성으로 만들고 보관한 김치.
그렇게 몇 년을 묵힌 김치는 무통 로칠드보다 대단한 것.
거기에, 밥은 또 어떻고.
아는 분께 맡긴 논에서 수확한 쌀을 해마다 받아오신다.
그걸 엄마는 항상 갓지은 것만 끼니마다 주셨다.
남은 찬밥을 데워 먹는 건 항상 아빠와 엄마 몫.
귀농한 외삼촌이 텃밭에서 키운 유기농 참깨를 살짝만 볶아 기름집에서 짠 참기름.
사실, 엄마 김밥은 내가 그리던 굉장한 한식이었다.
- 신김치하고 김밥김 싸줄까? 가서 해 먹어.
- 아니, 됐어. 어차피 싸가면 이 맛이 안 나. 여기 있을 때 맛있게 이렇게 먹고 가는 게 좋아.
엄마아빠에게 한국 바지락으로 만든 맛있는 스파게티 봉골레를 만들어 드리자, 생각했는데
결국 이 계획도 실행하지 못 했다.
다행히 엄마아빠는 피부도 맨질맨질 빛이 나고, 표정도 평온하고,
날마다 모임에 운동에 바삐 움직이면서도 여유로워 보였다. 뭔가 회춘한 느낌이었다.
또 나만 늙었지 뭐.
노브라를 한 지는 꽤 된 것 같다.
- 엄마, 엄마도 노브라 해 봐. 좋아. 편해.
- 됐어. 요즘엔 브라도 편하고 얇은거 많이 나와.
- 왜 안 하는 거야? 누가 늙은 아줌마 가슴만 보고 다닌대? 브라 했나, 안 했나? 사람들이 얼마나 바쁜데. 여름엔 너무 덥고 불편하잖아.
그리하여 엄마도 노브라를 하긴 하게 되었는데,
티에 펑퍼짐한 셔츠를 입으시는 걸로... 폭염이었다...
언제부턴가 무리되는 것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까 빠듯하게 계획하지 않기로 했다.
비행기 기내 가방은 전자기기 말고는 거의 빈 채로 들고 다니고,
한국에 머무는 시간이 2주 밖에 되지 않으면 약속은 거의 잡지 않는다.
배가 부른 느낌이 나면 바로 젓가락을 내려 놓고
아침 비행기면 공항 근처 호텔에서 하룻밤을 잔다.
파란불이 깜박이면 건너지 않고 노란 불에 멈추고 약속 시간도 여유롭게 미리 도착한다.
예전에 아는 언니가 있었다.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지만, 언젠가는 다시 연락이 닿을 것이라고 막연히 꿈꾸는.
그 언니는 한 번도 나에게 조언도 충고도 한 적이 없다.
자신의 생각을 개진한 적도 감정을 드러낸 적도 없다.
그 언니가 사는 것을 보고,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생각했다.
저런 방식으로 살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언니 김밥도 참 맛있었는데.
예전엔 와닿지 않았는데
이제 예를 들면 내 나이 열여덟일 때 엄마가 지금 내 나이었네?
이런 게 선명하게 느껴지는게 기분이 굉장이 이상하다.
어릴 때는 기억이 또렷하지 않아서 그 때 엄마가 지금 내 나이었다고 하더라도
별 생각이 없었는데
열여덟, 열아홉, 스물... 이때는 내 기억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 내가 본 엄마 모습도.
그러고 보면
우리 엄마 마흔 초반에 내가 삐뚤삐뚤한 글씨로 '엄마 오래오래 사세요.'이런 카드를 보냈으니.
예전엔 엄마나 가족들이 나보고 철 좀 들라고 했는데
이제는 철들지 말고 그냥 살고 싶은대로 살라고 한다.
알 수가 없다.
돌아오기 며칠 전부터 냉방병에 걸려
식음을 전폐하고 미음만 마시다가 왔다.
이번 여행은 말미에 너무 힘들었다.
다녀와서도 집에서 몇 주를 아팠다.
그래도 여기도 집이라고 오니까 뭔가 사르륵 녹는 느낌이 들어
거실 소파에 널부러져 거실 통유리로 보이는
일본 청량 애니 같은 여름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았다.
낮이었기 때문에 내 모습은 비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