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이에서 가장 해악한 감정이 무엇일까.
예전엔 '미안함'이라고 생각했다.
서로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순간
고민 끝에 머리카락을 잘라 판 '크리스마스 선물' 이야기 부부처럼
둘 사이 행복보다 슬픔의 비중이 커진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다가
맛있는 라면 불어서 아무도 못 먹는 불상사가 일어나고
관계는 꼬이고 만다.
미안함은 결국 희생으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나에게 희생한 엄마에게 미안한 한국 남성들은 다시 부모에게 희생을 하고...
대략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이런 스토리.
그런데,
진짜 무서운 감정은 '부담'이 아닐까.
미안함은 일말의 눈물 나는 애정이라도 남아 있는
'슬픔'의 상태라면
부담은 그저 책임이고 의무인 것이다.
채무자가 채권자를 보는 마음이 편할 리 있나.
본인은 깨닫지 못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마 불편한 '분노'가 자리잡을 것이다.
그 분노에 못 이긴 상대는 나에게 빚을 갚고
나는 순간 사랑받는 기분을 느끼겠지만,
채무자란 빚을 갚으면 채권자를 다시 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나에게 '미안'하다는 어른도 있었겠고
내가 '부담'스럽다는 남자도 있었다.
인간의 관계란
편의점의 1500원짜리 송로 버섯 한우 오코노미야키 라면 성분처럼
출처를 알 수 없는 유해한 다양한 감정들로 구성된 게 당연하겠지만,
그를 또는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결국 다시 헤어지는 운명을 맞게 되겠지만서도,
정말 부담만큼은 다시 돌려받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차라리 단순 명료한 증오와 맞바꾸겠다.
부담은...
뺨을 후려쳐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안아 줘야 할 것 같기도 한...
정말 부담스러운 감정이다.
난 내가 사랑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빚쟁이가 되고 싶지 않다.
달콤하고 잔인한 고리대금업자처럼
내 감정을 반강제로 퍼주고는
때가 되면 친절하게 안부를 묻던 나는
정말 그에게 아무것도 기대하는 것이 없었을까?
나의 아웃풋이 선의라고 해서
상대가 선의의 인풋을 받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을 쓰면서 자꾸 귓가에 맴도는 말이 있다.
'님! 자제요!'
내가 가진 모든 사랑을
순수하게 깡그리 다 퍼줬다며
선의의 피해자임을 주장하며 동정을 호소했던 나는,
결국
사실 극악무도한 프로 부담러에 이기적인 피의자로 밝혀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