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인 구름의 형태

환상 극장 6.

by 임이안

남자는 타자를 친다. 타자를 치는 게 업무다. 누군가에게 메일을 쓰기도 하고, PDF나 워드 문서를 검토하기도 한다. 썩 행복해 보이는 표정은 아니다. 대부분 무표정하고, 간혹 전화를 받을 때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지만 웃는 건 극히 드물다. 심지어 옆자리 동료와 대화를 나누지도 않는다.


그 남자는 일하는 기계처럼 보인다. 평일 대부분의 시간은 이렇게 모니터 앞에서 집중해 일한다. 몸에 밴 습관이다. 기계처럼 일을 하지만 사실 감정이 있고 만지면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이다. 감사하게도 보고 듣고 말할 수 있고, 충분히 다른 사람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넬 수 있고 아름다운 선율에 귀 기울이고 창 밖에 뜬 창의적인 모양의 구름을 감상할 줄 아는 사람이다.


애석하게도 남자는 자신이 그럴 수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자신이 지닌 능력을 남자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왔다. 역시나 깨닫지 못한 채, 여전히 보고 듣고 말하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여기며 남자는 기계적으로 일을 하고 시간을 쌓아나갈 것이다.


해마다 여름이면 남자는 공원 오솔길에 핀 탐스러운 붉은 열매를 마주할 것이다. 붉은 구슬 같은 열매를 맺은 나무를 보며 남자는 어렸을 때 들었던 숲의 정령을 떠올릴 것이다. 그는 성격 급한 정령이 급히 길을 가다가 그만 소중한 붉은 구슬이 든 바구니를 엎은 거라고 생각했다. 사방으로 흩어진 구슬은 주변에 있던 키 작은 나무에 매달린 나뭇잎마다 촘촘히 달라붙어 저런 탐스러운 장면을 연출했다고.

해마다 같은 풍경을 보면서 남자는 그 성미 급한 정령과 붉은 구슬을 떠올릴 것이다. 심지어 자신이 했던 생각인 것도 잊고, 정령과 붉은 구슬의 이야기가 너무 낯익어 혹시 책이나 기사에서 접한 이야기인지 고개를 갸우뚱할 테지만 거기에 대해 크게 궁금해하지 않고 가던 길을 갈 것이다.


퇴근 후 남자는 음악을 듣거나 텔레비전을 본다. 가만히 화면을 들여다보면 골치 아픈 한낮의 일은 이미 저만치 과거라는 강물에 섞여 흘러가 버린 기분이다. 한낮에 충분히 활자를 읽었으므로 아무것도 들여다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남자는 움직이는 영상에 주목한다.


남자는 지금의 삶에 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과거에 비하면 무척 평온한 삶이다. 과거는 풍랑을 만난 듯 힘겨웠다. 남자는 배의 선장이었다. 아빠를 태운 배는 한밤중의 바다를 나아가고 있었다. 키를 잡고 남자는 배가 바닷속 블랙홀로 떨어지지 않도록 무던히 애썼다. 그리고 그건 남자의 착각이었다. 남자는 선장도 아니었고,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은 무력한 일이었다. 텔레비전에서 위험에 빠진 사람을 본 것처럼. 남자는 아빠에게 작별인사를 한 다음 해, 우연히 떠돌이 개를 만났다. 주인을 찾지 못한 개에게 나나라고 이름을 붙여주고 키우기 시작했다. 나나는 하와이어로 봄이란 뜻이었다.


이름 그대로 나나는 남자의 일상에 새로운 계절을 불러왔다. 처음에는 한 생명을 돌본다는 책임감이 무거웠는데 나중엔 익숙해졌고 기쁘기까지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생명체의 보호자라니. 남자는 모성애가 각별한 마이아사우라가 새끼를 돌보듯 나나를 돌봤다.


나나는 앓고 있는 질환으로 기침을 많이 했고, 주말이면 남자는 나나를 품에 안고 출근을 하듯 병원을 찾아 약을 지었다. 나나가 위험한 한밤중의 고비를 넘긴 다음날의 기침 소리는 남자에게 그야말로 살아있는 기쁨의 소리였다. 나나를 만난 뒤, 남자는 그제야 자신의 눈과 귀, 입이 하는 일에 대해 제대로 인지한 듯 보였다.


남자가 처음 나나를 발견했을 때부터, 나나는 이미 나이가 많았다. 이빨이 없어서 정확한 나이 추정은 어려웠지만 나나가 떠날 무렵 수의사는 이제 열여덟 살은 되었을 거라고 했다.

누군가는 오래 살았다고 했지만 그건 위안이 되지 않았다. 살아있는 건 모두 자연으로 돌아간다. 아주 당연한 진리였지만, 아주 당연한 사실이 남자의 마음을 무너지게 했다.


마음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아서 무너져도 사람들은 모른다. 무너져도 알아차리기 힘들다. '마음이 무너졌어요'라고 적힌 니트를 입고 출근하더라도 사람들은 그것이 본심이라 믿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무너진 것을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는 건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직장에서는 더더욱 부끄러운 일이다. 직장은 일해서 수익을 창출하는 곳이지 사람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측은지심이 있는 회사 선배나 남자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동료가 있다면 상실의 고통을 이겨내는 것이 더 수월했을까? 마음을 재건할 수 있었을까?


볕이 좋은 어느 여름날이었다. 나나를 떠나보낸 날, 남자는 하루 연차를 냈지만 다음날 평상시처럼 일을 했다. 모니터를 바라보고 타자를 쳤다. 이메일을 쓰고 PDF나 워드 문서를 검토했다.


눈이 아프면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창문은 옆자리 동료 옆에 있었다. 단발머리에 체구가 작고 말수도 적은 여자다. 창문을 보려면 여자 쪽으로 고개를 돌려야 하는데 이 경우 여자는 남자가 자신에게 용건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 대신 바라본 천장에는 흰색 바탕에 갈매기 무늬가 그려진 타일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갈매기 수십, 수백, 수만 마리가 천장을 날고 있지만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일을 한다. 사무실의 누군가 그 수만 개의 물결에 빠져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남자의 무기력함이 깊어진다. 퇴근 후 잠으로 도망치듯 잠자리에 들었다. 나나가 꿈에 나온 뒤로 집착하듯 더 일찍 잠자리에 들기 시작했다. 각박한 현실과 다르게 꿈은 총천연색으로 생생하고 아름다웠다. 펼쳐지는 이야기는 개연성이 없어도 현실보다 더 따뜻했다.

남자는 산산조각 난 마음을 꿈에서 치유받을 수 있다고 굳게 믿는 것처럼, 이불에 고개를 묻고 잠을 청했다. 어쩌면 살아가는 일은 애도하는 일이라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주말의 남자는 산책도 그만두고 온종일 집안에서 깊은 잠을 잤다. 건강한 아빠가 나오는 꿈을 꾼 뒤에는 자신이 이 꿈을 꾸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왔구나, 혼자 미소를 지었다. 꿈에서 나나를 품에 안았던 날은 꿈에서 깬 뒤 허망함으로 울었다.


시간이 쌓였다. 남자는 여전히 많은 잠을 잤다. 잠자는 시간으로 포인트를 쌓는다면 이미 고득점을 했을 터였다. 여전히 기계처럼 일을 했지만 그는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이었다.


어떤 날 퇴근길의 저녁노을은 사방의 하늘을 오렌지빛으로 물들였다. 나나의 푹신한 털을 연상 시켰다. 햇빛을 받은 나나는 노란색이 섞인 따뜻한 오렌지빛으로 빛나곤 했다. 남자는 노을을 보면서 꿈으로 도피하듯 도망쳤던 그간의 일상을 돌아봤다. 이후로 두 해가 지났다. 마음이 재건되었나?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동안 변화가 있다면 주말의 산책을 재개한 점, 사무실에서 옆자리 여자와 간단한 잡담을 나누게 된 점이었다. 여자와 대화를 하게 되면서 천장의 갈매기보다 창 밖의 구름을 바라보는 횟수가 늘었다. 자신이 창의적인 구름의 형태를 보고 상상하는 일을 누구보다 즐긴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구름 아래 정물화처럼 서 있는 마천루와 오래된 건물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여자가 매달 수요일에 연차를 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남자는 궁금했지만 자신이 그것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이유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른다.


이 회사를 다니는 한 남자는 여전히 성과를 위해 훈련된 자세로 기계처럼 일을 할 것이다. 퇴근하면 생생한 꿈을 꾸기 위해 잠으로 파고들 것이다. 남자의 믿음처럼 무너진 마음은 재건될 리 없고 사랑하는 이들은 오직 꿈속에서만 만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이제 남자가 할 일은 애도하는 일뿐이며 눈부신 생의 감동은 꿈속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그런 믿음과는 별개로 마음은 여전히 무너졌지만 어쩌면 옆자리 여자가 건넨 유머가 잔해로 가득한 폐허에 꽃 한 송이를 피워 올릴지도 몰랐다. 언젠가 남자는 여자에게 창 너머 창의적인 구름의 형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말할 것이다. 대화는 남자의 살아있는 감각을 일깨우고 새로운 계절을 불러올 것이다. 나나가 그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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