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극장 5.
어둠의 숲에서 도망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덩치가 큰 성인이 어린아이처럼 소리 내 울고 있었다. 고고하게 서 있던 나무들이 무슨 일인지 물었지만 그 여자는 우느라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바라보는 나무들에게는 참 답답한 일이었다. 말을 해줘야 이렇다 할 위로라도 해줄 텐데.
여자는 나무들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고개를 저었다. 어떤 말을 해줘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거야. 특히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하지도 말라고 못 박았다.
나무들도 그 여자처럼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가만히 나뭇가지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공기가 정체된 듯 무더운 날이었는데 신기하게도 나무들이 몸을 흔들자 바람이 불었다.
울다 지친 여자가 나무 아래 주저앉았다. 나무들은 가만히 여자에게 바람을 보냈다.
있지, 우리는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안 할 거야. 그냥 이 바람으로 너를 안아줄게.
우리는 네 앞에서 떠난 이들에 대해 말하지 않을 거야. 대신 함께 했던 햇살 같은 추억을 불러올게.
우리는 네 앞에서 원래 삶은 다 그런 거라고 말하지 않을 거야. 대신 네 이야기에 귀 기울일 거야. 그러니 네 얘기를 조금이라도 더 해줄래?
우리는 네게 정신 차리고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말하지 않을 거야. 대신 너를 돌봐줄게. 그래 넌 성인이지만 사실 모든 어른은 돌봄이 필요하거든.
우리는 음악을 들려주고 책을 읽어줄 거야. 네가 새근새근 잠들 때까지. 언젠가 너는 꿈속에서 떠난 이들과 조우하고 함께 춤을 출거야. 그리고 깨어나 이렇게 회상할 거야. 내가 이런 멋진 꿈을 꾸려고 지금까지 살아있었구나.
우리는 네가 성장하는 걸 지켜볼게. 그래 넌 성인이지만 사람은 죽을 때까지 성장한단다. 우리는 네가 한 뼘 더 자라기까지의 과정을 응원할게.
불어오는 바람은 영겁의 시간을 안고 있었다. 여자가 전생에서 겪은 상실에 대해서도 훤히 알고 있던 바람이 말했다. 나는 너를 매우 잘 알아. 그러나 다 안다는 것처럼 위로하려 들지 않을 거야.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란 말도 하지 않을게. 그냥 여기, 곁에 있을 거야 나는.
바람이 부드럽게 여자를 안았다. 나무 아래 앉아 울던 여자가 까무룩 잠이 들었고, 나무의 예언처럼 어떤 꿈을 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