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 이동의 기억

June2009

by AIR

대학 졸업이 다가오며, 나를 비롯한 주변 모두가 자소서 쓰기에 몰두하던 당시 가장 어려웠던 질문은, '이 회사에 들어와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라는 참으로 막연하면서도 직접적인 질문이었다. 기자가 되고 싶다며 신문사, 방송국에 원서를 넣을 때는 그래도 할 말이 있었는데, 막상 취업전선의 끝자리에 몰려 어디든 취직은 해 놓고 보자는 심정으로 쓰던 자소서에 그저 취직이나 시켜 달라고 쓸 수는 없었으니까.

"세상을 움직이는 요소들에 대해 통찰하고, 현재 일어나거나 앞으로 발생할 일들에 대해 예측해서 세계가 어떻게 구성이 돼 있고, 어떤 작용과 반작용에 의해서 역사가 이루어져가는지 알고 싶다" 언론사에 지원할 때 늘 쓰던 이유였다. 당시에 내가 생각하던 세상은 건방지게도 정말 World였고, 역사와 정치에 대해서 공부하며 시사에 대한 글을 써서 생계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언론인이 되는 게 꿈이었다.


생산관리를 하는 부서에 있는 2년 남짓의 시간 동안, 대기업 생산직 선후배들과 부대끼며 일하는 시간이 싫은 건 아니었다. 다만 매일 정해진 루틴에 익숙해진 후부터는 "세상의 원리를 살펴볼 기회"도, "매일 일어나는 사건 사고의 작용과 반작용에 대해 고민할 이유"도 얻기 힘들었다.


조금씩 지루함이 짙어지던 어느 날, 인사팀 소속의 동기에게 무의식적으로 말을 걸었던 것 같다,


"나 부서를 좀 옮기고 싶다"


생각보다 기회는 빨리 찾아왔는데, 마침 영업팀에 빈 자리가 있어 입사 2~3년차 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부서장 면접을 보고 한 달쯤 후 합격(?) 통보를 받아 옮겼는데, 혼자 짐을 싣는 대차에 데스크탑과 모니터를 싣고 영업팀이 있는 건물로 옮겨갔던 기억이 난다. 터덜터덜 들어간 사무실에는 기계 돌아가는 소음도, 왁자지껄한 생산직 형님들의 목소리도 없는 적막한 공간이었다. 길게 뻗은 사무실에 백명이 넘는 영업팀 직원들이 일을 하고 있었는데, 조용한 노트북 타자소리에 간간히 섞여 들리는 영어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이 회사는 영업=헤외영업이 당연한 수출비중 95%의 회사로, 내가 영업팀으로 비교적 빠르고 쉽게 옮길 수 있었던 것도 조금이나마 할 수 있는 영어 덕분이었다. 생산관리에 있을 때도 동기들보다 빨리 출장을 가게 해 줬던 게 영어였는데, 어학연수를 가지 않았다면 과연 나는 지금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었을까.


처음 1주일은 주로 교육을 받았다. 나는 일종의 상품 전략 담당 부서에 배정을 받았는데, 가격과 판매 전략을 세워 해외 법인에 전파하고 관리하는 역할의 부서였다. 워낙 생소한 업무라 교육을 받으면서 처음 전공과목을 들었던 대학교 2학년 시절처럼 헤맸는데, 용어는 물론이고 업무 프로세스 자체를 전혀 모르니 대체 어디부터 모르겠다고 말을 하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어찌해서 교육은 마치고 아직 한 명 역할을 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시점에, 호주의 거래선이 한국으로 출장을 와 처음 미팅을 들어가게 되었다. 막내 사원과 둘이 함께 회의록을 쓰는 업무를 받았는데, 나는 호주 영어가 그렇게 알아듣기 힘들다는 걸 그 날 처음으로 알았다.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할 수 있던 막내사원이 아니었다면 회의록을 빈 종이로 냈어야 할 판이었는데, 회의 내내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서 식은땀만 줄줄 흘리고 있었다.


부서를 옮기고 3개월쯤 지나서 또 다른 거래선이 왔던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제품 설명을 짧게 하는 업무를 받았는데, 나름 발표에는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간단히 준비하고 들어간 게 화근이었다. 영어로 하는 제품 설명은 학원에서 강사생활로 다져진 발표실력과는 전혀 상관없이 엉망이었고, 발음이나 서툰 영어보다 더 큰 문제는 중압감에 말해야 할 내용도 다 하지 못하고 발표는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마지막 몇십초는 사전에 써 놨던 스크립트를 책상에 놓고 읽으며 겨우 발표를 끝냈다. 거래선이 돌아간 후,

저녁에 퇴근하려는데 부서장이 나를 불러 한 마디를 했다.

그는 내 이름을 부르며 "영어가 안 되면 말수를 줄여요, 왜 하지도 못하는 영어를 잘하는 척 하려고 써 놓은 걸 읽어"라고 했는데, 나는 그 날 내가 어떻게 집까지 들어갔는지 지금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생산관리 부서에 비해, 해외영업팀은 상대적으로 고학력의 직원들이 대부분이었고 다들 자신의 능력에 자신감을 갖고 일하고 있었다. 팀 안에서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부족한 능력을 실감하는 날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 큰 회사가 돌아가는 원리를 알고, 벌어지는 많은 일들의 작용과 반작용을 이해해 보고 싶어 부서를 옮겼는데, 점점 더 자신감만 잃어가는 자신을 보며 조금 바뀌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2013 Apr, Hong Kong, Shek Tong Tsui]

조금씩 자신감을 잃어가던 시절, 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준 사람은 심한 말을 했던 부서장이었다.

그는 임원으로 승진하며 새로 만들어진 부서의 조직장이 되었는데, 나를 자신의 팀으로 데려가며 B2B 영업을 담당하게 했고, 10년이 훌쩍 넘게 지난 지금까지 B2B 영업을 하고 있다

온 세상의 원리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직업의 특성상 세상이 돌아가는 상황에 늘 귀를 기울이며 살아야 하고 있고, 국제 정세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항상 여러 뉴스를 보고 있다.

사진은 홍콩의 Hill Road Flyover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 중 하나이다. 출장으로 자주 가던 홍콩의 단골 호텔에서 찍었는데, 익숙한 아파트들 사이에 크게 경사지고 고불한 저 도로가 이국적으로 느껴져서 마음에 남는 장소이다. 낮에는 저런 모습이지만 밤이 되면 세기말 사이버 도시 같은 느낌이 나던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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