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B 영업의 기억들 (1)

글로벌 고객 관리

by AIR

[1]

B2B 영업이라는 건 새로 생긴 조직에 새로운 업무로 이전에도 B2B 사업을 안했던 건 아니지만 비중이 작아서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하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는 영역이었다.

생산관리에서 영업으로 넘어와 1년이 조금 넘었을 무렵이었고, 아직 베테랑 영업 담당자들에게 비길 능력은 안 됐지만 그래도 이제 누가 무슨 얘기를 하면 이해는 하고 의견도 낼 수 있는 수준까지는 올라가고 있던 시기였다.


나를 이 곳으로 데려온 부서장이 평소 나를 딱히 좋게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의 완벽주의적 성향은 나와 결이 많이 달라서, 대체 나를 왜 자기 부서에 데려왔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후배를 한 명 소개시켜 주었는데 앞으로 나와 함께 둘이 업무를 하면 된다고 했다. 나보다 먼저 B2B 영업부서로 옮겨와 일을 하고 있던 "J"는 나이는 나보다 3살 어리고 입사 연차는 내가 2년 빠른 꽤 차이가 나는 후배였는데, 팀 전체에서도 유능하다고 정평이 나 있는 친구였다.

J는 나에게 우리는 앞으로 글로벌 고객을 관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무슨 말일까, 한참을 생각했던 거 같다. 글로벌 고객은 무엇이고 그걸 관리한다는 건 어떤 뜻일까. 그리고 글로벌 고객을 어떻게 사원 2명이 관리한다는 건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J는 생각이 깊고 업무 능력이 또래에 비해 출중한 팀의 에이스로 불렸는데, 그 만큼 사적으로 다가가기에는 어려운 느낌이 많았다. J도 내가 나이는 많은 선배인데 아는 건 본인보다 일천하니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도 난감하고 그저 맨땅에 헤딩을 어떻게 해야 덜 아플까 하는 수준의 고민을 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지금까지 우리 제품을 사지 않았던 글로벌 고객 - 말 그대로 전 세계에 거점을 갖고 있는 큰 회사들을 상대로 우리 제품을 알리고, 관계를 좋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었다. 업계에서는 이 업무를 Global Account Management라고 부르고 있었고, 통상 GAM - '감'이라고 했다.

J와 나는 둘이 이 회사의 제대로 된 첫 GAM 파트였고, 세상 어디에도 의지할 곳 없는 외톨이들이었다.


J는 다음 날 포브스500 리스트를 다운받아 갖고 왔다. 그리고 지도를 놓고 태평양을 기준으로 담당을 나누자 했다. 마치 스페인과 포루투갈이 동서로 세상을 나눠 식민지를 갖자고 했던 것처럼, 지도를 위에서 보고 태평양의 오른쪽인 북미/중남미는 J가 담당, 나는 왼쪽인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지역을 맡기로 했다.

우리는 포브스500에 포함된 회사들의 본사를 하나씩 적어가며, 앞으로 우리의 연락을 받게 될 미래의 고객들을 점지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이런 일이 가능했던 두 가지 이유는, 먼저 우리가 있는 회사가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아는 회사인 덕이 있었고, 인터넷의 발달로 원하는 고객의 대표 연락처 정도는 쉽게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완성된 리스트를 나눠 갖고 각자의 담당 지역에 있는 고객들에게 하나 하나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 메일을 받아 보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확실히 모른 채, 첨부 파일에 회사의 제품 브로셔 하나를 붙여서 내 이름과 소속을 밝히며 당신과 사업을 하고 싶다고 메일을 보냈는데, 대부분의 메일은 당연히 고객들의 스팸메일함으로 직행해서 아무런 회신도 받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부터인가 하나 둘씩 회신이 오기 시작했다.



[Epilogue]

서로 어색해서 말도 놓지 못하던 사이였던 J와 나는, 매일 같이 야근을 한 덕에 꽤나 친해지게 됐는데, 11시까지 메일을 보내다 1시간만 나가서 맥주한잔 먹고 막차로 집에 가던 추억이 남아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했던 일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남아서 늦게까지 일하는 것 자체로도 자신이 조금 대견해 보이던 시절이었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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