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삶의 문제 앞에서

현루님을 보며 욥을 생각하다.

by 꽃피랑

브런치를 통해 소중한 인연들을 많이 만났다.

현루님은 신학교까지 나오셨지만 출가하셨다가 지금은 장애후유증으로 인해 승려를 그만두고 글을 쓰신다.


전부터 부처님 말씀을 읽어보고 싶었지만 기독교 배경에서 자란 나에게는 너무 어려웠다.

브런치 작가에 합격한 후, 우연히 현루님의 불경 관련 글들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바로 팔로잉했던 기억이 난다.

작가님께 궁금했던 점을 여쭤보면 이해하기 쉽게 기독교 교리들을 활용하여 설명해주셨다.

고민하던 문제들에 대해서도 정성스럽게 댓글로 격려해 주셔서 항상 감사했다.


하지만 얼마 전 작가님의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공지를 봤다.

별 일이 아니기를 바랐는데 암에 걸리셨다고, 연명치료는 하지 않을 거라고 하셨다.

위로의 댓글을 달고 싶었지만 어떤 말도 위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인간을 사랑한다는 신은 왜 이렇게 가혹한 시련을 주는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욥이 떠올랐다.

보통 구약에서는 신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고 거역하면 벌을 받는다.

하지만 욥은 그 명제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욥은 신과 사탄에게서 의롭고 선한 사람.으로 인정받았기에 오히려 시험 대상이 되었다.

그의 모든 재산과 자녀가 하루 만에 사라지고 건강마저 빼앗겼다.

아내는 차라리 신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말할 정도였고

그를 위로하러 왔던 친구들도 뭔가 죄를 지었으니 이런 일을 당한 것이 아니냐.며

어서 회개하라고 압박한다.


지금도 그런 일은 일어난다.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불의를 참을 수 없었기에 고문을 당했고 죽기까지 했다.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로 이유없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있다.

반면, 귀신은 저런 인간 안 잡아가고 뭐하나..싶을 만큼

악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은 아무 일 없이 자손대대로 잘만 산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도대체 정의로우신 하느님은 어디 계십니까? 묻고 싶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신이 전지전능하다고 해서 모든 것을 신이 결정한다면 인간은 꼭두각시가 될 뿐이다.

인간 스스로 자유의지를 가지고 행동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신은 자신의 전지전능함을 스스로 제한하고 인내한다.고 성서 관련 강의에서 들었던 적이 있다.

어찌 보면 부모가 아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참고 기다려주는 것과 비슷할 수도 있지.

머리로는 그렇게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여전히 마음속으로는 공감이 되지 않는다.


고민 끝에 단 댓글에 현루 작가님은 이미 마음 정리를 다 하셨다고 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직면해야 하지만,

가장 두렵고 피하고 싶은 문제 앞에서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신이 원망스럽다는 나의 말에 오히려 신은 공평하다는 댓글을 다신 것을 보면서 오히려 내가 눈물이 났다.

나 같으면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시는 거예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이럴 것 같은데.


인간은 누구나 죽지만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같지 않다.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의 설교는 많이 들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분을 보니 뭐라 말로 할 수 없는 경외감이 들었다.

나는 죽음 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가?

후회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죽음까지 받아들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앞으로도 한동안 고민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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