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틋하고 안쓰러운 외할머니

by 꽃피랑

지난 주말, 상담사가 힘든 어린 시절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엄마와의 사이는 최악이었고 아빠도 엄마 편이었지만

다행히 나에게는 외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는 아들만 있는 집의 막내딸로 귀하게 컸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할머니는 집안일을 전혀 할 줄 몰랐다.

사람 사귀기 좋아하고 인기도 많던 할머니는 항상 집에 없었고 엄마는 어릴 때 저녁이 되면 할머니를 찾아 온 동네를 돌아다녀야 했다. 엄마 밑에 남동생인 삼촌이 있었는데 할머니는 삼촌만 예뻐했고 상대적으로 딸이었던 엄마와 이모에게는 무관심했다.


외삼촌 역시 할머니를 닮아 친구에게 가진 것들을 다 주는 사람이었기에 돈을 모으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갈 곳이 없어진 할머니는 내가 어릴 때부터 우리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하지만 엄마와 할머니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엄마는 굉장히 깔끔한 성격인 반면

할머니는 집안일에 거의 신경 쓰지 않는 분이었다.

담배를 피우며 쌀을 씻거나 제자리가 아닌 곳에 물건을 두기도 했다.

엄마는 나와 아빠가 다 보고 있는데도 할머니에게 매일 잔소리를 퍼부었다.

할머니는 묵묵히 듣고만 계셨는데 가끔 엄마가 너무 심하다는 생각에

옆에 보고 있던 내가 대들다가 혼난 적도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얼마나 모멸감을 느끼셨을까?

만약 내 딸이 갈 곳 없는 나에게 그렇게 한다면

차라리 복지시설로 들어갈지언정 그 집에 살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철없던 나는 할머니에게 돈 달라고 떼를 쓰거나

자다가 '할머니 목말라요!'

이러면서 내가 하기 귀찮은 것들을 할머니에게 시키기도 했다.

나는 그때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도 너무 미안해서 눈물이 나려고 한다.


엄마가 나를 혼낼 때도 할머니는 "나이 들면 알아서 집안일할 건데 뭘 그러니."

이런 식으로 내 편을 들어주셨다.

그러면 엄마는 '엄마 때문에 애들 버릇만 나빠진다'며 불만을 쏟아놓곤 했다.

만약 할머니가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면 나는 그 집에서 살 수가 없었을 거야.

할머니와 함께 잘 때 옆에서 느껴지던 온기가 기억난다.

지금도 엄마보다는 외할머니가 더 애틋하고 가끔씩 꿈에서 뵙기도 한다.


상담사는 그래도 외할머니에게 의지할 수 있었기에

그 시절을 무사히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의 엄마는 무의식적으로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받지 못했던 사랑을 자꾸 나와 동생에게 달라고 요구하는 것 같다고.

하지만 그건 물질적으로 채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엄마에게 주어도 만족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엄마도 할머니의 편애로 인해 인정욕구와 공허감이 크고 힘들었겠구나.

그런데 왜 엄마도 편애로 힘들었으면서 동생만 편애했을까?

불교에서 말하듯, 업이라는 것이 있어서 자기가 겪었던 문제들을 배우고 똑같이 행동하게 되는가 보다.


어쩌면 엄마 역시 업보를 받고 있는 게 아닐까?

어릴 때 나는 엄마의 사랑을 갈구했지만 그때 엄마는 나를 돌보는 것보다 돈 버는 게 더 중요했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고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이제 다 커서 독립한 지금, 나이 든 엄마는 더 이상 돈을 벌 필요도 없고 시간이 많아졌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함께 있고 싶지 않은걸.

엄마와 내 입장이 정확히 반대로 달라진 듯한 느낌이다.


나는 어떻게 부정적인 업을 끊고 선한 업을 새롭게 만들 수 있을까?

정답은 모르겠지만 가만히 앉아 내 마음과 가족관계부터 들여다볼 생각이다.












매거진의 이전글내가 남편과 결혼한 이유